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발표와 北核

지난 한달 동북아 안보이슈 중 단연 시선을 끌었던 주제는 일본의 ‘집단적자위권’이었다. 이는 기실 집단적 자위권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행사 주체가 일본이란 사실에서 파장이 증폭됐다. 더욱이 재정적으로 허덕이는 미국을 대신해 동아태 지역에서 일본이 미국의 대리인 역할을 맡았다는 분석이 정설인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느낀 당혹스러움은 실로 컸다.


그런데 이제는 중국이 치고 나왔다. 북한의 핵 도발이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본과 중국이 동북아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을 등에 업고 집단 자위권 논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항해 이름도 생소한 방공식별구역(ADIZ) 발표로 동북아 긴장을 자초한 중국은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그 사이에 낀 한국은 어떻게 좌표를 찾아야 하는 것일까.


냉전시절 동북아 안보질서를 지키기 위한 미국의 전략은 양자동맹(한미/한일동맹) 체제를 통해 미군의 작전권역과 보급체계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권역별 다자 안보동맹을 선호하지 않는다. 일대일 양자 안보동맹은 미국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빅터 차 교수는 이 점에 착안,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한국과 일본은 미국을 매개로 ‘유사(類似)동맹’ 체제를 갖췄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일본 헌법 9조는 일본이 스스로 전쟁할 수 있는 권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오로지 일본 국토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의 군대만이 헌법적 존립근거를 갖는다. 그래서 말 그대로 ‘자위대’다. 그런데 집단적 자위권이 인정되며 일본의 자위대 활동은 일본 내로 국한되지 않는다. 미군의 활동무대에 자동 일본 자위대가 진출하는 것이다.


9·11테러가 미국의 안보전략을 바꾼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냉전 후 ‘새로운 위협’의 의미에 대해 1991년 로마에서 열린 서구 16개국이 참석한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전략개념’은 다음과 같이 명백히 설명하고 있다. “(냉전 종결 후의) 동맹에 대해 남아있는 여러 위협은 다면적이고 다방면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예측과 파악이 곤란하다… 동맹의 안전은 대량파괴무기의 확산, 테러 행위와 파괴공작을 포함, 보다 광범위한 성질의 기타 위협에 영향 받고 있다.”


9·11테러 발발 10년 전에, 바로 구미 정상들이 대량파괴무기와 테러 등 냉전시대와는 다른 위협이 있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을 선두로 전 나토 회원국은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여 냉전시대의 중후·장대한 동맹 군대를 슬림화하고, 신속하게 원격지에 파견할 수 있고, 본부에서 지휘·통신정보·보급이 없어도 상당기간 유지될 수 있도록 군대 전체를 재편하기로 결정,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군과 나토 회원국의 군 재편은 상호 연동돼 있는데, 나토 비회원국인 호주군과 일본의 자위대도 이러한 흐름에 편입돼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실무적으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상호운용능력(interoperability)’이다. 서로 다른 나라 군대가 함께 작전에 참가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교전규범, 정보교환, 통신, 지휘, 작전계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표준수립을 목표로 한다.


일본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은 이런 토대 위에 구축되는 작업이다. 2011년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발표 이후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사실상 중국의 ‘봉쇄’인데, 호주-인도-일본을 잇는 해상 삼각축이 미국이 추구하는 실질적인 대중 봉쇄선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핵심 개념 중에 억지(Deterrence)와 강제(Compellance)가 있다. 둘 다 현실공간에서의 실현 가능한 군사력과 긴급상황에서 동원 가능한 국력의 총량을 공통분모로 삼는다.


억지와 강제의 개념적 차이에 대한 고전적 정의(Shelling, 1966)는 ‘상대가 무엇을 하도록, 또는 하고 있는 것을 중지하도록 만드는 위협과 무엇을 아예 시작하지 못하게 하는 위협간의 차이’로 설명한다. 전자가 강제이고 후자가 억지다. 최근(Goldstein, 2000)의 세련된 설명은 ‘억지란 상대에게 자신의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그로 인해 초래될 비용이 크다는 걸 인식시켜 그 행동을 단념시키는 것’으로 다듬어졌다.


