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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국제사회의 거듭된 인권우려에도 불구하고 공개처형을 중단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체제유지 방안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일본 아사히TV를 통해 공개된 지난 7월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집행된 편직공장 노동자 유분희의 공개처형 현장은 북한 당국의 이러한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진행된 이번 공개처형은 ‘군중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지난 4월 함주읍 공개장소에 진행된 공개비판에서 유분희에 대한 1차 군중투쟁이 진행됐다. 2차는 사형집행을 통한 군중투쟁 방식이었다. 1차 군중투쟁에서는 주민들을 동원해놓고 유 씨의 죄목을 공표하고, 인민의 이름으로 사형까지 처할 수 있다고 공개 선포했다.
2차 군중투쟁은 사형 집행을 군중투쟁의 한 부분으로 끼워넣어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했다. 군중투쟁은 ‘궐기대회’와 달리 주민들 사이에 일어난 각종 사상문제나 범죄행위를 공개적으로 공표하고 혐의자를 공개석상에 끌어내 비판하고 죄를 묻는 자리다.
지난 7월 공개처형을 시작하면서 보안서 관계자는 “지금부터 강간 살인범죄자 김구에 대한 공개처형과 각종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처벌하는 군중투쟁을 시작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도희윤 피랍인권연대 대표는 “최근 함남 함주뿐 아니라 단천 등지에서도 총소리가 울렸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있다”면서 “최근 식량난이 심해지고 국제적 고립이 가속화되면서 사람을 죽이면서 정권을 연장시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공개처형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최근 체제위기가 고조되면서 당국자들의 위기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금융제재로 통치자금이 말라가고 미사일 발사에 따른 국제적 고립이 가속화 됐다. 여기에 집중호우로 수해가 발생해 식량난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지도부의 체제 위기감이 고조되자 공개처형 등으로 공포 분위기를 형성해 체제단속에 나선 것이라는 지적이다.
체제 이완 방지 위해 공개처형 지속
일각에서는 식량난과 탈북자 발생 지속, 외부 정보 유입과 외국 영상물 범람 등으로 사회기강이 흐트러지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 보위부·보안서 등의 국가기관들이 나섰다는 해석도 있다.
식량난이 극심했던 90년대 중반 북한에서는 생계형 절도와 살인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대량의 탈북자가 발생한 바 있어 이런 조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 방침일 수 있다.
국제사회의 중단 요구에도 공개총살을 계속하는 데는 이를 인권유린으로 보지 않는 북한 당국자들의 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북한 당국자들이 공개처형에 대해 별 문제 의식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북한 법조항에 공개재판을 합법화 하고 있는 조건이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쉽게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 아무리 비난을 가해도 당국자들이 ‘그것이 무슨 문제냐’라는 식의 사고를 유지하면 요지부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에 발간된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2006년 2호는 “공개재판은 군중을 교양하고 각성시키는 데 매우 큰 작용을 한다”며 “범죄자와 그의 가족, 친척들은 물론 주민들에게 법과 규정을 지켜야 하며, 그것을 어기면 법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강한 자극을 주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보안서(경찰) 출신 한 탈북자의 말에 의하면 97년 경 “매년 2000명씩 사형하라”는 지시가 내부적으로 하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계층의 구분 없이 마구 죽이다 보니, 기본(동요)계급 출신들이 적대계급에 포함되는 등 극심한 계급변동 현상이 초래됐다.
북한당국은 과도한 공개처형으로 인한 혼란과 충성분자 이탈을 막기 위해 2000년경부터 공개처형을 실내처형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이른바 ‘군중교양’ 차원의 공개처형은 중단하지 않고 있다.
공개처형은 김정일 체제의 폭압정치가 낳은 산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의 폭압체제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공개처형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