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박사의 북한읽기] 북미회담과 김정은이 가려고 하는 길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북미정상회담, 북미공동성명 채택’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6.12 북미정상회담이 역사적인 회담으로 남을 것인지, 아닌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북미 정상들이 서명한 공동합의문에 구체적인 내용이 있고, 없고는 더욱 그러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상이 독재국가의 최고지도자와 만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인간의 정을 나누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이상은 바라지도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절반이 핵전쟁의 발원지에서 평화를 위해 어둠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 땅에 발자국을 남겼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싱가포르에서 보여준 모습

이번 싱가포르 행에서 김정은의 행보는 우리가 그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독재자’, ‘살인마’, ‘냉혈동물’의 이미지에 물음표를 붙이기에 충분했다. 셀카를 찍고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싱가포르 지식·경험 배우고 싶다’ 등의 발언은 너무도 소박하고 솔직한 그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싱가포르 행을 통해 김정은은 자기에게 권력을 물려주었지만 정상적인 나라는 물려주지 못한 할아버지·아버지와 다른 새로운 ‘북한’을 꿈꾸는 것 같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한 행보를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지난 기간의 그릇된 관행을 이겨내고 구태정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여기까지 오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솔직하고 소탈하게 이야기했다.

‘안개속의 나라’에서 성장한 젊은 지도자는 과거의 많은 관행의 프레임에서 정신적 고충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자력자강을 이념으로 하는 국가의 지도자이지만 남의 비행기로 먼 거리 비행을 마다하지 않고 가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고 대중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거침이 없으며 새로운 문물에도 거부감이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6월 10일 싱가포르에 도착해 2박 3일간 머물며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역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은 참으로 대단한 결심을 했고, 실천했다.

싱가포르 동남부의 마리나베이에 있는 초대형 식물원 가든바이더베이에서는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외무장관과 여당 유력정치인인 옹 예 쿵 교육부 장관과 함께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셀카’를 찍었다. 몰려들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대는 군중을 향해서는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도 보여줬다.

김정은 위원장은 1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앞두고 모두 발언에서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걸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백년 숙적인 철천지원수 미국과의 역사적 대결과 반목과 질시의 북미관계를 염두에 둔 발언이겠지만 과거와 결별하겠다는 의지가 넘쳐나는 발언이다. 정권은 세습했지만 할아버지의 사회주의 인덕정치와 자력갱생, 아버지의 주체와 선군의 실패로 인한 가난과 폐쇄, 고립이라는 유산을 떨쳐버리고 밝은 세상에 나오려는 고고성으로 들린다.

한밤 중 싱가포르의 명소에서 나들이를 하면서 김 위원장은 북한의 과거와 결별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의 대표적 상징물인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보고 “싱가포르가 듣던 바대로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건물마다 특색이 있다”며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귀국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들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무장관과 사진을 찍고 있다. 김 위원장은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했으며 11일 저녁 싱가포르 시내를 관광했다. / 사진 = 비비안 발라크라슈난 외무장관 페이스북 캡쳐

김정은이 없는 북한은?

젊은 지도자가 싱가포르에 가있는 동안 북한은 말 그대로 전시상태였다. 북한 소식통에 의하면 ‘위대한 영도자의 외국방문 기간 최고의 충성심을 발양하여 긴장하게 살아야 한다’는 노동당의 지시가 전국의 모든 지역에 하달되었고, 모든 군부대들에 ‘비상’이 걸렸으며 국경과 해안, 군사분계선의 초소들에 상급 검열원들이 파견되었다.

전국의 모든 단위들에서 6.25전쟁 시기 김일성의 업적을 찬양한 김일성 도록 제33판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조직영도, 남조선의 넓은 지역 해방” 제34판 “새로운 반공격을 위한 투쟁 조직 영도, 당 안에 혁명적 규율 확립”등의 내용이 수록된 학습제강이 침투되었고, 사회주의 우월성에 대한 집중강연이 전 사회적으로 진행되었다.

김정은이 100여명의 호위를 받으며, 싱가포르의 명소를 관람하고, 초호화 호텔에 식품까지 공수해 가면서 싱가포르에서 일정을 소화할 때 북한 주민들은 평소 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해야 했다.

북한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습이다. 과연 김정은이 그토록 보장받고 싶어 하는 체제는 어떤 것인가? 정치적으로 독재와 권위주의 통치를 유지하면서도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세계 10위 수준인 6만1천766달러에 이르는 싱가포르가 북한의 롤모델일 수도 있다.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서며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김 위원장의 의지는 더 크게 드러난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우리는 오늘 역사적인 이 만남에서 지난 과거를 걷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서명을 하게 된다”라며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확대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훌륭한 출발을 한 오늘을 기화로 해서 함께 거대한 사업을 시작해볼 결심도 서 있다”고도 했다. 권력을 물려준 선대의 북한과는 다른 모습을 실천으로 보여주겠다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드러난다.

남의 비행기를 타고 4천700㎞를 날아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GDP 세계 10위의 싱가포르를 체험한 그가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 어떤 실천을 행할지 주목된다.

이제 며칠 지나면 6.25 전쟁 발발 68주년이 된다. 북한은 연례적으로 6월25일~7월27일을 ‘반미투쟁 월간’으로 정하고 각종 행사를 통해 승양이 미제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선동을 진행해 왔다. 새로운 출발을 약속한 북한이 이제 더는 죄 없는 주민들을 광장에 끌어 내여 삼복더위에 땀을 빼는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바라건대 그가 원하는 체제가 2천 5백만 북한주민들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는 진정한 민주체제로 거듭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