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포커스] 김일성·김정일 유훈과 北 핵보유 의지

지난달 9월 19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 후에 남북기자공동회견에서 김정은은 다음과 같이 연설을 하였다. “조선반도(한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합의 하였습니다.” 9월20일 조선중앙TV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방송을 내보면서 김정은의 육성이 담긴 영상을 직접 방영하지 않았지만 김정은이 핵관련 연설한 내용을 앵커의 입으로 그대로 옮겼다. 같은 날, 노동신문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께서와 문재인 대통령이 <9월 평양공동선언>과 관련한 공동발표를 하시였다’는 타이틀로 북핵 관련 김정은의 연설내용을 다음과 같이 옮겼다.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확약한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바로 뒤이어 ‘9월 평양공동선언문’도 그대로 올렸는데, 비핵화 관련한 5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과 남은 조선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였다.”

이번 김정은 연설 및 평양공동선언문에서의 5조인 “조선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는 지난 4월 판문점선언문의 제2조 4항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와는 분명 결이 다른 것으로 평가된다. 판문점 선언문의 ‘완전한 비핵화’는 남한의 미국 핵자산 및 핵전력을 선행적 조치로 하는 조건부적인 성격이었다면 이번 평양공동선언문의 ‘조선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동질인 ‘핵위협’이 후순으로 가고 ‘조선반도를 핵무기가 없는’이 앞으로 나왔는데, 이것은 북핵 포기가 선행된 문장으로 보여 질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문재인 대통령도 정상회담 후 귀국하여 대국민보고에서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 것이 지난달과 크게 달라졌다고 표현한 것 같다.

문제는, 9.19 김정은의 연설이 북한 주민들에게 교시 및 담화의 성격을 갖느냐이다. 왜냐하면, ‘수령제’를 표방하고 있는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의 교시가 헌법과 당규약보다 상위법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헌법개정을 통해 2012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명시했다. 하지만 헌법보다 더 상위법인 당규약 개정을 한 2016년 제7차 당대회에서는 확실히 ‘핵보유국’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김정은이 사업총화보고에서 “수소탄 시험과 광명성 4호 발사의 대성공으로 주체조선의 존엄과 국력을 최상의 경지에서 빛내였다.”,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이미 천명한 대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 북한은 당규약 개정을 통해서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2018년 4월 20일,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무기 병기화’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언급한 김정은의 교시는 여러 차례 있었다. 위에서 기술한대로, 이미 2016년 당대회 개회사에서 북한을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 연설하였다. 이번,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나온 ‘핵무기 없는 조선반도’는 이전의 김정은의 교시인 ‘핵보유국’ 선언에서 조금 벗어난 ‘핵 포기’ 뉘앙스를 살짝 비쳤다고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문제는 현재 북한에는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의 교시보다 훨씬 더 높은 권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바로 김일성의 교시이다. 김일성의 유훈이다. 필자가 집중하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지도적 권위비교 연구를 통해서볼 때, 북한은 여전히 유훈통치가 강력하게 작동되고 있다. 북한사회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사회정치적생명체론’의 핵심은 수령을 ‘뇌수’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북한에서의 ‘수령’은 김정은이 아니라 김일성이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김정은에게 ‘수령의 지위’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북한의 당 문건, 정치문건 뿐만 아니라 어떠한 언론매체에서도 김정은의 이름앞뒤에 ‘수령’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있다. 2012년에 ‘영원한 수령’으로 추대받은 김정일에게도 ‘김정일 수령’이라고 지칭하는 북한 매체는 한군데도 없다. 다만 김일성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들’, ‘선대 수령님들’이라고 지칭할 뿐이다. 이것은 현재, 북한의 ‘뇌수’는 여전히 김일성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고 죽은 김일성이 여전히 북한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정권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핵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김정일 시기에도 그러했듯 이번에 북한을 방문한 남한 특사단이 언론 앞에서 가장 내세웠던 말이 김정은이 ‘김일성의 유훈’에 따라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보였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핵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에서 최고권위인 김일성이 정말 비핵화 의지가 있었는가, 비핵화에 대한 교시 및 유훈을 남겼는가에 주목해야 될 것 같다. 2016년 7월 6일 북한 국무위원회 대변인이 다음과 같은 성명을 냈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위대한 수령님과 어버이 장군님의 유훈이며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령도 따라 나아가는 우리 당과 군대, 인민의 드팀없는 의지이다”고 했다.

그런데,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최강의 국가 방위력을 마련하기 위해 한평생을 다 바치신 장군님과 위대한 수령님의 염원을 풀어드렸으며 전체 인민의 장구한 세월, 허리띠를 조이며 바라던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을 틀어쥐였습니다.” 여기서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은 핵무기, 핵 무력의 대표적인 상징용어이다. 이 김정은의 발언을 볼 때,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은 분명, 북한의 핵보유인 것 같다. 과거 북한에서 핵 학자였던 이의 증언을 빌리자면, 김일성은 비밀교시에서 ‘조국통일을 위해서 핵은 필수적이다“고 했다고 한다. 또한, 김정일도 “조국통일은 핵에서 시작해서 핵으로 완성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핵 관련, 김일성의 교시 및 유훈은 분명하다.

김일성의 권위를 뛰어넘을 수 없는 김정은의 현재의 처지를 감안해보면서 다시금, 김정은의 9.19 정상회담 후 연설을 들여다보면, 그 방점이 ‘핵위협도 없는’이라는 후자에 찍힐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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