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후 ‘北인권’ 인식 긍정적으로… “남북관계 개선 착시효과”

"北인권 상황 변화 없어…남북관계 발전이 인권 개선 가져온다는 기대 경계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20일 백두산 정상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 정세에 획기적인 사건들이 이어짐에 따라 북한인권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국내외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착시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이사장 이재춘, 이하 NKDB)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센터포인트빌딩에서 ‘2018 북한인권에 대한 국민인식’ 발간 기념 세미나를 개최하고, 지난해 12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 간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NKDB는 2014년부터 매년 북한인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관심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를 진행해왔으며,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국민들의 북한인권 관련 인식이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NKDB는 “지난해 북한인권에 대한 국민들의 긍정적인 인식은 2015~2017년 결과보다 매우 높게 나타났으며, 부정적인 인식은 매우 낮은 상태로 변화됐다”며 “유엔과 국제사회, 북한인권단체 및 전문가들은 남북·미북관계 개선에도 불구하고 북한인권 상황이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으나, 국민들의 인식은 매우 큰 변화를 보이고 있어 그 원인과 배경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번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5.4%가 ‘북한의 인권상황이 심각하다’는 인식을 보였다. 북한인권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응답자의 비율이 95.7%에 달했던 앞선 2017년 조사와 비교해보면 응답률이 10.3%p 감소한 것이다.

또한 ‘북한인권이 과거에 비해 개선되고 있다’는 응답률은 2017년(5.3%)에 비해 33.0%p 증가한 38.3%로 나타났으며, 반대로 ‘나빠지고 있다’는 응답은 8.9%로 2017년(46.5%) 조사 때보다 37.6%p 감소했다.

이에 NKDB는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과 남북관계 개선 조짐에 의한 착시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북한인권의 실제 상황과 국민인식의 변화 과정을 지속적으로 분석해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조사에서 ‘북한인권이 더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5.1%인 반면, ‘더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30.4%로 나타났다. 2017년 조사에서는 개선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률이 16.7%이었고, 반대로 개선 가능성이 없다는 응답률은 81.2%였다. 2017년과 2018년 조사 결과를 비교해보면 사실상 정반대의 응답 성향이 나타난 셈이다.

이를 두고 NKDB는 “기존 남북대결 구도에서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안도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며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회담 진행이 북한인권 개선을 자동적으로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는 경계할 필요가 있으며, 북한인권 문제의 실질적 개선을 위한 국내외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총회가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본회의를 열고 북한 인권침해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사진=김성일 데일리NK 기자

또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할 사항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36.3%가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한 압박’을 꼽았고, ▲꾸준한 대화를 통한 개선촉구 및 지원(33.8%)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확대 및 활성화(16.3%) ▲북한인권피해 기록 및 홍보(8.0%) 등이 뒤를 이었다.

여전히 가장 많은 응답자들이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한 압박’을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우선적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2017년 조사 당시 같은 문항에 동일한 응답을 한 응답자의 비율이 49.4%였던 것에 비하면 수치는 오히려 13.1%p 줄었다.

반면 대화를 통한 지원을 우선적으로 해야한다는 응답은 2017년 26.2%에서 2018년 33.8%로 7.6%p 증가했다. 이는 북한인권 개선 방법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국제공조와 압박’에서 ‘대화와 지원’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남북관계의 평화무드를 환영하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고 NKDB는 평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윤여상 NKDB 소장은 “남북·북미회담에서 북한인권이 본질적으로 다뤄진 바 없음에도 이로 인해 북한인권에 대한 인식이 역전되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북한인권 실태에 변화가 없지만 국민의 인식만 널뛰기를 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 소장은 “북한인권에 대한 인식이 실제적인 정보에 근거하기 보다는 남북관계나 국제사회의 대북유화 제스쳐, 또는 언론 보도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라며 “북한인권 실체와 인식의 괴리감이 심화되고 피해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언론이나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고 역할을 충실하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군인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 일대 북한 군인들. /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한편, 이번 조사에서 국민들이 여전히 ‘공개처형’과 ‘정치범수용소’를 북한인권의 핵심적 의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개처형에 대해 들어봤거나 알고 있다는 응답률은 90%가 넘었고,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들어봤거나 알고 있다는 응답률 역시 80%를 넘어 예년과 마찬가지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북한인권 이슈에 꼽혔다.

이어 ‘보편적 차원에서 북한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67.9%(2017년 73.6%), ‘북한 내부의 문제이므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자가 27.2%(2017년 22.9%)를 차지해,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외부 개입에 대한 인식은 과거의 조사 결과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밖에 국민들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 집단으로 ‘북한 정부’(40.6%)를 꼽았다. 이어 ▲유엔(15.9%) ▲국제인권단체(13.5%) ▲한국 정부(12.8%) ▲미국 등 각국 정부(11.6%) ▲국내 북한인권 단체(3.7%) 순으로 집계됐다. 2017년 조사와 비교해 ‘북한 정부’라는 응답은 8.0%p 증가했고, ‘한국 정부’라는 응답은 6.0%p 감소해 변화폭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다.

NKDB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이번 조사는 전국의 만19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유무선 RDD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했다. 표본은 지역별, 성별, 연령별 기준 비례할당 추출했고, 유효 응답자 총 8199명 중 1000명이 응답해 10.9%의 응답률을 보였다. 표본오차는 무작위추출을 전제할 경우, 95%의 신뢰수준에서 ±3.1%p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