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 핵실험장 취재에 남측 배제? 北 여전히 ‘묵묵부답’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할 한국 기자단의 명단 수령을 재차 거부하고 있다.

통일부는 21일 오후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오늘 판문점 연락채널은 종료됐다”며 “우리측 기자단 명단은 전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이날 오전 9시 판문점 연락사무소 업무 개시 통화 폐시에 풍계리 행사 취재를 위한 남측 기자단의 명단을 전달하려 했으나, 북측에서 ‘(접수하라는 지시를) 받지 못했다’며 수령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적으로 판문점 연락사무소의 업무 마감 통화가 이뤄지는 오후 4시까지도 이 같은 상황에는 변화가 없었다.

정부는 연락사무소의 연장 근무 의사를 북측에 전달했으나, 북측은 ‘오늘은 더 이상 주고받을 연락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 12일 외무성 공보를 통해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의식을 진행한다고 밝히면서 미국·영국·중국·러시아 및 한국 언론의 취재를 허용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표했다.

이후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남측 1개 통신사와 1개 방송사의 기자를 각각 4명씩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이에 따라 북핵 주무부처인 한국 외교부의 기자단은 담당 언론사를 선정하는 절차를 거쳐 풍계리 행사 취재를 위한 준비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돌연 한미연합 공중훈련인 ‘맥스선더’ 등을 거론해 대남 비난의 수위를 높이면서, 행사 취재를 위한 한국 기자단의 명단 접수를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 압박 의도와 관련,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가장 약한 고리인 남북관계를 활용해 미국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데일리NK에 “존 볼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식 해법을 거론하고,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서도 강경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북한 스스로가 수세에 몰려 있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며 “‘1년 안에 북핵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고 하니, 북한 입장에서는 이대로 협상전에 나가면 미국에 끌려갈 수 있다고 판단해 몸값을 올리고 협상력도 제고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보상 없이는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북한의 의지도 읽힌다”며 “북한은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지와 체제 보장 등 원하는 것을 분명히 제시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같은 전략에서 가장 취약한 구조인 남북관계를 건드리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북한은 앞으로도 이 같은 전략을 활용해 원하는 바를 최대한 얻으려는 움직임을 지속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관측이다.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할 한국 취재진이 21일 북한이 지정한 5개국 취재진의 집결지인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하고 있는 모습.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한편 북한이 남측 기자단의 명단 접수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 취재를 담당할 한국 기자 8명 중 4명은 이날 오전 항공편으로 북한이 지정한 취재진 집결지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당초 이 중 일부는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 방북 비자에 대해 문의할 계획으로 알려졌으나, 취재진 차원의 직접적인 요구는 일단 자제해달라는 한국 정부 측의 입장을 수용해 북한대사관 접촉을 유보한 상태다.

현재 정부는 북한이 내일(22일) 오전 중 기자단의 명단을 접수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만큼,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북한대사관이 내일 중 극적으로 남측 기자단 명단을 접수하고 방북 비자를 발급할 경우, 한국 취재진은 22일 타국 취재진과 함께 북한이 마련한 항공편을 통해 원산 갈마비행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