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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심각한 식량사정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긴급한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도리이다. 그러나 북한 식량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생각은 않고 표피적 현상만을 이야기하거나 심지어는 현상을 왜곡, 과장하는 사례마저 있어 DailyNK는 남북한과 중국, 국제기구의 취재망을 총동원해 그 실태를 점검해 보았다.
북한 식량사정 여전히 어려운 것은 사실
세계식량기구(WFP)는 지난 3일 발표한 “2005년 긴급보고 제23호(Emergency Report No. 23 of 2005)”의 ‘북한’편에서 최근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북한의 공공배급망을 통해 주민들에게 공급되던 식량이 1인당 하루 250g으로 줄었고, 7월에는 200g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장마당 물가가 폭등하여 어린이와 노약자, 임산부 등의 식량사정이 특히 어렵다. ▲식량공급이 지연됨에 따라 북한 서부지역의 취약계층은 6월 중순까지 지원을 받기 어렵다. ▲새로운 지원국가가 없으면 300~600만 명에 달하는 북한의 취약계층이 WFP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WFP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19곳의 북한 내 식료품공장 가운데 현재 15곳이 가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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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FP, “2005년 긴급보고 제23호” 원문 보기 |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지난 7일 국회 답변에서 WFP를 통한 대북지원금액이 해마다 줄고 있다며, 그로인해 올해 북한의 식량사정이 “매우 나쁠 전망”이라고 했다.
사단법인 <좋은벗들>은 지난 4일 발행한 ‘오늘의 북한소식’ 제7호를 통해 올해 5월말 함경북도 온성, 회령, 청진지방의 장마당 물가를 공개하면서 “쌀값이 전년도에 비해 두 배 가격으로 올랐다”고 전했다. <좋은벗들>은 “현재 장마당에 나와 있는 쌀은 전년도 가을 수확물이 대부분”이라며, “이것이 바닥나고 외부의 식량 지원이 없다면 돈이 있어도 식량을 구입할 수 없는, ‘식량대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지난 3일 <조선일보>는 최근 중국을 방문한 북한관리의 말을 인용,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북한당국의 내부 주민강연자료에서 나왔다”고 보도했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 ․ 중진 연석회의에서 WFP의 발표내용을 인용해 “9월에 북한 주민 350만 명이 굶어죽는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북핵(北核)과 관계없이 부족분 전량을 조건 없이 지원하자”고 주장했다.
해마다 이맘때에는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렵다는 발표와 보도가 줄을 잇는다. DailyNK도 평안남도 덕천시 장상동에서 노인 20여 명이 굶어죽었다고, 중국 내 탈북자의 증언을 인용 보도한 바 있다. 물론 북한의 식량사정은 어려우며, 여전히 많은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 춘궁기에는 더욱 심하다. 그들을 도와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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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덕천시 수십 명 집단 아사” |
그런데 그렇다고 1990년대 중후반의 대(大)아사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할까? 장마당의 쌀값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곧 ‘식량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할까? 식량사정이 어려운 나라를 돕기 위해서는 지원물량을 늘리는 것이 해답일까? 지원물량을 늘리면 그것이 과연 북한 주민들, 특히 빈곤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할까?
北 정권은 핵개발하고, WFP는 北 인민 먹여 살리고
WFP는 국제연합(UN) 산하 기구로 식량원조를 통한 긴급구호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저개발국가의 굶주리는 인류를 구원하려는 WFP의 창립취지와 관계자들의 열정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WFP가 지원금을 기탁하는 이른바 ‘돈 있는 국가’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지원대상 국가의 상황을 더욱 절박하게 표현해 보려는 경향이 있는 건 아닌지, 북한문제를 볼 때 그러한 의혹을 떨칠 수 없다.
WFP는 1995년 10월 평양에 상주사무소를 개소하고 10년 동안이나 북한을 지원해왔다. 그동안 WFP는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 ‘올 해 도와주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식의 발표를 매년 거듭해왔다. WFP의 입장에서는 언짢은 비유일 테지만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기 소년처럼 말이다.
