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현지취재] “위조달러, 北시장에 ‘공용화폐’로 유통”














▲ 평양 제1백화점 식품부
최근 북한의 시장 상인들 사이에 100달러 짜리 위조지폐 ‘슈퍼노트'(초정밀 위조달러)가 실제 ‘공용화폐’처럼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그동안 슈퍼노트는 중국 등지와 거래하는 일부 무역상과 마약밀매상이 진폐에 끼워 사용해 왔으나, 지금은 장마당을 비롯한 북한시장에서 ‘비공식 결재수단’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초부터 북한 일부 상인들 간에 ’70달러 가치’로 유통된 슈퍼노트는 6월을 지나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위조달러가 사실상의 ‘화폐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사실은 북한과 무역업을 하는 중국인, 조선족 무역업자, 북한 내 화교들의 공통된 증언으로 밝혀졌다.

7월 26일 중국 단둥(丹東)에서 만난 조선족 무역업자 박철웅(가명, 43세)씨는 “북한 내부에서는 위조달러가 거래수단으로 사용된 지 꽤 됐다”며 “지금은 상인들끼리 슈퍼노트를 거래수단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물건을 소량으로 1000 달러 정도만 거래해도 조선돈 5,000원권(북한 최고액 화폐)으로 600장(7월 현재 북한 시장환율은 1달러 2950원)을 싸들고 다녀야 하니까, 상인들은 아예 위조달러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상인들은 조선돈을 믿지 않기 때문에 취급을 안 하려고 한다. 2002년처럼 물가가 갑자기 수십 배로 오르면 상인들은 앉아서 돈을 다 날린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달러만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는데, 진짜 달러는 워낙 부족하다보니 위폐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북한 돈의 가치가 너무 떨어져 시장에서 거래하려면 돈 가방 몇 개를 들고 다녀야 한다고 푸념했다. 이들은 또 “자고 일어나면 물가가 뛰기 때문에 북한돈으로 거래를 하면 할수록 손해가 더 커진다”고 말했다.

위조달러 단속도 거의 없어









지난 5월 투자상담차 신의주를 다녀온 조선족 김영만(가명, 38세)씨는 “100달러 위폐를 거리낌 없이 70달러로 계산하는 것을 보고 북한이 어디로 갈지 진짜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무력부 후방총국에서 나온 무역사업소 일꾼들까지 해산물이나 수제품을 중국에 내다 팔면서 중간 상인에게 값을 지불할 때는 위조달러를 사용한다”며 “북한 당국자들이 위폐를 대규모로 내부에 유통하기 시작하면 큰 혼란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사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달러를 가지고 있다”며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진폐를 보관해놓고 위폐는 말 그대로 ‘교환수단’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가 위조달러를 근절한다고 난리지만, 아직 북한에서는 먼 나라 이야기”라고 했다.

단둥 개발구(開發區)에서 북한과 무역업을 하는 중국인 A씨는 “미국이 위조달러를 근절한다고 큰소리 치지만 아직은 효과가 없는 것 같다”면서 “70달러로 거래되는 위폐 가격도 안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은 “북한당국이 제조하는 슈퍼노트 이외에 컴퓨터로 복사된 위폐도 발견되지만, 이것은 거래수단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 내부에서 위조달러가 얼마만큼 유통되는지는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장마당 등 일반상인들 사이에서 거래수단으로 인정될 정도라면 위조달러가 예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이는 북한 당국이 2002년 12월 채택한 대외거래 유로화 단일결재 정책이 실패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지난 7월 26일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인터폴의 위조달러 관련 회의에서 북한을 ‘위조달러의 온상지’로 지목하며 근절방안을 논의한 시점에서, 위조달러가 북한내 일반 상거래에서 공용화폐처럼 유통된다는 사실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단둥(丹東) = 권정현 특파원 kjh@dailynk.com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