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이 어제 공화국 정부 이름으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지금 남북관계가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분위기만 조성된다면 당국 간 대화와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겁니다. 김정은 정권이 늦게나마 남북 간 대화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건 다행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이번 성명에 얼마나 진지한 태도가 담겼는지는 의문입니다.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도 온갖 전제조건을 갖다 부쳤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밝힌 분위기 조성에는 한국 정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라는 겁니다. 지난 수십 년 간 해마다 진행된 이 훈련을 중단하라는 건 사실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건 북측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미 간 군사훈련 중단은 남과 북이 대화하면서 또 남북관계 발전에 따라 이뤄질 사항이지 전제조건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5.24 제재조치 해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남측은 당국 간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겠다는 입장을 수없이 밝혔습니다. 대화가 시작되면 사실상 제재를 풀겠다는 겁니다. 5.25 조치가 한국 해군함선에 대한 북측의 어뢰공격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 정도가 남측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인식해야 합니다. 정말로 김정은 정권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우선 대화부터 시작하고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안타깝다는 정도의 의사 표시는 해야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흡수통일에 대한 논의를 중단하라는 요구입니다.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흡수통일을 거론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작년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이후 이와 관련된 기구를 구성해 조사와 연구를 하는 게 고작입니다. 남과 북 모두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물론 이해는 갑니다. 권력 유지가 더 우선인 김정은 정권의 입장에선 통일을 강력히 추진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에 위협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대화의 조건으로 삼는 건 스스로 반 통일세력이라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올해는 해방 70돐이자 분단 70돐이 되는 해입니다. 분단체제 극복은 남과 북 모두의 지상과제라는 점에서 더 늦기 전에 당국 간 대화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