물론 그러다가 정말 ‘늑대’가 나타나지 않도록, 만의 하나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 또한 WFP의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WFP가 북한 인민들을 도울 사이 북한 정권은 핵무기를 개발해왔다. 이것을 국제사회는 어떻게 보겠는가.
WFP가 ‘배고파 곧 쓰러질 듯한 국가’라고 하여 지금껏 북한을 도와줬더니 결국에는 핵무기를 만들어냈다고 혀를 끌끌 차는 중이고, 그래서 이제 북한을 도와주려고 나서는 국가가 별로 없다. WFP 스스로 만들어놓은 형국이다.
▼▶ WFP에서 촬영한 북한 어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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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FP는 올해 북한 내 수혜대상을 650만 명으로 잡았다. 100만, 300만, 600만 식으로 해마다 수혜대상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WFP의 의지는 존중하지만 그렇게 해서 2천만 북한 주민 모두를 수혜대상으로 삼을 셈인가. WFP의 과도한 수혜대상 확대가 북한 정부의 자활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지난해 2월 WFP는 북한 내 수혜대상에 대한 지원이 중단될 긴급한 상황에 직면하자 ‘북한 정부로부터’ 2만5천 톤의 곡물을 빌려 지원을 계속한 적이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사람이 많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무능하고 술주정뱅이인데다 가족에게 폭력을 일삼는 A씨가 자식을 굶주리게 만들자 사회복지사 B씨가 A씨의 자식을 책임져 왔는데, A씨 자식에게 먹일 쌀이 떨어지자 동네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A를 찾아가 곳간에 숨겨둔 쌀을 빌려 온 셈이다. WFP는 북한 정부에게 빌린 곡물을 나중에 갚았다.
WFP 지원받았다는 北 주민 찾아보기 힘들어
WFP가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들을 수혜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국내외 탈북자 가운데 WFP의 지원 혜택을 받아본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6백만 명을 지원하고 있다면 북한 주민 가운데 1/4은 혜택을 받는 셈인데, 탈북자 가운데 그런 증언을 하는 사람이 없다.
물론 “탈북자들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해 지극히 형편이 어렵다 보니 탈출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WFP의 지원현장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북한 사람 4명 가운데 1명을 지원했으면 최소한 40명 중에 1명은 목격자가 나와야 할 것 아닌가.
WFP의 대북지원과 관련한 탈북자들의 증언이 있기는 하다. 지원식량이 북한 남포나 청진항에 도착하는 날에는 보위부, 안전부, 인민군 등 권력기관의 트럭이 민간차량으로 위장을 하고 새벽부터 진을 치고 있다가 가장 먼저 그것을 수령하여 가져간다는 증언이 있다.
WFP 관계자가 현장을 확인하는 날에는 민간인을 동원해 배급했다가 나중에 다시 수거해 간다는 증언도 있다. 지원식량이 장마당에서 상업용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증거는 사진과 동영상으로도 있다.
▲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대북지원식량 |
WFP의 대북식량지원이 얼마나 허술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북한정권이 그것을 어떻게 악용(惡用)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WFP가 이러한 실태를 면밀하게 조사했다는 소식은 지금껏 들려오지 않는다. 북한인권단체들이 지원식량이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 공개하여도 WFP가 이런 물증을 근거로 북한 당국에 항의했다는 소식 또한 들려오지 않는다.
