‘從北’ 청산 못한 민노…애증의 8년 끝?

3일 열린 2008 민주노동당 당대회에 참석한 심상정 의원이 재적인원 확인 절차에 따라 대의원 비표를 들고 있다.ⓒ데일리NK

민주노동당 내 자주파(NL)와 평등파(PD)가 지난 8년간 노선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해왔지만, 결국 ‘종북주의’ 청산 논란을 해결하지 못한 채 갈라설 것으로 보인다.

심상정 비상대책위 대표는 3일 열린 임시 당대회에서 일심회(간첩단 사건) 관련자 제명을 골자로 한 혁신안을 상정했었다. 그러나 이 혁신안이 자주파의 반발에 부딪혀 부결됨에 따라 심 대표를 비롯한 비대위가 4일 총사퇴 입장을 밝혀 실질적인 분당 수순에 돌입했다.

민노당 혁신안 부결과 이에 따른 분당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진 이번 갈등은 지난 대선 참패 이후 당권을 쥐고 있던 자주파 책임론이 급부상하면서 부터 시작됐다. 발단은 그동안 ‘일심회’ 사건과 ‘북핵자위론’ 파문 등에 대해 자주파가 보여 온 ‘종북주의’적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사태는 이미 지난 대선과정에서 부터 예고됐다. 대선에서 캐치프레이즈를 ‘코리아연방공화국’으로 내걸면서 평등파의 불만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결국 대선 참패 이후 편향적 친북노선이 민심이반으로 이어졌다는 평등파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었고, 심상정 의원이 비대위를 이끌며 혁신안을 주도했다.

하지만 당대회에서 ‘친북 이미지’ 개선을 담은 비대위의 혁신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친북’(親北)을 둘러싸고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이상 자주파와 평등파 간의 ‘적과의 동침’은 지속될 수 없어 보인다.

실제 평등파의 대규모 탈당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조승수 전 의원과 김형탁 전 대변인 등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 인사들이 탈당했고, 당 대회장에서도 평당원 23명이 탈당을 결행했다.

이날 비대위 혁신안 통과에 기대했던 박용진 전 대변인 등 서울지역 총선 출마자와 지역위원장 등 20여명도 곧 탈당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평등파인 노회찬 의원도 이미 혁신안 원안 부결시 탈당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던 만큼 조만간 탈당할 가능성이 높다.

전날 당대회에서 자주파는 비대위 혁신안 중 ‘편향적 친북행위에 대한 제재가 없어 친북정당의 이미지가 굳어졌다’는 내용과 북한에 당 기밀을 유출한 일심회 관련자 제명 안건을 수정동의안 발의를 통해 삭제, 혁신안을 부결시켰다.

결국 혁신안 통과와 비대위 재신임을 연계 방침을 밝히면서 ‘배수의 진’을 친 심 대표와 비대위가 총 사퇴했고, 이로 인해 한동안 지도부 공백사태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임박한 18대 총선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표면적으로는 이번 사태가 ‘일심회 관련자 제명건’에 대한 자주파와 평등파의 입장차이로 보이지만, 내면엔 북한 정권에 대한 근본적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심회 관련자 제명건 부결은 민노당이 ‘친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에 대해, 주대환 전 정책위의장은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가장 상식적인 비대위 혁신안이 통과되지 못한 상황을 예상치 못했다”면서 “결국 정파의 이익을 위해 상식도 무시했다”고 일갈했다.

조승수 전 의원도 “민노당이 최소한의 변화도 거부하고 있다는 관습화된 ‘친북정당’ 이미지가 확인된 것”이라며 “이후 당내에서 탈당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민노당에 자주파만 남겨둔 채 평등파가 새로운 진보세력 결집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심 대표를 비롯한 혁신그룹이 당내에서의 변화 가능성에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어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한편으론 자주파-평등파 간의 대립이 정파에 섞이지 않은 평당원들의 집단 이탈을 불러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주 전 정책위의장은 “정파로부터 자유로운 평당원들이 들고 일어나 정파들을 날려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주파는 평등파와의 결별을 이미 각오한 듯하다. 당 대회장에서 평등파가 만든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 조직에 대한 당 차원의 해체 촉구 결의안을 현장 발의한 것도 이러한 수순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민노당은 8년만에 주인(PD)은 떠나고 객(NL)만이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평등파의 견제가 있었음에도 민노당은 북핵에 대해서는 ‘자위론’을 펴고, 북한이 내세우는 ‘우리민족끼리’에 적극 동조하는 등 사실상 ‘조선노동당 이중대’ 역할을 자임해 왔다.

평등파의 집단 탈당으로 이어질 경우 민노당은 자주파만 남게 돼 노골적인 ‘친북’노선을 걷게 될 가능성도 크다. 특히 북한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대변하던 자주파가 간첩 행위자를 끝까지 두둔함으로써 국민들의 시선은 더욱 따가워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