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특파원 3개월 추적③] 北 백일해 번져…영아 사망 속수무책

최근 북한에서 급성 호흡기 전염병 ‘백일해(百日咳)’로 함흥, 청진 등지에서 수 명의 어린이가 사망했고, 청진에서는 12세 미만 어린이들의 장거리 여행이 통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변지역을 방문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올 봄부터 기침을 하고 앓는 어린애들이 많아졌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호흡기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은 처음 확인된 것이다.

“함흥, 1살 안된 영아 수 명 사망”

12일 연변자치주 투먼(圖們)해관을 통해 중국에 입국한 여행객 박철만(가명. 62세. 함남 함흥)씨는 “4월 중순부터 함흥시내의 탁아소, 유치원 아이들 사이에서 백일해가 번지기 시작했고, 6월에는 1살도 안된 영아들 수 명이 사망했다”며 “함흥과 청진에서는 갓난아이부터 소학교 아이들까지 여행이 통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변자치주 옌지(延吉)에서 만난 여행객 강순미(가명. 59세. 사리원)씨도 “황해도 일대에서도 백일해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씨는 “앓고 있는 아이들은 탁아소, 유치원, 소학교 별로 격리시키고 있으며, 부모들이 아이들의 약과 먹을 것을 매일매일 날라주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백일해’란 보드렐라 백해일균 감염에 의한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5세 미만의 유아에게 주로 발생하며 세계적으로 해마다 40만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 전염병이다. 1~3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증세를 나타내는데 눈물, 콧물, 기침을 동반한 고열증세가 지속된다.

WTO의 보고에 따르면 감염자의 사망률은 최대 15%(개발도상국 기준)에 이르며, 만 6개월 미만의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밝혀져 있다. 후유증으로는 고열로 인한 뇌손상과 고질적인 폐간질 증상 등 유발될 수 있다.

강씨에 따르면 감염된 어린이들의 부모들은 당번제로 유치원, 탁아소, 학교에 수용된 아이들을 돌보고 있으나, 해당지역의 의사나 보건일꾼들은 상주하지 않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강씨는 “어차피 병원에는 약도 없고 의사도 없으니 유치원이나 탁아소에서는 ‘학부모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며 “가끔 의사들이 와서 격리되어야 할 아이들과 귀가조치 할 아이들을 판정해주는 일만 해줄 뿐, 모든 병간호는 부모들이 직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양 제외 아동 접종체계 무너져

북한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2002년 이후 평양을 제외한 지역에서 신생아 및 아동들에 대한 예방접종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연변자치주 룽징(龍井)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 의사 김모씨는 “2001년까지는 함경도 지방까지 유엔이나 외국의 원조약품들이 병원∙진료소에 조금씩이라도 들어왔는데, 요즘은 장마당으로 다 흘러 들어간다”며 “돈도 없고 의학지식도 없는 일반주민들이 때 맞춰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또 “10살이 넘는 아이들도 ‘백일해’ 같은 병에 쉽게 걸린다는 것은 북한에서는 아이들에 대한 예방접종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덧붙였다.

유엔인구기금(UNFPA) 자료에 따르면 2004년 북한의 1세 미만 영아사망율은 출생 1천명당 58명으로 한국(5.3명)에 비해 무려 1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당시 유엔아동기금(UNICEF)은 북한에 제공한 원조물품을 근거로 “5세 미만의 북한 어린이들 92.4%에 대해 백일해, 파상풍, 디프테리아 등을 예방할 수 있는 DPT를 접종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중국 옌지(延吉) = 김영진 특파원k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