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놓고 보내되, 찾을 생각일랑 마시오”

▲ 은행 창구와 거래하는 주민

“이건 국가가 백성을 상대로 사기치는 건가? 돈을 못 찾는 줄 알았으면 당초에 부치지나 말 걸……”

지난 2월 초 함경북도 청진시 주민 김모씨(현재 중국 체류중)는 평안북도 태천군에 사는 박모씨에게 돈을 송금했으나 박씨는 송금액의 10%도 찾지 못했다. 김씨는 “박씨가 시간을 다투는 장사물건이 있다고 해서 부쳤는데, 돈도 못 찾고 물건도 못 사게 됐다”고 분개했다.

북한 주민들은 장사를 다닐 때 보통 현금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함북 청진서 평북 태천까지 기차를 타고 가려면 5일은 족히 걸린다. 따라서 김씨는 시간이 촉박한데다 “확실하게 담보를 해준다”는 체신소 직원의 말에 송금을 결심하였다는 것. 체신소는 남한의 우체국에 해당한다.

김씨가 청진체신소 직원에게 “송금하면 언제 받을 수 있냐”고 묻자 “내일이면 받을 수 있다”고 하여 마음을 놓았다고 한다. 이렇게 송금한 돈은 북한 돈 30만원(한화 약 10만원).

한편 송금통지서를 받은 박씨는 공민증과 도장을 가지고 태천체신소로 달려갔지만, 창구직원은 3만원만 내주고 “나머지는 3개월 후에 찾아가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박씨는 군당(郡黨)에서 일하는 간부를 내세워 돈을 찾으려고 담배와 술을 사 들고 다녔으나, 송금 받은 돈 30만원 가운데 절반도 찾지 못해 체신소 측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고 김씨는 전했다.

은행에 돈 맡기면 떼인다

최근 북한은 이렇듯 금융거래기관에 돈이 없어 주민들이 송금한 돈도 지급하지 못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은행도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 <조선중앙은행>은 국가가 운영하는 국영 은행으로 주민들이 거래할 수 있는 유일한 은행이다. <무역은행>이 있기는 하나, 무역기관과 외화를 소유하고 있는 고위층이나 부유한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다.

은행은 저금을 장려하지만, 주민들은 금리가 적어(저축이자 3%, 차용이자 6%) 대체로 저금을 하지 않는다. 저조한 금리를 받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장사하면 몇 배의 이윤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화폐 개혁이 번번히 실시되는 것도 북한 주민들이 은행에 돈을 맡기지 않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북한은 1947년, 1959년 1978년, 1992년에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1992년 화폐개혁 때에는 은행에 예금되어 있는 돈 가운데 390원만 교환해주고 나머지는 저금한 것으로 처리했으나 훗날 한 푼도 돌려주지 않았다. 국가에서 주민들의 돈을 떼어먹은 셈이다.

은행이 이 정도이니 체신소는 더 말 할 것도 없다. 북한의 체신소에는 중앙은행의 송금서비스를 대행해주는 시스템이 있다. 북한의 송금절차는 이러하다.

먼저, 송금하는 사람이 받을 사람의 주소와 이름을 적고 돈을 해당 체신소에 입금한다. 김씨는 청진에 거주하니 청진체신소를 이용했고, 체신소에서는 수취인이 거주하는 태천체신소로 “평북 태천에 사는 박△△ 앞으로 30만원이 송금되었다”고 타전해 줬다.

그러면 태천체신소에서는 박씨에게 “함북 청진에 사는 김○○에게서 30만원이 도착했으니 찾아가라”는 내용의 통지서를 보낸다. 수취인은 본인의 공민증, 도장, 송금통지서를 가지고 체신소에 가서 발송인과의 관계, 신상 등을 대조하고 현금을 찾는다.

김씨와 박씨는 이런 정상적인(?) 절차를 이용했지만 아직도 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박씨가 체신소 소장을 찾아가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체신소에 있는 돈을 빡빡 털어도 그 돈이 안 될 것”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과연 그 돈은 어디로 증발한 것일까?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