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조개잡이 사고 왜 빈발하나?

북한에서 조개잡이는 보통 3월초부터 시작해 그 해 11월에 마감한다.

신의주, 용천, 철산, 곽산 주민들은 물때(아침 저녁으로 밀물과 썰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때)에 맞춰 인근 앞바다에 배를 정박하고 썰물이 나간 후 갯벌에 내려 조개잡이를 하게 된다.

항구에서 수 백 미터는 나가야 조개잡이가 훨씬 낫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90년대 중반 이후 식량 공급이 끊긴 이후 이 지역 주민들은 ‘조개잡이’에 사활을 걸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수산사업소의 배를 빌려가지고 외화벌이 지도원이라는 명분을 걸고 자체로 로력(인부)들을 모집해 조개잡이에 나섰다.

평안북도 일대 수산물은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좋아 중국 무역업자들이 선호하는 물품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변변한 벌이가 없던 주민들은 조개잡이에 몰려들었다. 이 지역 출신 탈북자들에 따르면, 3월부터 바다에 나가는 사람들이 해안을 따라 수만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조개잡이 벌이가 괜찮다’는 소문이 돌면서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바다 갯벌은 인해(人海) 장관(?)을 이루었다고 이들은 말한다.

조개잡이가 끝나고 밀물이 들어오면 외화벌이 지도원들이 로력들로부터 조개를 수거해 중국배와 상선(무역)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고 한다.

조개잡이 사고 해마다 빈발해

북한해군이 중국배와 주민들의 개별접촉을 통제했기 때문에 상선은 허가를 받은 외화벌이 지도원들만 가능했다. 지도원들은 조개를 1:3(조개1kg당 중국산 밀가루 3kg)으로 바꾸고, 인부들에게 1:5로 나누어 줘 차익을 챙겼다.

당시에도 바닷물이 들어올 때 미처 배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수많이 목숨을 잃었다. 죽은 사람의 가족들이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외화벌이 지도원들은 대부분 정권기관에 이익을 일부 주고 사적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사망자에 대한 보상이 없었다. 사망자들을 조업 중 모두 개인 부주의로 처리돼 애꿎은 주민들만 ‘바다귀신’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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