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민 “김대중은 남조선 민주투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국장 소식을 접한 북한 주민들은 대체적으로 고인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김 전 대통령을 남한의 민주투사로 회고했다.

친척 방문을 목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60대 남성 박 모씨는 “김대중 대통령은 80년대부터 북한에서 제일 유명했던 인물”이었다며, 북한 주민들 사이에 퍼진 김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소개했다.

박 씨는 “우리는 80년대부터 김대중을 민주투사라고 평가했는데,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과 어긋났을 때는 비판의 소리도 많았다”며 “그러나 90년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그가 죽을 고비를 넘었던 것이 묘사되면서 일반 백성들도 김대중을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민족과 운명’은 북한에서 91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한 연작 영화로, 92년 7월에 제작된 ‘차홍기 편’에서는 73년 일본에서 발생한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루기도 했다.

박 씨는 “영화를 본 사람들은 ‘김대중이 남조선에서 진보적으로 이름난 사람이니까 박정희가 그를 죽이고 자기 혼자 대통령을 계속 하려고 저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면서도 “하지만 미국 직승기(헬기)가 날아와 김대중을 구출하는 장면을 놓고 ‘좋은 사람을 왜 미국 놈들이 저렇게 열성적으로 구원해줄까?’하는 의구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소식이 전해진 날 아침 조회에서 직장 비서가 ‘공식적인 발언은 아니지만 남한의 진보적 인사인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말해줬다”며 “직장 비서는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앞으로 남조선과 관계가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 한다’고 교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0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왔을 때, 우리는 정말 통일이 되는 줄 알고 모두 다 좋아했다”면서 “세계청년학생축전(89년) 때 임수경이 전대협 대표로 평양에 왔을 때는 그저 반가운 마음뿐이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왔을 때는 ‘이제 고생은 다 끝났구나’하고 만세를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옌볜(延邊)자치주 옌지(延吉)시에서 만난 탈북자 강 모씨는 2000년 김 전 대통령의 방북 중반 평양 대학생들 사이에서 김 전 대통령과 관련해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 씨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다녀간 후, 남조선과 통일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 대학생들이 많았다”며 “당시에는 (통일을 위해) ‘남조선 대통령이 순순히 자리를 내놓겠냐’는 의견과 ‘미국이 과연 가만히 있겠냐’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소개했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는 김 전 대통령과 김정일 사이에서 누군가 한 사람이 양보, 통일대통령을 뽑아야 하는데, 김 전 대통령이 통일대통령직을 사양하겠냐는 의심이 많았다는 뜻이다. 남북통일에 대한 북한 대학생들의 순진무구(?)한 생각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강 씨는 “통일을 해보겠다고 평양까지 와서 통일을 못보고 죽다니 안타깝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까지 사망했는데도 남조선이 조용한 걸 보니 우리(북한)와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함경북도 내부소식통은 23일 데일리NK와 통화에서 북한 내부 주민들의 표정을 전했다.

소식통은 “텔레비전에서 김대중 사망 사실과 장군님(김정일)이 위로의 편지와 조문단을 보내셨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일반 주민들도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지만 별다른 말들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한국에서 원조물자를 보내줬던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방침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면서 “사람들은 그냥 ‘남조선 대통령이 또 죽었나 보다’하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우리는 지금 ‘150일 전투’ 때문에 남조선 일에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면서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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