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 퇴직의사 단속이나 말라”

북한당국은 9월 초부터 퇴직의사들의 무허가 의료행위 등을 집중단속하는 ‘단속 그루빠'(group의 러시아어)를 조직, 비밀리에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속 그루빠’의 정식명칭은 알려지지 않았고, 주로 불법의료행위를 대상으로 하여 평양에서 파견된 태스크 포스팀으로 추정된다.

북한 내부 소식통에 의하면 8월 중순 각 시도 검찰소에 “개인 의사들을 없애기 위한 단속행위를 철저히 하라” “인민들의 건강생활을 돌보는 의사들이 인민건강과 무관하게 장사하는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적극 차단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검찰소 직원, 인민보안성 소속 보안원으로 ‘단속 그루빠’가 구성되어 활동 중이다.

우선 단속대상은 중국으로 밀수된 각종 의약품으로 무허가 의료행위를 하고 있는 퇴직 의사.

평안북도 용천시에서는 지난 9월 3일, 치료를 잘하기로 인근에 소문난 퇴직의사 박모씨(65세)의 집을 ‘단속 그루빠’가 급습했다. 박씨는 집안에 숨겨놓고 팔던 모든 약품과 의료장비를 압수당했으며 검찰소에 불려가 불법의료행위를 한 경위와 치료횟수, 치료대상, 벌어들인 돈, 약품 구입경로 등에 관해 강도높은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성병 만연, 음성 의료행위 늘어

북한은 그동안 ‘무상의료’를 체제우월성 선전의 주요한 도구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장기적인 경제난으로 인해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의사들이 국가로부터 임금을 받지 못해, 지금은 장마당에서 의약품을 구입하거나 의사에게 뇌물을 줘야만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병원이나 진료소에 근무하다 퇴직한 의사들이 관계당국의 허락 없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북한내부 소식통과 탈북자들은 전한다. 퇴직 의사들은 중국에서 밀수한 의약품을 장마당에서 사들여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으며, 필요한 가정을 은밀히 방문하여 의료행위를 행하고 있다는 것.

오랜 경험으로 인해 치료를 잘하기로 소문이 난 퇴직의사는 먼 도시에 출장진료까지 다니며 고위층과 부유층의 치료를 전담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퇴직의사들의 무허가 진료행위가 성행하는 이유 중에 성병(性病) 환자들이 크게 늘고 있는 탓도 있다. 북한에서는 ▲식량난 이후 많은 여성들이 생존의 방법으로 성매매(일명 ‘가정매매’)를 택하면서 매매춘이 성행하기 시작했고 ▲음성적으로 자본주의 문화가 흘러들어오면서 혼전 성관계가 급증했으며 ▲중국과의 무역과정에서 무역일꾼, 밀수꾼들이 중국인 성병환자들로부터 많이 감염됐고 ▲주민들의 성교육 부재와 불결한 위생환경에서 오는 감염 등으로 인해 성병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전근대적 사회 분위기 때문에 낙태나 성병치료 등을 목적으로 한 환자들이 합법적인 병원이나 진료소에서 수술이나 치료를 받지 않고 음성적인 의료행위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속 그루빠’의 불법의료행위 단속에 대해 주민들은 대체로 못 마땅히 여기는 분위기라고 북한 내부 소식통들은 전한다.

무상의료? 지금 무슨 소리냐?

신의주에 살고 있는 외화벌이 일꾼 정모(35세)씨는 “북한에서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을 수는 있어도 약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그러다 보니 퇴직한 의사들을 집으로 불러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국가에서 왜 막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무허가 의료행위를 하는 퇴직 의사들을 “국가에서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2004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 요녕성(療寧省)에 은신하고 있는 한 여성 탈북자(48세)는 최근 불법의료행위를 단속하고 있다는 소식에 대해 “그렇다면 주민들보고 앞으로는 병 걸리면 죽으라는 이야기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배탈이 나서 뒹구는 아이를 들고 병원에 뛰어갔더니 배를 이러저리 눌러보고는 의사가 ‘맹장염 같다’고 시큰둥하게 말하고는 ‘장비가 없어서 수술은 못한다’고 말했다”면서 “퇴직의사들 중에는 집에 수술실까지 갖춰놓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정씨의 아들도 퇴직의사가 수술을 해줬다고 한다.

“무상의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국가에서 의료장비를 갖추고 나서 개인 의사들을 단속하면 몰라도 이건 순서가 맞지 않다”고 정씨는 말했다.

중국 단둥(丹東)= 권정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