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대담] 북한이 베트남 ‘도이모이’ 방식 채택할 수 있나?

[북한 정상국가로 가는 길-경제편②] "시장화 흐름 멈출 수 없어…북한식 개혁개방 선택 불가피"

김정은 응우옌 푸 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이 3월 1일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열린 양자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베트남과 국가 건설, 사회·경제 발전 경험을 공유하고 교류를 강화하고 싶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일 베트남 하노이 주석궁에서 열린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과의 양자회담에서 “베트남 국민이 이룬 국제통합과 사회·경제발전에서 이룬 성과를 보게 돼 기쁘다”며 이 같은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매체들은 “회담에서는 자기 나라의 정치경제형편들이 호상 통보되고 두 당, 두 나라 사이의 친선협조관계를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여러 분야에 걸쳐 더욱 확대발전시킬 데 대해서와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였다”고 간략히 보도했지만,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사실상 ‘도이모이’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다는 의향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쫑 주석은 도이모이 정책 도입의 성과와 집중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공유하면서 북한과의 우호협력을 확대하길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베트남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베트남식 개혁개방정책에 관심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여 해외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베트남식 개혁개방 정책 ‘도이모이’. 북한은 지금 ‘도이모이’와 같은 방식의 경제발전을 꾀하고 있는 것일까.

데일리NK·국민통일방송은 최근 ‘북한 정상국가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와 북한 경제 전문가인 박은주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연구교수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부에 이은 이번 2부에서는 ‘도이모이’의 성공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베트남식 개혁개방 정책이 북한에 도입된다면 북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는지, 북한이 ‘도이모이’를 받아들일 때 유의해야할 점은 무엇인지 등 보다 심도 깊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이에 데일리NK는 ‘북한 정상국가로 가는 길-경제편(Part 2)’의 핵심 내용을 문답식으로 정리해 소개하고자 한다. 태 전 공사와 박 연구교수의 대담 전체 내용이 담긴 영상은 국민통일방송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태 전 공사와 박 연구교수의 대담 일문일답.

태영호(이하 태): 베트남은 도이모이를 통해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베트남이 시장경제체제로 가겠다고 했을 때 시장경제의 원리와 맞지 않는 국영기업들이 문제가 됐을 것 같다. 그런데 북한은 거의 모든 기업이 국영기업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박은주(이하 박):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사유재산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유재산제가 없는 시장경제체제는 없다. 베트남의 경우도 개혁개방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국영기업들이 민영화됐다. ‘도이모이’를 추진하면서 총 4단계로 나눠 기존 국가가 운영하던 수많은 기업들을 민간에 매각한 것이다. 베트남은 기간산업을 제외한 국유기업에 대해 민영화를 추진했는데, 북한 역시 이 같은 경로를 따라야 할 것으로 본다.

태: 국영기업을 민간에 넘기고, 가격도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가다 보면 결국 사유재산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 사유재산 인정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지 않나.

박: 베트남과 중국 등 경제 개혁개방에 성공한 국가들이 토지 등과 같이 상징적인 부분에서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장기사용권 판매 등으로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북한도 초기에는 이런 유사한 경로를 따르겠지만, 경제체제 개혁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차라리 통 크게 사유재산제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시장원리인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원분배를 결정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선택의 자유와 결과(보상)의 보장을 기반으로 하는 사유재산제가 반드시 인정돼야 한다.

태: 베트남이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박: 정치체제의 변화 없이 경제체제만 개혁개방에 성공한 것이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베트남과 같은 공산국가는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면 개혁개방 자체가 추진되기 어렵다. 베트남이 경제난 극복 의지가 높아 적극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것이 지금 베트남을 있게 만든 것이다. 대내적으로 사회주의계획경제체제를 개혁하고 본격적인 경제개방정책을 펴서 해외투자와 국제사회의 원조를 적극 유치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베트남 당국이 외국인 직접투자를 늘리기 위한 법과 제도의 개선을 단행하고,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하고, 국제기구의 원조를 거절하지 않고 빠르게 인프라를 구축한 것 역시 큰 요인이다.

태: 북한이 시장을 개방하면 해외투자도 늘어날 것이다. 과거 시장경제를 채택했던 공산권 국가들은 결국 체제가 붕괴됐다. 북한도 체제 붕괴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까.

박: 외국인 직접투자를 늘리는 것은 체제 붕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경제체제가 변화된다면 당연히 사회변화가 수반될 수밖에 없지만, 기본적으로 국가의 체제는 정치체제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체제 붕괴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모델로 베트남식 개혁개방모델을 택한 것도 이런 고민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이 베트남, 중국 등 경제체제 전환국들의 사례를 통해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고 사회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경로를 선택한다면 체제 붕괴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다고 본다.

태: 베트남식 개혁개방 정책이 북한에 도입된다면, 어떤 부분이 가장 크게 변화될까.

박: 북한 주민들의 자율성이 높아질 것이다. 시장경제체제는 모든 경제활동 주체들이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경쟁을 통해 자원분배를 결정할 수 있는 체제다. 주민 개개인의 경제활동 참여 의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던 사인 간의 거래가 양성화되니 더 빠르게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태: 사실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우 우선 경제정책에 대한 오류를 대담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에는 결국 김일성-김정일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 돼 김정은이 먼저 나서지 않는 한 누구도 나설 수 없는 문제다. 그런 면에서 북한의 베트남식 개혁개방, 가능할 것이라고 보나.

박: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만 가지고도 안 되는 일이다. 국제사회가 지지해줄 것인지에 성패가 달려있다. 북핵문제가 원만히 해결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베트남도 경제난에 시달리던 국민들의 목소리를 더는 외면할 수 없어 개혁파를 중심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북한 내에서도 시장화의 흐름이 멈출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은 경제 개혁개방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태: 북한이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받아들일 때, 특히 유의해야할 점은 무엇인가.

박: 베트남은 특히 국제금융기구 등으로부터 공적개발원조(ODA)를 받는 등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국제기구의 원조를 받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대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모니터링 등을 허가하기도 했다. 북한도 개혁개방을 본격화하면 인프라 구축을 위해 공적개발원조를 다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어차피 개혁개방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면 국제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겁내지 말고, 국제사회의 개발원조를 적극 받아들여 경제발전 시간을 단축해야 할 것이다.

또한 베트남 정부는 경제구조 개선 및 2020년 산업국가 달성 위해 금융, 국영기업, 사기업, 무역 및 공공재정 개혁 위한 중장기 개혁정책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베트남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베트남이 이미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내놓는 솔루션을 보고 북한은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 세계의 생산기지가 중국-베트남에서 인도-북한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동시에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장기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 주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대외에는 평화와 관계 개선을, 내부적으로는 경제개발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한 비핵화 진전과 내부적인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정상국가 건설에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고 유화적 태도도 대북 제재를 해제하기 위한 꼼수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북한이 이야기하는 정상국가와 우리가 바라보는 정상국가 개념이 상이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데일리NK·국민통일방송은 태영호 전(前)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와 각 분야(정치, 사회, 경제, 인권, 통일 등)별 전문가와의 대담을 통해 북한이 개혁해야 할 문제들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해법과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