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범 석방 노력’ 서독에게 배워라

▲ 베를린 장벽을 넘는 동독 주민들

지난달 23~25일까지 금강산에서 개최됐던 제 6차 적십자회담에서 납북자ㆍ국군포로의 생사 및 주소확인에 대한 협의가 결렬된 후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손기웅 <통일연구원> 남북관계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2일 연구원 정세분석에 기고한 ‘동서독간 정치범 석방거래’라는 제하의 글에서 동독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독 정부의 노력을 설명,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정부의 자세 전환 필요성을 시사했다.

서독은 동독내 정치범들에 대한 인권유린 실태가 심각하다고 판단, 1963년부터 30여년간 이들의 석방을 위해 비밀협상을 통한 물자지원을 계속해왔다. 그 결과 총 33,755명의 정치범이 석방됐으며, 동독의 인권개선이나 동서독 통일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손 연구위원은 “향후 남북관계에서 이산가족 재결합, 납북자ㆍ국군포로 문제의 해결에 참고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정부, 北 인권문제 관심부터 보여라

그는 “통일 이후를 바라볼 때 이러한 ‘정치범 석방 거래’가 동독 정권의 내적인 정통성을 본질적으로 약화시키면서 체제붕괴에 일조를 하였다는 점에서 그 정치적 의미가 간과될 수 는 없음을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군포로가족모임> 서영석 대표는 “우리 정부도 이와 같은 사례를 본 받아 충분히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며 “정부의 의지가 약해서 그런 것이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서 대표는 “국군포로는 이산가족문제와도 성격이 또 다른 문제로 한국 정부가 반드시 송환해야 할 책임이 있는 분들”이라며 “이제는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목의 대북지원과 국군포로 및 납북자들의 송환을 연계시키는 문제를 확실하게 제기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치범수용소 관련 국내 첫 학위논문을 발표했었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사무국장 오경섭(고려대 대학원 북한학과)씨는 “서독은 동독과의 화해협력 정책을 지속하는 한편으로, 동독의 인권상황 개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지만 한국은 교류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지,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씨는 “한국 정부는 먼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태도를 변화하고, 적극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며 “그 다음에서야 동서독의 사례를 교훈삼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갈 수 잇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 다음은 손 연구위원이 기고한 글의 요약.

분단 기간 동독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투옥된 정치범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었으며, 서독 측은 동독 주민의 인권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정치범 석방을 위한 거래 (Häftlingsfreikauf, 이하 정치범 석방 거래)’를 1963년부터 시작하게 된다.

‘정치범 석방 거래’는 동독의 정치범들을 서독으로 자유롭게 이주시키기 위하여 서독정부가 외환이나 상품을 동독에 지불한 거래를 말한다.

서독은 동독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국제적인 회의를 통한 간접적 형태로의 논란 제기나 비밀협상을 활용한 특별사업을 추진하는 양면정책을 전개하여 점진적으로 동독의 인권상황이 개선되도록 시도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정치범 석방 거래’는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했다.

1963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까지 ‘정치범 석방 거래’를 통해 34억 4천만 마르크가 동독 측에 제공되었으며, 그 결과 33,755명의 정치범이 석방됐다. 이 사업을 시작할 당시 동독에는 12,000명의 정치범이 투옥되고 있었으나, ‘정치범 석방 거래’의 결과 통일 직전에는 그 수가 약 2,000~2,500명으로 줄었다.

당시 서독 내에서도 동독 주민의 인권문제에 대한 점진적인 개선이 아니라, 동독 정부가 전반적인 인권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동독과의 협력관계를 동결시켜야 한다는 여론도 많았었다.

서독 정부는 그러한 입장을 따르고 싶기는 하나, 동독으로 하여금 점진적인 인권상황의 개선마저 포기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고려에서 이러한 전략을 채택하지 않았다.

한편, 동독은 정치범의 존재여부에 대해서 동독에서는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짐으로 해서 처벌 받지는 않으므로 자국에는 정치범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독 지도부는 동독 주민들의 제 권리, 특히 이주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동독 체제의 존립문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동독 측을 설득하며, 비밀협상을 통해 ‘정치범 석방 거래’를 꾸준히 추진했다.

서독은 정부가 인신매매에 직접 개입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또한 외환을 동독에 지급할 수 없었던 점을 감안하여 교회를 통한 물자공급방식을 택했다. 이때에는 오직 물자만을 공급하였으며, 현금 형식으로 지불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독에서 공급받은 물자를 국제시장에 되팔아 마련된 외환의 상당부분을 주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동독지도층의 비자금으로 사용함으로써, 동독 정권의 유지를 위해 이용당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서독 정부는 “서 베를린의 서독 편입 문제, 주민들의 자유왕래문제, 동독 주민들의 분단고통 완화 및 자유와 인권보장을 위해서 동독과 타협하고 협상에서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