물론 두 개념 모두 무력행사 혹은 무력행사의 위협을 통해 상대방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의도를 전제로 한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의 집단 자위권 카드가 동북아에서 ‘억지’, 구체적으로는 ‘확장적 억지(Extended deterrence)’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속내라면, 중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발표는 미일의 이런 의도를 철회시키려는 ‘강제’라고 단순화하여 정리할 수 있다.


이제 중국은 전통적인 대륙국가에서 해양국가로의 변모를 공언한 셈이다. 방공식별구역이란 항공기의 비행영역을 염두에 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해상에서의 활동공간이다. 더욱이 주변국과 겹치는 부분이 상존함에도 중국은 의도적으로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독점지역인양 선포했다.


애초에 양보나 타협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우리 국방부의 수정요구를 일고의 머뭇거림도 없이 거부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중국은 ‘봉쇄’되느냐, ‘진출’하느냐라는 양단 기로의 갈림길로 자신을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상호 핵 보유국이기에 미국과 중국이 직접 충돌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유지된 핵전략인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에 의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현실적 신뢰성은 떨어진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미·중의 핵 균형을 유지하는데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과거 대륙국가로서 지위를 버리고 해양국가로 국가 정체성을 정립하고자 국가 전략과 방향을 전환하려고 하는 한, 태평양에서 미중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양상은 중일 해상갈등 같은 대리전(Proxy war)의 성격을 띨 것이다. 일본-인도-호주를 삼각형으로 잇는 대중국 거대 해상 봉쇄망을 돌파하려는 중국과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 간 재래식 무기에 의한 갈등과 충돌 가능성이 높아질 우려가 짙어진 것이다.


일본은 대륙으로의 진출을 시도했던 해양국가였다. 이런 일본과 최초로 현대적 동맹(1902년, 1904년)을 맺었던 원조 해양국가는 영국이었다. 대륙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섬과 같기에 일찍이 국가 정체성을 해양국가로 자리매김한 미국 또한 동북아의 핵심 동맹국으로 일본을 택했다.


대륙국가와 해양국가가 부딪힐 때 반도국가가 타협점이 되거나 중재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해양국가와 해양국가가 충돌할 때 반도국가는 자칫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다. 해양국가는 완충지역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제로섬 게임만이 존재한다. 이제 동북아에서 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오바마 행정부의 핵 정책은 안보, 국방 분야에서 핵의 비중과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이로 인한 전력 공백은 재래식 전력을 첨단화하고 외교, 경제 등의 비군사적 대응을 공고히 함으로 메우고 있다. 미사일 방어망(MD) 구축과 미국산 최첨단 전투기의 양산과 수출은 그 방증이다.


이런 접근방식은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 시절 미국의 핵 전략이었던, ‘다양한 형태의 적 도발에 대해서 그 수준에 맞는 다양한 대응을 한다’는 ‘유연반응전략(flexible response)’과 유사한 면이 많다. 다양한 도발상황에 대한 다각적 대응 수단을 갖춰 억지의 효과성과 신뢰성을 동시에 높이는 이중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핵 전략 발전사의 궤적을 서로 잘 아는 중미의 진검 승부가 다가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동북아의 안보균형의 판을 흔들 수 있는 독립변수는 북한의 핵이다. 중국이 동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봉쇄를 뚫고 기세를 잡기 위해 선제적으로 나오는 한, 북핵은 수면 아래로 당분간 숨을 것이다. 6자회담은 북핵 문제를 담아둘 보기 좋은 투명한 그물이다. 미국을 향해 6자회담 재개를 독촉했던 중국은 미국에게 북핵이란 재갈을 먼저 물리고 싶었던 것일까.


중국은 방공식별구역 발표를 통해 동북아시아에서 자신의 영토야욕을 노골화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미 해군 대학장이던 마한제독의 통찰은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 한반도 운명을 넘어 이제 동북아시아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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