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정상회담 제안 대답없는 北…이게 냉정한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평양정상회담 당시 대동강수산물식당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한 지 2주일이 지났다. 문 대통령이 지난 15일 “북한의 여건이 되는대로 장소,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남북이 마주 앉자”며 공개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는데 아직까지 북한의 답이 없는 것이다.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특사 파견 방안도 검토되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 이렇다 할 발표가 없다.

4.27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행사는 남한만의 반쪽 행사로 끝났다. 남북 정상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은 역사적인 사건의 첫 기념일인데, 북한에서 아무도 참가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정부의 남북대화 시도에 대해 북한의 호응이 없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최근 행보를 보면 북한이 지금 집중하고 있는 쪽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24일부터 26일까지 집권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우군 확보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 방문 전에는 지난해 11월 이후 5개월 만에 연이틀 군사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공군부대 비행훈련을 참관하고 신형전술유도무기 사격시험도 참관한 것이다. 지금의 판을 깰만한 대형 사건은 아니지만, 한동안 자제하던 군사행보를 재개했다는 것은 장기대치를 결심한 미국을 향한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북러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태도를 비난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전적으로 미국의 차후 태도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 지난해에는 하루 만에 정상회담 응했는데

북한의 주요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 지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난해 5월 26일 판문점에서의 2차 남북정상회담이 급하게 이뤄졌던 것과 비교해보면 북한이 지금 남한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지난해 5월 24일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전격적으로 발표하자, 다급해진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찾았다. 문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 놓인 북미정상회담의 동력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문 대통령은 당시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의 요청을 받고 단 하루 만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다. 남북 간의 신뢰를 쌓아 한반도 현안을 푸는 것이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문 대통령이 직접 공개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2주일이 되도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과의 대치, 러시아 방문 문제로 아무리 바쁘다고 한들, 문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안에 신경을 쓰고 있다면 이렇게까지 무반응일리는 없을 것이다.

북한은 오히려 매체들을 통해 외세의존을 하지 말고 북한의 편에 서는 민족공조를 하라며 남한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과의 장기대치를 결정한 상황에서 한미동맹으로 묶여있는 남한과 접촉해봤자 얻을 게 없다는 판단, 좀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자면 남한의 이용가치가 이제는 떨어졌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도 싶다. 북한이 이렇게 남한을 외면하면서 남북협상을 통해 북미 교착을 풀어보겠다는 우리 정부의 구상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과거를 냉정하게 짚어봐야

북한이 어려울 때 도와줬더니 이제는 홀대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 정부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우리 정부가 북한의 속임수에 이용만 당했다는 비판을 내놓고도 있다. 상황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남북관계가 다시 정체기에 접어든 지금 지난 시기 진행됐던 남북, 북미 간 대화의 과정을 보다 냉정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과거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 정부가 그동안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한반도 문제를 풀어보려던 시도를 비난할 수는 없다. 비록 그것이 난관에 부딪혀있고 또 어느 정도는 북한에 의해 이용당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정부의 노력 자체가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분단국가 정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 정부가 그동안 ‘기대’에 부풀어 보고 싶은 것만 보려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점도 되짚어봐야 한다. 북한이 지금 ‘영변만의 비핵화’를 고수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데, 지난 시기 비핵화 협상에 대한 희망에 들떠 북한의 의도에 대한 의구심을 지적하는 시각들을 일부러 도외시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판적인 시각들도 수용하면서, 북한이 다소 듣기 싫어하더라도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가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세밀하게 확인하고 북한이 해야 할 일들을 제시하는 노력들을 꾸준히 했다면, 하노이 노딜까지 가는 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하노이에서 노딜이 되지 않았다면 남북관계도 지금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 비핵화 협상이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의욕이 앞서 긍정적인 시나리오만 그렸던 것은 아닌지 이 시점에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진보보수 대립 때문에 건전한 비판 도외시해선 안 돼

앞으로의 한반도 정세는 상당히 유동적이다. 북미 모두 대화의 의사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비핵화의 본질’을 놓고 서로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지금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유동적인 국면이 전개될수록 희망을 앞세운 판단을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냉정한 현실인식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자칫 더 위험한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다. 진보-보수 진영 간의 대립이 건전한 비판 의견을 일부러 도외시하게 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정책의 지향성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것이 현실을 외면하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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