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 혜택봤던 北 농민들…지금은 ‘끼니걱정’

“전쟁 나서 죽기 전에 배고파서 죽겠다. 차라리 전쟁이나 쾅 터져서 중국에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20일 함경북도 내부소식통이 전하는 북한의 민심이다.


그는 “요즘은 국가에서 남조선이 전쟁책동을 벌이고 있다고 연일 떠들고 있지만 생활에 지친 백성들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외면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특히 “요즘은 농촌사람들 마저 죽겠다고 아우성”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1.30 화폐개혁 조치가 몰고 온 후과가 이제 농촌까지 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에 따르면 함경북도 온성군의 경우 1개 인민반(30세대 전후)에서 하루 세끼 ‘옥수수쌀’로 밥을 지어 먹는 사람들은 고작 4~5세대에 불과하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통옥수수를 삶아먹거나 옥수수국수를 죽처럼 쑤어먹고 있다.


그는 “그럭 저럭 강냉이밥이라도 먹고 있지만 부식물까지 장만할 여유는 없다”면서 “끼니 마다 오이생채나 염장무 한가지를 놓고 대충 먹는다”고 말했다.


화폐개혁 이후 그나마 먹고 사는 걱정이 덜했다고 평가됐던 농민들의 생활이 왜 갑자기 어려워졌을까?


소식통은 “시장 물가가 너무나 급작스럽게 오르고 내리기 때문에 장사에 나서는 농민들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온성군 시장에서는 20일 현재 쌀 1kg에 1050원이다. 이달 초에 비해 100원정도 떨어졌지만 석달 전에 비해서는 두배가량 오른셈이다. 1위안은 북한돈 215원에 거래되고 있다.


사실 북한 농민들은 화폐개혁 조치의 유일한 수혜자였다. 지난해 12월 사상 최대 수준의 ‘현물 분배’가 이뤄졌다. 통상 전년 대비 15~20%정도 늘었다고 한다. 또 화페개혁의 후속 조치에 따라 지금껏 구경도 못했던 노임을 세대당 1만~2만원씩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내내 불안정했던 시장물가 때문에 농민들의 장사도 쉽지 않다. 한달 주기로 쌀 가격이 두세배씩 올랐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한번에 고작 옥수수 20~30kg정도를 시장에 내다팔고 있는 농민들에게는 원하는 만큼 값을 받기가 힘들어 진 것이다. 또 생필품 물가가 상승한 탓에 씀씀이도 헤프게 됐다.


북한에서 농민들은 모두 협동농장에서 일하는 것이 의무다. 부업으로는 개인별 소토지 농사를 짓는다. 그러면서 틈을 내서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한다. 말은 ‘부업’ 이지만 실제 소토지 농사와 장사가 농민들의 ‘생업’이다. 개인 소토지에서 옥수수 농사를 지어 식량에 보태거나 시장에 내다팔아서 필요한 생필품을 장만한다.


그런데 시장불안으로 장사마저 쉽지 않은 판에 개인 소토지 농사도 시원치 않은 상황이다.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나름 손에 꼽히는 소토지 농사를 짓는다는 최 모씨의 경우 1500평 소토지에서 매년 3톤 정도의 옥수수를 수확한다. 협동농장에서 분배받는 양이 옥수수 300kg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3톤은 적지않은 수확량이다.


그러나 비료비용, 산림감시원에 바치는 뇌물, 협동농장 간부들에게 바치는 뇌물 등을 빼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은 1톤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올봄 비료대란으로 인해 지난해에 비해 비료투입량이 크게 줄었다. 


올 가을 최 씨가 지난해 수준 만큼이라도 수확을 한다고 쳐도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50만원 정도다. 한달 수입 ‘4만원’ 정도는 시장 노점상들의 한달 수입보다도 못하다는 것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소토지 규모가 500 ~600평에 불과한 농민들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한편, 소식통은 “강원도에서는 먹을것이 없어 굶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더 뒤숭숭해졌다” 말했다. 그러면서 “4인 가족이 하루에 감자 1㎏이나 강냉이국수 1㎏을 가지고 죽을 쑤어 먹고 사는 집들도 여럿”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국가에서 텔레비존이나 노동신문을 통해 ‘미국과 남조선이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고 떠들면 주민들끼리는 ‘무슨 개소리를 치는가’라며 불만을 터뜨린다”고 말했다. 남한의 전쟁준비가 사실이라면 이 와중에 한가하게 ‘당대표자회의 성공적 완수’나 떠들고 있는 북한 당국의 행태가 말이 안된다는 지적이다.


주민들은 “(국가에서) 백성들을 쫄굴(통제할) 명분이 없으면 꼭 저렇게 전쟁 이야기로 들들 볶는다”면서 “제발 좀 가만 놔뒀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진짜로 전쟁이나 터져서 지긋지긋한 이 생활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식의 발언도 서슴치 않고 내뱉는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