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일제시대 기독교인 백선행 여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제작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지금가지 북한은 필요에 따라 러시아나 중국을 비롯한 해외 현지 촬영을 추진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그러나 외국자본으로 기독교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만큼 내부의 외화난이 심각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북한은 1949년 예술영화 ‘내고향’을 첫 제작한 이후 1970년대를 지나면서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및 사회주의 교양용 영화만을 만들어 왔다. 특히 김정일의 ‘당의 유일사상 확립을 위한 10대원칙’이 공식화 되면서 북한의 영화는 철저히 주민들의 ‘사상개조’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북한의 영화제작에서 허용될 수 있는 내용들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위대성을 다룬 내용(위대성교양) ▲혁명전통 교양물(김일성의 어린 시절과 항일투쟁 역사) ▲계급교양물(한·미·일에 대한 반대) ▲6.25전쟁을 다룬 내용 ▲사회주의 애국주의 교양을 다룬 내용(사회주의 우월성) 등으로 제한된다.
특히 북한 영화사(史) 60년 동안 기독교인의 긍정성을 형상한 영화는 단 한편도 제작되지 않았다. ‘김일성주의’만을 내세우고 있는 북한에서 종교를 형상화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사 기독교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경우 종교의 해악을 경고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1966년에 제작된 영화 ‘최학신의 일가’는 마치 기독교인은 모두 친미사대주의자인 것처럼 묘사됐다.
‘최학신의 일가’는 1955년에 나온 연극을 모태로 제작됐다. 영화 속 최학신은 목사로서 어릴 적부터 친미교육을 받아온 사람으로, 일제 패망과 더불어 그의 일가(一家)는 서로다른 사상과 신앙의 길을 겪게 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최학신은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후퇴 시기에 적극적으로 미군의 북한 진입을 환영한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친 미군은 점령자, 강탈자, 범죄자였다. 최학신은 미국을 하늘처럼 믿으며 살아왔으나, 결국 아들, 딸들이 모두 미군에 의해 강간, 살인을 당하고 온 집안이 망하는 아픔을 겪고 나서야 미국에 대한 환상을 버리게 된다.
북한에서는 이 영화의 줄거리를 김일성이 제공한 것으로 선전한다. 어느날 김일성이 평양 대동군에 현지지도를 나갔다가 한 목사를 만났는데, 그 목사의 인생사를 듣고 당시 문학작가였던 백인준에게 이야기해 줬더니 백인준이 이를 문학작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일성 저작집’에서도 이런 주장이 실려있다.
“우리나라(북한)에서는 종교인들도 다 개조되었습니다. 대동군의 어느 한 마을에 목사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전쟁 전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 들어앉아 우리 당을 비방하였으며 미제국주의자들이 쳐들어오기만 기다렸습니다. 전쟁 시기에 인민군대가 후퇴하게 되자 그는 제일먼저 적의 기발을 들고 미국놈들을 마중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미제 침략군 놈들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농민들의 닭을 마구 쏘아 잡아갔으며 여성들을 희롱하였습니다. 미제침략군 놈들은 그 목사의 딸까지 끌어다 능욕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목사는 미국 놈들이 예수를 가지고 사람들을 속여 왔다는 것을 똑똑히 깨닫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예수 믿는 것을 걷어치웠습니다. 그는 인민군대가 다시 진격해 나오자 공화국기발(인공기)을 들고나가 인민군대를 환영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우리 당을 따라 일을 잘하였습니다.”
북한에서 예술분야에 종사하다가 2009년 탈북한 A씨는 “북한에서 기독교인을 형상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면서도 “백선행 여사의 경우 ‘근검절약의 모범을 보인 여성’이라는 김일성의 공식 평가가 있었던 만큼, 김일성의 평가를 기초로 시나리오 내용이 결정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