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여성들, 장사에 바빠 전화로 생활총화”

“요즘에는 장사하는 여성들이 워낙 많아 전화로 여맹 생활총화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지난 3월 입국한 탈북자 김영숙(가명) 씨. 그녀는 최근 북한 여맹(조선민주여성동맹) 조직에서 진행되는 ‘주(週) 생활총화’의 변화실태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여맹은 직장에 다니지 않는 여성들이라면 반드시 참여해야하는 노동당 외곽조직이다. 북한의 전업주부들은 여맹 조직에 편제되어 매주 생활총화를 진행하고 정치강연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시장화 현상이 확산되면서 전업주부들의 여맹 조직생활도 크게 달라졌다. 


지금 북한 여성들의 장사 규모는 동네시장에 나가 하루종일 매대나 지키는 수준이 아니다. 기차와 버스를 이용해 장거리 여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때문에 여맹 조직원들이 매주 한자리에 모이는 일도 쉽지 않아졌다.  


김 씨는 “매주 자기 자신을 억지로 반성해야 하는 생활총화는 북한에서 제일 성가시고 불편한 일이었다”면서 “워낙 오랫동안 형식적으로 모임이 유지되다 보니 요즘에는 먹고살기 바쁘다고 이유를 대면 (여맹)초급단체위원장들이 그냥 눈감아 주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때때로 초급단체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생활총화 내용을 보고하는 사람들도 늘었다”면서 “일부 여성들은 이웃 집 여성에게 자기 생활총화 노트를 들고 모임에 나가서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맹 초급단체 위원장 역시 주부다. 때문에 일반 여맹원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가정살림을 꾸려가야 하는 입장이라 얼렁뚱땅 눈감아 주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관례를 상부에 고발함으로써 ‘당에 대한 충실성’을 보여주게 되면, 그 여성은 어디를 가던지 ‘따돌림’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이런 바보짓을 하는 여성은 전무하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북한에서는 주민들의 생활이 어렵거나 생계문제가 급박하다고 해서 기존과 다른 이중규율을 허용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일반 여맹원이나 초급단체위원장이나 모두가 다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독특하고 편리한 방식으로 조직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생활총화를 빠지거나 전화, 서신으로 대신하는 경우 나중에 반드시 초급단체위원장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은 태어나서 말을 배우고 걸음을 배우면서부터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교시’나 ‘말씀’,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을 암송하고 되뇌이며 살아야 한다. 조직생활의 일환으로 생활총화 시간에 자기비판 및 상호비판을 전개하며 중앙의 ‘방침’을 상기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생활총화는 무덤에 들어가서야 벗어날 수 있다.
 
생활총화는 1974년 4월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을 제시한 김정일의 지시로 부터 시작된다. 김정일은  ‘2일 및 주(週) 당생활총화 체계’를 통해 한주간 자신의 잘못과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중앞에서 공개비판토록 했다. 이를 통해 정치 사상적으로 단련되고, 당성, 혁명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북한 주민들의 생활총화는 간신히 그 형식만을 유지할 뿐 더 이상 당과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점검하는 정치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특히 여맹 조직의 생활총화는 기존의 형식적인 틀마저 깨졌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 입장에서는 생활총화가 장사하는 시간을 빼앗아가는 원수같은 모임이 되고 말았다.


원래 여맹원들의 생활총화는 말이 조직생활이지 사실은 ‘아낙네들의 수다판’과 다름없다. 보통 한번 모이는 데 30분이 걸리고 모여앉아서도 누구의 남편과 아이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따위의 잡담이 주를 이룬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한 여성들의 ‘수다’는 지각하는 여맹원들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끌고온 초급단체 위원장이 개회사를 선포해야 간신히 수습된다. 회의가 시작되면 한사람씩 일어나 노트에 쓴 생활총화를 읽어 나간다. 초급단체위원장은 여맹원들이 발표하는 자기비판과 상호비판을 ‘생활총화 기록일지’에 기록한다. 이 일지는 중앙여맹을 비롯한 상급기관들의 검열에 대비하는 목적으로 작성된다. 


집단적으로 생활하는 군인이나 학생, 직장인들과 달리 전업주부들은 각 가정에서 생활하므로 비판거리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무조건 의무적으로 생활총화를 발표해야 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섞어서라도 비판을 진행한다.


전업주부들의 생활총화는 90년대 이후 대중앞에 나서야 하는 ‘기립식 생활총화’로부터 ‘필기식 생활총화’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방식은 각자 생활총화 노트에 비판내용을 적어 초급단체위원장에게 제출하면 초급단체위원장은 기록일지에 각 사람의 총화내용을 필기하는 식으로 정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필기식생활총화’ 조차도 전업주부들에게는 귀찮은 일이다. 결국 최근에는 ‘전화 생활총화’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아래는 김 씨가 북한에서 작성했던 자신의 생활총화 내용이다.


“토론에 참가하겠습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 10대원칙 제3조 6항에는 다음과 같이 지적되어 있습니다.


‘김일성 동지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휘장,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신 출판물, 수령님을 형상한 미술작품, 수령님의 현지교시판, 당의 기본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호하여야 한다.’


결함: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 10대원칙에 비교할 때 지난 주 저의 생활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결함이 나타났습니다. 가정에 모셔진 초상화 정성작업(청소)을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해야 하나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만 대면서 며칠이 되도록 정성작업을 진행하지 않는 충성심이 부족한 결함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원인: 지난 주 이와 같은 결함이 나타나게 된 것은 말로만 충성심을 부르짖고 이를 실제 생활에 받아들여 생활화, 습관화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책: 저는 앞으로 말로만 충성심을 다짐할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가정에 모셔진 초상화를 더 잘 모시며 이를 생활화, 습관화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으로 호상비판을 진행하겠습니다.


000동무는 장마당에 장사를 나가느라 지난 주 생활총화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먹고 살기가 어려운 건 누구나 똑 같은데 이와 같은 000동무의 행동은 조직생활에 대한 옳바른 관점과 태도가 부족하기때문입니다. 000동무는 앞으로 이와 같은 결함을 꼭 고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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