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인도적인 문제는 적십자에 맡기는 것이 훨씬 낫다”

▶전날 북한 주민들이 청취한 대북 라디오 방송 중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자유조선방송/3월 7일>

논평-인도적인 문제는 적십자에 맡기는 것이 훨씬 낫다.

지난 5일 남한 정부는 이산가족상봉 정례화 등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적십자 실무접촉을 하자고 북한에 제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조선적십자중앙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전화통지문을 통해 사실상 거부했습니다. 지금은 이산가족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가질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못하다는 겁니다. 또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같은 중대한 인도적 문제들은 남북 적십자 간 협의로 해결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핑계를 댔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는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보면 적십자를 통한 접촉을 통해서는 저들이 필요로 하는 걸 얻을 수 없다고 본 것 같습니다. 적십자보다는 고위급 접촉을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를 비롯해 5·24제재조치를 해제하고 동시에 지난 시기처럼 비료나 기타 지원을 끌어내자는 것입니다. 물론 김정은 정권이 현 난국을 헤쳐 나가려면 위에 말한 이 모든 것들이 해결돼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산가족상봉과 같은 인도주의 문제와 함께 버무려서 해결할 문제는 아닙니다. 인도적인 문제와 정치현안 문제는 어디까지나 따로 분리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것도, 5·24제재를 불러온 것도 다 김정일, 김정은이 자초한 일입니다. 놀러 온 사람을 그것도 여성을 총으로 쏴 죽이고 최고지도자가 담보했으면 됐다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하자고 뻗치는 한심한 짓을 언제까지 보일 작정입니까. 5·24제재도 그렇습니다. 정상적인 순찰활동을 하는 천안함을 폭파해 수십 명의 젊은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주민들이 살고 있는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을 감행해 결국 5·24제재를 불러왔으면 어떻게든 다시는 이런 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재발방지 약속을 해야 할 게 아닙니까.

환경과 분위기는 남북 서로가 만들어가는 겁니다. 수차례 밝혀왔지만, 이산가족 문제는 그 어떤 사안과 연계됨이 없이 남북 간에 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더더욱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산가족상봉이 정례화 돼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정기적으로 만난다면 환경과 분위기가 좋아질 것은 물론이고 남북관계 발전의 주요한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인도적인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남북 간 적십자에 맡기는 보다 더 통 큰 용단 내리길 바랍니다.

<북한개혁방송/3월 8일>

지도자의 길-위험을 무릅쓴 도전이 있어야 개혁 개방을 시작할 수 있다.

북조선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민의 안녕과 나라의 발전을 위한 조선개혁방송입니다. 오늘 개혁개방 실천강좌에서는 목숨을 각오한 위험을 무릅쓴 도전이 있어야 개혁 개방을 시작할 수 있다는 데 대해 말씀드립니다.

인류력사를 뒤돌아보면 모든 승리와 성공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 것이 아니라 목숨을 각오한 도전과 열정으로 이룬 것입니다. 인류의 기원도 자연에 대한 도전의 결과였고 갈릴레이는 목숨을 위협하는 종교재판에 끌려갔다가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탈북자는 북조선의 김정은 독재정권이 붕괴하려면 외부로부터의 강력한 자극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북조선 내부에서는 김정은 독재정권을 붕괴시킬, 인민의 분노를 폭발시킬 수단과 힘과 요인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김정은 정권에 강력한 타격이라는 자극을 주어야 한다고 지식인, 간부 출신 탈북자들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부 전문가들도 김정은 정권이 붕괴의 위기에 처한 것은 100% 확실하지만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으면 김정은 독재정권이 붕괴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만큼 북조선 김정은 독재정권의 탄압과 학살이 무자비하다는 것이고 그에 맞설 수단과 힘과 용기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와 같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독재의 탄압에 무기력하게 목숨을 잃어가며 독재에 굴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력사와 현실과 리론 모두를 뒤져보아도 가만히 앉아서 변화를 이룩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개혁과 개방은 분명히 인민을 위한 것입니다. 중국의 과거와 오늘에서 그리고 동유럽과 쏘련(소련), 로씨야(러시아)의 현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민이 독재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노력한 만큼 잘 살 수 있으려면 개혁과 개방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인민을 위한 개혁과 개방은 북조선의 인민들, 특히 간부와 군관들이 목숨을 각오한 도전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독재자 모택동의 권력을 위해 1950년대 말의 대약진운동으로 4천여만 명이 희생됐고 그 결과로 모택동은 주석 자리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모택동은 주석 자리를 되찾기 위해 1960년대 후반부터 1976년까지 문화대혁명으로 천만 명을 넘게 희생시키고 주석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로므니아(루마니아)의 차우세스꾸(차우셰스쿠)는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은 사람으로서 1970년대 후반에 평양을 방문하여 감탄하고 돌아가 독재를 했습니다. 김일성식으로 부인까지 내세워 독재를 했지만 결국 로므니아 인민들의 반독재 투쟁을 불러왔고 여기에 군대가 참여하면서 차우세스꾸는 총살당했습니다.

