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원의 속심 2부] 6개월 전 그날에 있었던 일

[어느 필사원의 사건일지] '점쟁이' 찾아간 사실 재촉하는 북한 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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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위원이 찾아온 이유


지난 13년 8월. 북한 함경북도 무산군의 살림집 모습. /사진=데일리NK

보위원은 그제야 본론에 들어갔다.

“요즘 이 동네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그게 아줌마네 집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던데… 맞소?”

순옥과 남편은 떵했다. 최근에 무슨 말거리를 들고 다닌 적 없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순옥을 달구었다.

“여보, 당신이 무슨 말을 들고 다닌 거라도 있소? 여자들이란 그 입 건사가 말썽이라니까.”

남편은 얼굴에 화를 담고 꼬집어 떼듯이 말했다.

순옥은 발끈했다.

“난 그런 일이 없어요. 요즘에 무슨 말을 들은 적도 없고 누구와 말을 나눈 적도 없어요.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시장에만 매달리는 아줌마가 뭐가 경사 나서 남의 일에 비치고(참견하고) 다녀요?”

순옥은 보위원 앞이라 차마 펄쩍 뛰지는 못하고 욱하고 오르는 감정을 누르며 조용히 변명했다. 남편은 그 변명이 더 화가 난다는 듯이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화를 냈다.

“우리 집에 동네 아줌마들과 찧고 까불고 돌아가는 게 당신밖에 더 있소?”

부부는 서로 말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너무 고지식해서 탈이 날 자기부부가 무슨 일을 저질렀다는 건지 통 알 수 없었다.

순옥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보위원에게 들이댔다.

“보위원 동지, 우리처럼 당에서 시키는 대로 고지식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고 당만을 믿고 살아갑니다. 거의 20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하고 배급 한 번 못 타도 의견 한 번 부린 적 없습니다. 좋은 음식 한 번 못 먹어보고 시장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살며 어떤 날에는 한 끼씩 거니는 날도 있지만 나라가 어려운데 운명을 함께 하자고 한 생각밖에 없습니다. 고지식한 남편이나 그에 못지않은 내가 뭘 잘못하고 살아가는 일이 있겠습니까? 남편은 직장으로 나가고 나는 시장에 나갔다가 밤에 되어야 돌아오는데 이야깃거리를 만들 시간조차 없습니다.”

순옥은 그냥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듯이 열변을 토하며 반박했다. 남편도 보위원에게 칼로 찌르듯이 명백한 얘기를 해달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냥 직판(곧장) 말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보위원들은 마치도 사업상 원칙인 것처럼 직설적이고 정확한 질문을 피하고 음흉하게 들이댔다. 뱅뱅 외돌면서(비뚤어지게 돌면서) 자기들이 가진 정보와 또 다른 정보를 노리고 접어든다. 사람들은 교활한 수렁에 빠져들어 헛갈릴 때도 있다. 그래서 보위원이 노린 것이 아닌 사건 위에 사건을 만들어 자신을 더 노출시킬 때도 있다. 이게 보위원이었다. 이렇게 사람의 혼을 빼버린 다음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보위원은 부부가 심하게 말다툼까지 벌이자 담배 연기를 한껏 내뿜더니 주절주절 말했다.

“죄 진 것조차 모르니 한심한 사람들 아니겠소? 그럼 내가 먼저 묻겠소. 6개월 전, 추석날을 앞두고 이집에 뭔 일이 있었던 적은 없소?”

순옥과 남편은 아무리 생각해도 켕기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답답해버린 보안원은 그제야 정통을 찔렀다.

“앓은 적이 있다던데…”

보위원은 눈을 살포시 찌푸리고 물었다.

순옥은 그제야 언뜻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남편은 추석 전에 앓아 쓰러졌던 적이 있었다. 그때 점쟁이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그 때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숨이 나오지 않았다. 요즘 당에서 미신행위를 없애라는 방침을 지속적으로 내려 보냈다. 방침 침투 끝에는 조직별 총회도 여러 차례 있었다. 순옥은 그제야 가슴이 서늘해졌다.

더 뻗쳐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다 알고 온 사람에게 무슨 구구한 변명 따위가 필요하겠는가. 남편은 아직 무슨 말인지 못 알아차린 것 같았다. 순옥이 미끼를 덥석 잡아 문 것처럼 먼저 말을 꺼냈다.

“보위원 동지, 남편이 앓아누운 적이 있습니다. 그거 말씀 하시는 겁니까? 그 점쟁이한테 갔다 온 것 말입니다.”

순옥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어 말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이제야 알아차렸구먼.”

보위원은 회심을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덫을 물었다고 씨익 웃었다. 순옥은 겁도 나고 조금은 어처구니도 없었다. 그게 언제 일인데 지금에 와서 알고 끄집어내는 것인지 못마땅하기도 했다.

“보위원 동지 그게 언제 일인데, 그걸 이제 와서…”

순옥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변명 비슷하게 한마디 했다.