2005년 봄 북한, ‘대량아사’ 식량난은 없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대북식량지원 단체들을 중심으로 ‘식량위기설’이 흘러나왔지만 그런 위기는 없었다. 물론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언젠가 큰 위기가 올 수도 있지만 2005년 6월 현재 북한의 풍경은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
최근 청진을 둘러보고 온 북한 출신 장사꾼에 의하면 도시에 물품거래가 활발하고 전기공급도 비교적 잘 되는 편이고 분위기도 밝다고 한다. 평안북도 태천, 함경남도 단천, 황해북도 신평, 강원도 원산의 상황을 점검해 보아도, 경제사정이 어렵긴 하지만 일부 대북식량지원단체들의 묘사처럼 전년에 비해 급격히 상황이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대아사의 초반부와 같은 징후 – 배급과 공장가동 완전중단, 꽃제비의 속출, 전염병의 창궐 – 가 보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배급은 여전히 없다. 그러나 ‘배급이 끊겼다’는 것을 ‘식량난의 징후’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 각지의 상황을 종합해조면 현재 주민들의 10% 내외만이 배급해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다. 110만 명 이상의 인민군대가 배급에 의존하고 있으며, 평양에 거주하는 핵심계층과 주요 군수공장 종사자, 보위부를 비롯한 간부층에는 여전히 배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북한에서 배급은 가난한 자에게 힘을 주는 복지혜택이 아니라 부유층과 특수층에게 지급되는 ‘공짜 쌀’이 되고 있다.
배급을 받을 수 없는 절대 다수의 북한 주민들은 시장에서 쌀을 구입해서 먹거나 농장 혹은 뙈기밭에서 생산한 것을 먹고 있다. 10년 이상 그러는 중이다. 명절에 생색용으로 조금 나오는 배급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젠 모두가 자구책을 강구하여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 화폐가치, 2년 전의 1/3 수준
현재 북한 경제의 특징적인 점은 식량난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이다. 최근 북한 경제의 어려움을 ‘식량난’으로 특징지으려면 다른 생필품이나 공산품의 가격은 일정한데 식량 가격만 폭등하는 양상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실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 중국 인민폐와 미국 달러에 대한 북한 원화의 가치가 하락하는데 따라, 즉 북한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과 동반하여 쌀값이 폭등하고 있는 것이지 쌀만 특이하게 가격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시기 |
中 인민폐 : 北 원화 |
美 달러 : 北원화 |
쌀 1Kg 가격 |
2003년 11월 |
1위안 : 100~110원 |
1달러 : 950원 |
200~200원 |
2004년 5월 |
1위안 : 145~150원 |
1달러 : 1,245원 |
350원 |
2005년 2월 |
1위안 : 250~260원 |
1달러 : 2,200원 |
800원 |
2005년 5월 |
1위안 : 315원 |
1달러 : 2,630원 |
850~900원 |
▲ 2003~2005년 북한 암시장 환율과 쌀 가격 변화 추이 (전국 종합, 평균치 산정)
위 표에서 보이듯 2003년 11월만 하더라도 북한 원화는 남한 원화보다 20~30% 가치가 높았지만 지금 북한 원화는 남한 원화의 1/2.6 수준이 되어버렸다. 1년 6개월 사이에 급격히 화폐의 가치가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쌀값이 이런 추세를 약간 앞지르고는 있지만 화폐가치의 하락에 비해 ‘급등’한 것은 아니다. 최근 춘궁기를 맞아 쌀 가격이 10%가량 올랐지만 화폐가치의 하락폭에 비해서는 오히려 완만하다.