1980년대 쏘련 공산당 총비서 고르바쵸브는 개혁개방을 했지만 력량이 약해서 혼란을 겪다가 쏘련이 해체됐습니다. 그 이후 로씨야의 보리스 옐찐(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쿠데타를 당했지만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도전해 사회주의로의 복귀를 막았습니다.

중국 개혁 개방의 아버지라는 등소평도 개혁 개방을 하면서 많은 저항을 겪었고 시련도 있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개혁 개방이 사회주의를 붕괴시키고 자본주의로 가는 길이라면서 등소평의 개혁 개방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등소평은 1992년 남순강화라는 남부 개혁개방 거점 방문을 통해 개혁 개방이 인민이 원하는 것이고 옳은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등소평은 자칫하면 제거될 수도 있을 만큼 도전을 받았지만 맞받아 나아가 개혁개방을 유지했고 결국 오늘의 중국을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북조선에서는 이러한 도전이 불가능합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모두 력사에 유례없는 잔악한 독재자들이어서 도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의 싹까지 완전히 소멸해버립니다.

1998년 자기들에게 식량 배급을 준 간부들을 지지했다고 해서 황해제철소 로동자들을 땅크(탱크)로 잔인하게 깔아뭉개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정일의 지시에 의한 것인데 북조선은 행동과 말은 물론이고 개혁 개방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 알려져도 정치범 관리소로 잡아가는 잔혹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이다 보니 간부들과 군관들이 하나로 뭉치기 어렵고 그래서 한두 명씩 모여서 반독재 투쟁을 시도하다가 체포 처형되는 사건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조선의 간부와 군관, 지식인과 청년들이 목숨을 각오하고 개혁과 개방을 위해 김정은 독재에 도전해 나서 투쟁해야 합니다.

목숨을 내건 도전이 없이는 개혁과 개방을 할 수 없습니다. 북조선에서 개혁과 개방은 독재자 김정은을 제거해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독재자 김정은 제거가 개혁 개방의 시작입니다.

북조선의 개혁과 개방은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과 달리 독재자와 몇 안 되는 그 심복들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북조선에는 0.001%의 언론, 출판,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도전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도 도전을 해야 합니다. 목숨을 각오하고 김정은 독재탄압에 도전해서 투쟁해야 할 리유는 명백합니다. 지난 북조선 정치력사를 보면 왜 김정은 독재정권을 끝장내고 개혁과 개방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지 피의 교훈으로 알 수 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독재가 북조선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최악의 인권탄압국가, 노예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잔인한 독재자를 반대해 싸운 사람들을 북조선 혁명력사에서는 종파라고 합니다. 종파는 곧 다른 사상과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로 뭉쳤거나 뭉치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종파는 다양한 생각과 사상을 가질 수 있다고, 그런 생각들이 국가와 인민을 위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지금의 자본주의의 자유민주주의와는 큰 차이가 있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그러한 방향이고 이들은 모두 종파로 숙청됐습니다.

1950년대, 60년대 종파사건과 1990년대 말의 심화조사건, 1991년의 푸른제군사아카데미 간첩단 사건, 6군단 사건 등은 본질에서 다릅니다. 종파사건은 김일성 독재통치를 반대했던 사람들에 관한 사건이고 심화조사건이나 푸른제군사아카데미, 6군단 사건 등은 저항했던 사건이 아닙니다.

심화조사건의 경우 고난의 행군 이후에 높아진 개혁과 개방의 싹과 분위기를 완전히 자르고 김정은 독재 권력을 다지려는 것이었습니다. 심화조사건으로 수천 명의 간부들이 무기력하게 당했는데 이 사건은 김정은 독재정권의 종식을 위해 간부들이 목숨 걸고 투쟁해야 하는 리유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인민들은 너무나도 노예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장성택 처형과 대 숙청 역시 간부들이 목숨이 아깝고 해서 행여나 하는 미련으로 무기력하게 있다가 처형당한 대표적 실례입니다.

김정일이 조세웅을 숙청하고 김용순, 오진우, 연형묵 등 최측근을 모두 제거한 것은 이들이 목숨 걸고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룡해가 숙청되고 나면 그다음에는 김원홍, 조연준, 민병철 등으로 피의 대숙청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피의 대가로 김정은은 절대 권력을 만들고 3대 세습을 완성하고 4대 세습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려야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인민이, 간부들이, 군관들이 자신을 지키고 가족과 인민을 위하려면 개혁개방을 해야 하고 그러자면 목숨을 걸고 투쟁에 나서야 합니다.

이상으로 개혁개방 실천강좌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조선개혁방송 김승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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