“6개월 전에 진 죄는 죄가 아니요? 얼마나 혁명성이 없으면 그런 행위를 하고 다니오? 아프면 병원을 찾아야지, 무당이 뭐요? 무당이. 어디 말을 좀 해보오. 동네를 팽글팽글 도는 그 소문을 나도 좀 들어보기오. 어떻게 된 사연인지 토 하나도 빼지 말고 말해보오.”

보위원은 빨리 고백하라고 남편과 순옥을 연방 쳐다보았다.

그날에 있었던 일


6개월 전이었다. 남편이 아프기 시작한 것은 시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날 아침부터였다. 제삿날 저녁까지 무탈했던 남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공장에 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지쳐 있었다. 서른아홉 해를 탈 없이 살아왔고 어제 밤까지도 아무 일 없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사람이 음식물만 먹으면 토했다. 물도 겨우 넘겼다.

그렇게 보름 동안이나 직장에도 못 나가고 진단서만 쌓였다. 몸은 점점 더 꺼져들고 기운이 없어 문턱도 넘어서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온 집안에 시름이 덮였다.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들이 달려와 남편을 데리고 여기저기 도 병원까지 오르내렸지만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소화제 몇 알을 타가지고 집으로 돌아왔고 여기 저기 용하다는 의원들을 다 불러들였으나 고칠 길이 없었다.

남편은 그냥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아프다는 소리만 내질렀다. 열흘이상을 연속 토하자 사람들은 암이 아니겠는가는 무서운 말도 오갔다. 순옥은 저러다 남편이 끝내 돌아가면 어쩌나 하고 가슴만 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침 치료를 하는 동네의 한의사가 찾아와 며칠간이나 이리저리 침을 찔러보고 차도가 없자 ‘귀신이 곡할 일’이라는 한마디 말을 던지고 돌아갔다. 그 말에 순옥은 정말 귀신 병이 있다더니 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무당을 찾아볼 생각이 났다. 하지만 말썽이 제기될까봐 망설였다. 설마 귀신 탓일까. 순옥은 생각을 다시 고쳐먹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루 이틀 더 지나자 남편의 병은 점점 심해져 갔다. 포도당 링겔만 걸고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얼굴이 반쪽으로 줄어들고 팔과 다리는 가늘어지고 죽은 사람처럼 늘어져 있는 것이 어느 날에 불상사가 날지 알 수 없었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순옥은 장마당으로 나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형편이지만 꼼짝도 못하고 남편 곁에 붙어있었다. 대신 시어머니가 장사 짐을 메고 시장으로 나가 풋돈이나마 벌어 들여놨다. 경제적 밑천도 없는 집은 하루하루를 꺼질 듯이 살아갔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고심 끝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무당집에 걸음을 하게 되었다. 그는 몇 년 사이에 신기가 떠올라 유명해진 ‘홍주’라는 점쟁이였다.

홍주는 24살인데 21살에 몸 안의 장기 한 부분에 이상이 생겨 죽을 뻔했다가 수술로 살아났다. 그때 살아나서 신기하게도 신기가 떠올랐는데 주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나 신기한지 단속하러 왔던 보위원, 보안원까지도 몰래 마누라를 보내서 점을 본다는 소문도 돌았다.

홍주네 집은 순옥이네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야산 밑에 있었다. 주위가 조용해서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용기를 내서 주인을 찾아 들어갔다. 무작정 대문을 밀고 들어가서 문을 두드리며 “점치는 집 맞나요?” 하고 조용히 물었다.

그러자 홍주의 엄마인 듯한 40대중반의 여인이 문을 열고 뛰어나왔다. 여인은 신발을 채 신지도 못하고 뛰어나오며 욕지거리를 해댔다.

“무슨 일로 대낮에 남의 집 빗장을 열고 들어왔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그리고는 무작정 밀어내고 대문을 닫아버렸다. 홍주엄마가 이러는 것은 잘못하다가 보위원이나 동네에 숨어 감시하는 정보원들에게 들키면 화를 당하기 때문이었다. 순옥도 잘 알고 있지만 상황이 급하니 어쩔 수 없었다.

순옥은 돌아오고 말았다. 하지만 누워서 그냥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날 밤중에 다시 홍주네 집을 찾았다. 동네에서 홍주를 잘 아는 한 여인을 데리고 떠났다. 그 여인은 순옥이 돌아온 후 이내 홍주에게 달려가 약속해 놓았던 것이다.

홍주네는 아무 말도 없이 받아들였다. 낮에는 보위부 밀정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최근에 정부의 방침이 내려지고 점쟁이들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면서 보위원들은 일부러 정보원들을 보내 집안에 점 보러 온 손님이 있는가를 확인하기도 했다.

홍주는 관상을 보는 점쟁이였다. 순옥이가 앉자 눈을 부릅뜨고 마주 보더니 말했다.