여기서 하나 참고할 것이 있다. 2003년~2004년 사이 중국 동북지방의 쌀값이 크게 상승했다. 2003년 중국 동북지방의 쌀값은 1Kg에 1위안(元) 5지아오(角) ~ 1위안 8지아오 정도였는데, 2003년 하반기에 2위안 4지아오 ~ 2위안 9지아오로 올랐다. 북한 내부에서 판매되는 쌀의 상당량은 중국 동북지방에서 유입된 것이다. 그것이 북한의 쌀 가격에 준 영향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국경봉쇄 없는 한 식량대란 가능성 낮다
<좋은벗들>이 ‘오늘의 북한소식’에서 “쌀값이 전년도에 비해 두 배 가격으로 올랐다”고 한 것은 맞지만 “‘식량대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지나친 예단이다. <좋은벗들>은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현재 (북한) 시장에 나오는 쌀은 전년도 가을 수확물이 대부분이다. 가을에 식량 값이 쌀 때 대량으로 구입해두었다가 다음 해 식량이 두 배 이상 오를 때 내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장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는데도 외부의 식량 지원이 없다면 돈이 있어도 식량을 구입할 수 없는, 식량대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현재 북한 장마당에 나와 있는 쌀이 바닥나면 북한의 식량이 바닥나는 것일까? ‘폐업예정 – 완전정리’ 푯말을 내건 슈퍼마켓이 아닌 이상, 매장에 진열된 라면이 바닥났다고 라면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라면공장에 주문해 새 상품을 들여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북한 내 식량이 모자라면 장사꾼들이 중국에 가서 부족한 식량을 가져온다.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이러한 무역거래가 음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북한이나 중국 어느 한 측에서 국경을 일방으로 봉쇄하거나 양국 관계가 악화된다면 이러한 흐름에 제동이 걸려 운송비나 인건비, 거래의 위험부담 때문에 쌀값이 급격히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그러한 조짐이 없다. 앞으로도 북-중 국경이 봉쇄되지 않는 한 1990년대 중반과 같은 식량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의 장사꾼들이 가을에 쌀을 저장해뒀다가 가격이 오르는 다음해 춘궁기에 집중적으로 내다파는 현상은 해마다 있어왔다. 그것이 다 팔리면 다시 국내외에서 사들였다. 올해에만 특별하게 ‘재고가 바닥나면 더 들여올 쌀이 없을 것’이라고 예측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올해는 대북식량지원 ‘숨고르기’ 기간으로 삼아야
물론 북한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쌀 가운데에는 ‘대북지원식량’도 끼어있어, 그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원식량이 상업용으로 유통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논쟁을 떠나 <좋은벗들>은 이것을 우선 걱정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북한 장마당의 상업용 쌀 가운데 지원미(支援米)가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북한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쌀은 크게 ▲장사꾼들이 중국에서 무역활동을 통해 들여온 쌀 ▲순수 북한 국내에서 생산된 쌀 ▲대북지원식량으로 들어온 쌀(‘안남미’와 ‘남조선 쌀’)으로 나뉜다. DailyNK가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재 북한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쌀의 80% 이상은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라 한다.
지원미가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쌀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2003년 이후 국제기구의 대북식량지원이 줄어들면서 지금은 지원미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지원미가 없다고 북한 장마당에 쌀이 당장 바닥나는 것이 아니다.
걱정되는 점은 ‘북한 민간에서 무역을 통해 중국산 쌀을 사들여오는 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인데,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식량지원을 늘려 장마당에 지원미가 다시 넘치도록 해주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지금을 ‘위기의 초입단계’로 볼 것이 아니라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대북식량지원단체들은 북한에서 전해오는 숨가쁜 소식들에 인도적 열정을 불태우면서 예전처럼 무조건 ‘식량을 지원하자’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대북식량지원의 성과와 문제점을 점검해 보면서 새로운 지원방식을 고민하는 ‘숨고르기’의 시간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 한해는 그런 시간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7.1 경제조치는 완전히 실패한 정책
현재 북한 경제의 심각한 문제는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계층간 소득격차이다.
어떤 사람들은 2002년 7월 1일 북한이 이른바 ‘7.1 경제관리조치’를 발표했을 때 그것을 대단한 ‘개혁조치’인 것처럼 분석했다. 남한 <통일부>는 아직도 그것을 “개혁조치의 일환”이자 “햇볕정책의 성과물”로 여긴다. 북한의 실물경제를 들여다보면 절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 북한 최고액 5000원권 |
7.1조치는 ▲생산활동에 인센티브를 부여 ▲임금 및 가격 인상을 주요 골자로 하였다. 공장, 기업소의 운영을 개혁하는 것은 북한이 공개하는 몇 개 시범단위에서는 실시되어 외부 세계에 7.1조치가 성과적인 양 소개되고 있지만, 북한 주민 절대 다수에게는 ‘임금 및 가격 인상’이 치명타를 안겨줬다.
