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번 걸려고 반나절 줄 선다”

▲ 공중전화기 앞에 줄을 선 북한 주민들 (북한의 대외선전용 사진)

최근 북한에서는 가정집에 유선전화를 설치하려는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며, 휴대폰이 몰수되면서 공중전화를 이용하려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유선전화 설치 비용은 북한 돈 45만원 이상이며, 4~5개월 이상을 대기해도 설치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간부용 휴대폰도 모두 몰수

중국 투먼(圖門)에서 만난 박영철(가명, 45세, 함북청진)씨는 “지난해 용천 폭발 사건 이후 휴대폰 사용이 철저히 통제됨에 따라 유선전화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 아직도 휴대폰 사용은 통제되고 있나?

“휴대폰은 구경하기조차 힘들다. 농촌은 물론이고 청진 같은 대도시에서도 휴대폰은 없다.”

– 당 간부들이나 기업소 지배인들은 어떤가?

“용천 사고 이후 모든 휴대폰을 회수했다. 지금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도(道)당, 보위부, 보안서 간부들도 휴대폰을 쓰지 못한다”

북한에서 사용되는 휴대폰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당국에서 공식 인정하는 휴대폰으로 2002년부터 유럽형 GSM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입비만 1300달러가 넘고 도시에서만 이용이 가능하지만, 평양에만 2만 명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가입자는 평양에 체류중인 외국인이고, 북한 주민들 중에는 당간부와 특수기관 종사자들이 특권의 상징처럼 보유해왔다.

▲ 북한 휴대전화는 2004년 5월 모두 몰수했다.

다른 하나는 북-중 국경지역 주민들이 몰래 사용하는 휴대폰으로, 중국의 통신전파를 이용한다. 사용자 수는 파악할 수 없지만 상당수의 북한 주민들이 중국, 한국 등 외부에 있는 가족과 연락을 취하거나 물가를 확인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파의 범위 때문에 내륙지방에서는 사용하지 못하며 북한 당국의 집중적인 단속대상이다.

그런데 2004년 4월 용천폭발사건이 휴대전화를 통해 외부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 당국은 공식적으로 인정하던 휴대폰마저 지난해 5월말에 모두 몰수해 버렸다. 외국인은 제한이 없지만 지금 북한 주민들은 합법적으로 휴대폰을 소유할 방법이 없다.

돈이 있어도 유선전화 설치 어려워

– 그럼 북한 내부에서 서로 어떻게 연락을 주고 받나?

“유선전화를 많이 사용한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전화로 다른 지역의 물가를 수시로 확인해서 물건들을 사고 판다. 돈이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유선 전화를 갖고 싶어 한다”

북한은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지역별 물가 차이를 이용한 장사가 성행해왔다. 예컨대 함경북도 회령에서는 쌀값이 싸고 명태가 비싼 반면 청진에서는 그렇지 않다면, 청진에서 명태를 사 회령에 내다팔고, 회령에서 쌀을 사 다시 청진에서 파는 식으로 차익을 남기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장사가 물가에 대한 어림짐작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전화를 통해 정확한 물가를 파악하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달러를 바꿔주는 환전꾼들도 매일 중국과 북한 내부 곳곳을 연락하여 환율 변동치를 확인하고 달러를 바꿔주는 ‘외환딜러’의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관련기사

북한에 ‘외환딜러’ 인기직종 급부상

– 유선전화를 놓는데 비용이나 절차는 어떻게 되나?

“예전에도 돈만 있으면 전화 놓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요새는 돈이 있어도 어렵다. 북한 돈으로 45-50만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 북한에서는 아주 큰 돈이다. 그런데 돈도 돈이지만 체신관리국의 집선(集線) 교환기에 끼워 넣을 IC기판이 부족해서 전화를 신청해도 설치된다는 장담이 없다.”

– 그러면 누군가 유선전화를 해지해야 새로 설치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결국 기판을 음성적으로 사고 파는 것이 전화 놓는 값이다. 여기에 집선 교환기가 있는 곳부터 자기 집까지 연결하는 전화선로 값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이렇게 비싸다”

2002년 7.1경제관리조치 이후 북한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임금수준이 1500∼2500원이므로, 45만원이면 거의 20년 동안 월급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 두어야 할 만큼 많은 돈이지만 “서로 설치하려 아우성”이라니 요즘 북한이 상당한 부유층이 형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동전화’는 신분증과 보증금을 맡기고 사용

– 공중전화 상황은 어떤가?

“북한에서는 ‘공동전화’라고 하는데 공동전화는 각 구역의 체신소나 체신분소에 2∼3대씩 있다. 농촌에는 대략 20∼30리 간격으로 체신소가 있고, 도시에는 10리 이상 간격으로 체신분소가 있다.”

– 요금 체계는 어떤가?

“시내통화는 1통에 10원이다. 예전에는 1원 50전이었는데 최근에 값이 올랐다. 물론 장거리 전화는 거리에 따라 더 비싸다. 미리 신분증과 40∼50원 정도의 보관금을 맡기고 줄을 섰다가 자기 통화가 끝나면 요금을 계산하고 신분증과 보관금을 찾아간다.”

– 신분증과 보관금은 왜 맡기나?

“전화요금을 물지 않고 도망가는 사람들 때문에 생긴 절차다”

–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사람은 많은가?

“우리집에서 체신소가 10리 정도 떨어져 있는데, 체신소에 가서도 보통은 30분 이상 기다려야 순번이 돌아온다. 전화 한번 하려면 반나절을 소비해야 한다. 그래도 항상 사람들이 몰린다.”

박씨는 “교통 통신만 좀 더 자유롭게 내버려둬도 인민 살림이 한결 나아질 텐데 이 정권은 조금 나아질 만하면 모가지를 틀어쥔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주민생활은 완전한 자본주의로 나아가고 있지만 정권은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조화(不調和)의 한 단면이다.

중국 투먼(圖門) = 김영진 특파원k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