“쯧쯧. 지금 그 집 남편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군. 무슨 사람이 도리가 이리도 부족해? 조상이 노했어. 보름 전에 제사를 왜 그따위로 지냈어요? 해놓은 음식도 제대로 챙겨드리지 않고, 그게 무슨 꼴이야? 조상을 괄시해도 유분수지. 조상이 화가 단단히 났어. 살풀이를 해야 살아날 수 있어. 그러기 전에는 어림도 없어.”

홍주는 제법 나이 먹은 할멈처럼 사실을 직접 본 듯이 말했다. 홍주 말은 거의 맞아 떨어졌다. 그날 남편은 아버님 제사인줄도 모르고 어디서 술을 실컷 마시고 만취해서 돌아왔다. 한껏 속 타던 중에 제사를 지내고 보니 음식을 제대로 올려놓지 않았다. 전전긍긍하던 찰나에 남편이 나타나자 성급하게 차리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남편은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아 절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제사를 지내는 순서도 잃어버렸다. 제사가 끝난 뒤에도 집안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시어머니는 화를 참지 못해 계속 구시렁거리고 남편은 옷도 벗지 못한 채 제사를 지낸 그 자리에 쿵하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토하며 밥알을 넘기지 못했다. 과음 탓으로 내장 어느 한 구석이 무리를 가져왔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홍주는 그날 일이 그림처럼 선명하게 보인다는 듯이 혀를 쯧쯧 차며 욕질을 해댔다. 그리고는 방토(굿을 하는 등의 미신행위)를 해야 한다고 옹알거렸다.

“그 꼬락서니를 일으켜 세우자면 산에 있는 아버지 묘소에 올라가서 조상한테 비는 수밖에 없어.”

시아버지 묘소에 찾아올라가란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가면 안 되고 남편이 꼭 가야 한다고 일렀다. 아무리 여위고 먹지 못했어도 산으로 올라갈 힘은 있다고 한다. 다시 치를 제사 짐을 혼자서 등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서 빌라고 한다.

홍주가 말하는 짐이란 참 어려웠다. 집에서 제사 음식을 해가지고 가면 안 되고, 묘소 앞에 불을 피우고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기름 냄새도 한껏 피우라고 일렀다. 물만 해도 5리터 방통으로 곯지 않게 들고 가라고 하는데 그 많은 짐을 남편이 다 지고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순옥은 기가 막혔다. 제삿날에 일어난 일은 거의 맞는 말을 한 것 같은데 묘소에 찾아가서 제를 지내고 오면 낫는다는 말은 맞는 말 같지 않았다. 힘없이 집으로 돌아와서 시어머니에게도 전하고 남편에게도 말했다. 모두 코웃음 쳤다. 죽어가는 사람을 산에 올라가라는 것은 가다가 죽으라는 말과 같다고 콧방귀를 뀌었다. 시어머니는 괜한 짓을 했다며 점쟁이에게 바친 적은 돈이 아깝다고 야단쳤다.

남편은 눈을 감은 채 듣기만 했다. 가족들이 야단을 치니 방토에 대한 이야기는 하루 이틀 잠잠해졌다. 그날 저녁, 어스름한 저녁에 기회를 타서 홍주가 몰래 집으로 새어들었다. 그는 남편을 들여다보더니 한소리를 했다.

“글쎄, 방토를 할 것 같지 않더라니… 죽어가는 데도 이럴 셈이야? 빨리 산으로 올라가.”

홍주는 시어머니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며칠 후면 추석인데 그때 올라가서 하면 안 되오?”

순옥이 물었다.

“그때까지 살 수 있겠어? 살고 싶지 않으면 너네 마음대로 해.”

그리고 홍주는 씽하니 달아나갔다.

남편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다음날 한숨만 짓던 시어머니가 결심하고 달려왔다. 산에 올라가 제사 지낼 준비를 말끔히 해가지고 나타났다. 남편도 아픔에 너무 진했는지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 같았다. 그는 허약한 몸에 짐을 지고 산으로 올랐다. 순옥이 뒤따라갔다. 홍주가 말해준 그대로 제사를 지내고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부터 참 신기하게도 남편의 눈에서 광채가 돌았다. 남편은 상 위에 올린 밥을 한술도 안 남기고 다 먹었다. 그리고는 살 것 같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날부터 남편의 병은 낫기 시작했다. 며칠 후 남편은 언제 앓았던가 싶게 깨끗이 나은 몸으로 직장에 출근했다. 그런데 여기까지면 딱 좋으련만 홍주의 신기가 또 한 번 소문이 나버린 것이었다.

(계속)

* 편집자주 : 북한 보안서(경찰서) 등지에는 ‘필사원’이 있다. 사건을 기록하면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현지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를 당국이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데일리NK는 필사원 업무를 담당했던 한 탈북민의 증언을 통해 북한 체제의 속성을 파헤치고자 한다.

다만 본지는 일반적 기사체를 고집하기 보다는 소설적 기법을 사용해서 독자들이 사건의 흐름 및 북한 주민들의 심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