경제 초보자라고 해도 ‘공급확대’ 없는 가격인상과 임금인상 조치가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불러오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외부 세계에 무언가 개혁적인 제스처를 취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다짜고짜 이런 정책을 밀어부친 것 같다.
돈은 많이 필요해진 상황에서 북한 정부는 500원, 1000원, 5000원 권 화폐를 연달아 발행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200원 권이 새로 등장했고, 곧 1만원 권도 발행될 것이라 한다. 원래 100원이 최고액권이던 것이 50배 뛰어오르는데 단 몇 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세상에 이렇게 막무가내로 경제운영을 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김정일 정권에 과감한 개혁개방 기대할 수 없어
앞서 살펴보았듯 최근 북한의 쌀값 폭등은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이러한 인플레이션에 기인하고 있다.
지금 북한의 인플레이션을 잡자면 부분적인 경제개혁으로는 안되고 전면적인 개혁개방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회복은 불가능해 진다. 중국식 개혁개방보다 더 과감한 조치를 단행해도 회복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개혁개방을 하면 ‘체제위협요소’들이 함께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은 지금껏 머뭇거리는 중이다.
아니, 체제위협요소가 ‘들어올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분명히’ 들어온다. 개혁개방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세계에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한 개혁개방을 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데, 조금만 틈이 벌어져도 쓰러질 정권이라니! 이것이 지금 북한 문제의 본질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만 해도 죽을 수 있는 사람에게 ‘철인 3종 경기’를 하라고 등을 떠밀 수는 없다. 그럼 어쩔 것인가. 과감히 ‘선수를 갈아 치워서’ 철인 3종 경기를 하는 것이 정답이다.
‘분배의 투명성’ 확보해야 식량대란 막는다
이런 전략적인 논의를 떠나 ‘대북식량지원문제’를 돌아보자. 원래 북한은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의 힘이 센 사회인데다 심각한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배급은 부자와 권력자들이 타먹고, 빈민과 서민은 부자와 권력자들이 빼돌려서 시장에 내놓는 지원식량을 사서 먹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어쨌듯 식량을 보내줘 사먹을 수라도 있게 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라고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 ‘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곧장 ‘차선’을 택하려 하나.
▲ 가장 절실한 사람에게 지원해야 |
북한식량문제의 가장 절박한 과제는 ‘돈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에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그 숫자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WFP가 북한 주민 650만 명을 빈곤층이자 수혜대상으로 삼아 지원하고 있는 것은 ‘방향 상으로는’ 옳다. 그들에게 분명하게 지원식량이 배급될 수 있도록 시급히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앞으로 북한에 ‘식량대란’이 닥쳐온다면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분배의 투명성을 소홀히 해서 그런 것이다. 식량을 아무리 많이 지원해줘도, 북한에 식량이 차고 넘칠 정도가 되어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굶어죽는 사람은 반드시 생긴다.
사실 분배의 투명성은, 북한 정권이 똑바로 정신이 박힌 정권이라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인데, 지금껏 북한 정권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지원물자를 빼돌려 다른 곳에 전용할 생각만 한다. 따라서 WFP같은 국제기구와 NGO들이 그것을 담당하여야 한다.
요컨대 앞으로 대북식량지원은 ‘양적인 확대’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하여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과제이다. ‘무작정 주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이 북한 사회를 더욱 병들게 만들고 있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북한에 부족한 식량을 무조건 지원하자고 했다. 요즘 우리 남한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진보와 인도주의의 표상처럼 되고 ‘분배의 투명성’을 이야기하면 ‘무언가 트집을 잡아보려는 사람’이라고 삐딱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진정으로 북한의 미래를 생각하고, 진정한 진보주의자이고, 참된 인도주의적 입장에 선 사람일수록 ‘분배의 투명성’을 소리높이 외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마땅하다.
DailyNK 분석팀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한영진 기자 hyj@dailynk.com
중국 = 권정현, 김영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