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들은 왜 전염병에 속수무책인가

북한의 수해로 인한 전염병 발병 가능성이 또 고개를 들고 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수해가 집중된 평양시와 평안남북도, 황해남북도, 강원도의 강과 하천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수도관과 수원지(水源地)등 급수시설이 파괴됐다고 전했다.

북한에서 연중 7~8월은 장마 등 홍수로 강물과 우물이 오염되고 그 물을 마신 주민들 속에서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콜레라, 적리 등 전염병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시기다.

북한은 상수도 정수장 및 연결관이 노후돼거나 수질관리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 맑은 물이 공급되기 어렵다. 도시에서도 각 가정에 수도가 들어간 곳이 아니라 여전히 공동수도를 이용하는 곳이 많다.

북한의 정화시설은 따로 없다. 수원지에 물을 끌어올려 하루 종일 침전시키고 소독약을 뿌려 급수하는 것이다. 대도시에서는 정전이 되면 수돗물이 중단된다. 전깃불이 하루 1∼2시간 들어오기 때문에 물을 미리 받아놓지 못하면 주민들은 인근의 강물이나 개울물을 길어 마셔야 한다.

양동이에 물 받아 앙금 가라앉히는 수준

집중호우 이후 전염병이 창궐하는 원인은 ▲강하천 오염으로 수질이 악화되고 ▲수질 관리 시스템이 취약하고 ▲ 만성적인 식량난으로 주민들의 몸이 약해졌고 ▲전염병 예방약과 치료약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염된 물을 통해 전염병이 쉽게 전파되고 영양부족으로 사람들의 면역력이 약해 쉽게 감염되는 특징이 있다.

지난해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뒤에도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도, 강원도 등 지방에 파라티푸스, 콜레라, 적리 등이 발생한 예가 있어 북한도 벌써부터 그 대비책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중국 단둥(丹東)에 나왔던 황해남도 해주시 주민의 말에 의하면 “10가구당 1가구가 전염병을 앓고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는 21일 차철우 중앙위생방역소 부소장의 말을 인용해 “무엇보다 감염증의 돌림 과정들을 일으키는 근원을 없애기 위한 대책을 철저히 세우는 데 큰 힘을 넣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수해도 1995년 대홍수 때 피해를 연상시키고 있어 전염병 확산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1995년 수해 때도 사람들은 한동안 오염된 물을 먹고 살았다. 집집마다 정수기를 설치하고 생수를 사서 마시는 남한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북한 상수도 사업장에서는 홍수로 불어난 강물을 수원지로 끌어올려 급수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도시에는 큰 산의 꼭대기에 수원지를 만들어 놓고 강물을 끌어올려 수원지를 만든다.

땔감 나무도 없는데 물 끓여먹으라는 말뿐

장마철에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급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양동이에 물을 담아놓고 앙금을 가라앉힌 뒤, 그 물로 밥을 짓고 식수로 이용했다. 때문에 밥은 항상 누렇게 되기 일쑤였다.

90년대 중반 이후 주민들이 집중 호우가 닥친 뒤 이런 수질이 나쁜 물을 마시다 보니 설사를 동반한 적리와 콜레라에 자주 걸렸다. 적리는 아랫배가 아프고 피가 섞인 설사를 하는 급성대장 전염병이다.

장티푸스도 역시 아랫배가 아프고 묽은 대변을 보는 횟수가 잦지만, 콜레라는 극심한 구토와 설사를 동반한다. 맹물 같은 대변이 나와 인체의 수분을 뽑아내 탈진상태에 이르러 생명을 잃기도 한다.

지난해 황해도와 바닷가 지방에는 수돗물에서 녹물이 나오고, 지렁이, 수질벌레와 같은 것도 발견되기도 했다. 이와 달리 고급 당간부들이나 부자들은 전용차로 샘물을 길어다 먹거나, 산과 연결된 관을 설치해 따로 생수를 먹는다.

진료는 해도 처방은 못해줘

북한에 전염병이 확산되는 이유 중 하나가 예방과 치료 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보건정책은 무상치료지이지만 치료해줄 의약품이 부족하니 허울만 남은 셈이다.

북한 병원 의사들은 환자가 오면 진찰은 해주지만 치료는 어렵다. 왕진을 청하면 5천원에서 1만원까지 돈을 줘야 가능하다. 식구들은 그 돈이면 약을 몇 첩 더 사서 환자들에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자체로 약이나 주사제를 자가 처방하고 있다.

턱없이 비싼 약값도 문제다. 저가약은 대부분 중국산 가짜약이다. 올해 초까지 신의주 시장에서 일회용 주사기 하나에 200원 가량했다. 중국산 포도당 40%짜리 25mg 앰플 1개에 250원씩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사약으로 쓰는 노란 알약인 ‘레보’ 한 봉지에는 300원 가량 한다.

신의주 장마당에는 벌써부터 각지방에서 올라온 장사꾼들이 항생제, 해열제, 포도당과 주사기 등을 구입해가고 있다고 한다. 집중호우 이후 질병이 만연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환자가 생기면 해열제와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제대로 치료하려면 하루에 3천원 가량 든다. 병 치료기간이 보통 한 달을 경과해야 하니까 ’10만원은 가져야 병도 앓을 수 있다’는 말이 돈다”고 말했다.

반면 북한 당국은 질병 대책으로 “물을 끓여 먹어라, 밥그릇과 숟가락을 소독해 쓰는 습관을 키우자” 등의 민간요법에 그친다. 일단 환자가 발생해도 “환자를 격리하라”는 수준에 그친다. 북한은 쌀값보다 석탄이나 석유, 땔감용 나무가 비싸기 때문에 이러한 대책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소식통은 “당에서는 굶어 죽어도 교양, 앓아 죽어도 교양”이라며 “백성들이 병에 걸려죽어도 국가가 나서서 대책을 세우는 일이 없어졌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