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읽기] 2019년 북한을 보고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창린대 방어대를 방문했다고 지난달 25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2019년 기해년(己亥年)이 저물고 있다. 이제 손으로 꼽을 수 있을만큼 남았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지만 북한은 서해위성발사장(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서 ‘중대한 시험(실험)’을 성공했다며 국제사회의 비핵화 노력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돌아보면 남북관계와 대외관계, 경제발전, 한반도 평화 조성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가지고 출발했지만 눈에 띄는 소득이 없다.

남북관계와 비핵화는 요란한 수레에 불과했다고 본다. “큰 산이 무너지니 쥐 한 마리”라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결과가 없었다. 올해에는 북한의 비핵화가 한반도의 핵심 이슈였고 한 때 ‘종전 선언’까지 논의된 미북대화는 다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고 몇 년 동안에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에 몰두하다가 2018년 말 갑자기 핵무력이 완성단계에 들어갔다고 선포했다. 이어 올해 신년사와 당 전원회의를 통해 노선전환을 천명했다.

김정은은 ‘비핵·평화’, ‘정상국가’, ‘경제성장’을 위한 결단이라는 표현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국정방향을 제시했다. 이어진 협상 과정을 한 마디로 말하면 필자는 ‘기만’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쳇말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외교적 술수를 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은은 한미 정상들과 만남을 통해 국제사회의 신데렐라로 등장했고, 국제사회는 실질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주는 꼴이 되었다.

북미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올해를 정리하면서 우리는 “북한은 왜 비핵화를 주장했고, 그러한 북한을 상대로 국제사회는 무엇을 놓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북한 당국의 성적표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북한 주민의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북한 주민의 삶과 형편을 기준으로 볼 때 김정은 정권의 반인민성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가장 바라는 것은 정권 유지이며,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북한 주민의 의식 변화이다. 현재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경제강국들에게 포위돼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는 북한 정권으로 하여금 개혁개방보다는 핵개발에 주력하도록 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등에 둘러싸여 섣불리 개방하면 이 대국들에 완벽하게 예속된다는 생각을 김정은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그토록 벤치마킹하는 조부 김일성은 일찍이 “사람이 주견이 없으면 머저리가 되고 가장이 남의 말만 따르면 가문이 망하고 지도자가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경계하였다. 즉 정권을 유지하려면 주변국을 경계해야 하고 살아남자면 자체의 힘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핵무기이다.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 3대에 걸쳐 몇 백만이 죽어나고도 핵무기에 집착하는 이유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핵무기도, 비핵화도 아니다. 북한 주민들은 핵보유국 지위를 자랑스러워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핵에서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라고 비아냥대면서 비핵화 문제에도 무관심하다. 

북한 평안북도 삭주군 압록강변, 강원도에서 온 차량 짐 위에 북한 주민이 타고 있다. / 사진=데일리NK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은 무엇을 바랄까? 실제로 북한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생존, 인간다운 삶이다. 북한에서 웬만한 관료나 무역업자, 장사꾼들은 개혁개방을 원하고 있다. 개혁개방을 통해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경제생활, 사회생활에서의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받기를 원한다. 본질적으로는 이것이 민생과 민권을 보장한 민주주의라고 본다.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 인권, 삶의 질 개선”을 정권에 맡겨두고 비핵화 협상에만 나선다면 개혁개방이 이뤄질 것처럼 착각한 것이 국제사회와 한국의 실책이다.

내년 아니면 내 후년쯤 북한의 민생이 얼마나 처참한 상황에 처할지를 생각하면 사방이 암울하기 짝이 없다. 

1893년 갑오년의 농민들은 “어서가세 을미(乙未)적 대다가 병신(丙申)이 되면 못 가리”라고 노래했고, 그 노랫말은 예언처럼 이루어졌다. 당쟁과 권력의 향연에 빠진 왕조, 그리고 외세의 각축으로 민생은 날로 피폐해지고 국력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마침내 500년의 사직이 무너졌다.

어쩌면 오늘 북한 주민의 삶의 모습과 참혹한 내일이 이리도 그 때와 유사한지 소름이 끼칠 정도다. 비핵화를 한다면서 북한 정권은 군비증강을 계속하고 있고, 그 속에서 북한의 주민들은 1일 1달러 수준의 삶을 살고 있다. 오늘도 북한의 최하층은 생존의 갈림길에서 애타게 탈출의 길을 찾고 있다. 

한국사회는 북한의 이러한 상황을 꿰뚫어 보기는 커녕 김정은의 한마디에 국정이 오락가락 한다. 한반도 주변의 정세도 만만치 않다. 비핵화 협력을 구실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정권과 더 밀월관계를 가져가고 있다. 이 와중에 일본은 법을 고쳐서라도 유사시 해외파병을 합법화하려 들고 있다. 한미는 방위비 협상으로 동맹관계를 의심하게 하는 발언을 주고 받고 있다. 

요체는 북한 정권이 이끄는 비핵화가 아니다. 북한의 비핵화나 개혁개방의 주체는 주민이 돼야 한다. 북한 주민의 이익에 복무하는 비핵화 협상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국 북한 당국에 속는 결과밖에 낳지 않을 것이다. 개혁개방으로 북한 당국과 주민은 정반대의 결과만을 얻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핵화 보다 북한 주민의 안정된 삶을 위한 변화를 먼저 요구해야 한다. 초보적 인권 보장을 요구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핵보다 무서운 것이 각성된 국민의 행동이다. 그래야만 북한 주민들이 주도하는 성공적인 개혁개방이 실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