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져보세요, 北 경제난이 미국 탓인가?

▲ 북한 경제난이 미국탓이라는 김원웅 의원

미국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확산에 관여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북한 기업 3개의 미국내 자산에 대한 동결조치를 취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북한 기업 3개, 이란 정부기관과 기업 4개, 시리아 정부연구소 1개 등 모두 8개의 기관과 기업의 미국내 자산을 동결했다. 북한만을 타깃으로 한 조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산동결 조치가 취해진 이들 기관과 기업은 거래금지대상으로 지정돼 앞으로 이들과 거래하는 기관 ▪ 기업까지도 제재대상에 포함된다.

이를 두고 “미국의 대북경제제재에 시동이 걸렸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편승해 일부 친북좌파들은 “북한의 경제난은 미국의 경제제재 때문”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확산시키고 있다.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네 탓’이라는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다.

지난 6월 30일 국회 통외통위 회의에서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은 “부시는 강철환 기자에게 북한의 굶주린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했는데, 그 책임의 상당부분이 국제체제를 이끄는 미국의 경제제제에 있고, 부시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김원웅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북한의 탈북자 문제 등은 인권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경제제재 때문”이라며 무지에 가까운 주장을 펼쳤다.

이 문제는 ‘주장’을 펼칠 게 아니라 이성과 논리에 바탕하여 차분히 따져보면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지 금방 드러나게 돼 있다.

북한은 봉쇄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봉쇄한 것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실시하고 있는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북한만을 특별히 꼬집은 경제제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답은 ‘NO’다.

미국의 대북제제는 1917년에 제정된 적성국교역법(Trading With the Enemy Act)에 기반해 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북한을 적(敵)으로 규정하였고, 적국과의 교역을 제한하는 이 법안에 북한도 해당되었다. 특별히 북한만을 제재하는 법률이나 정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경제난이 미국의 제재 때문인가? 답은 ‘절대 아님’이다. 북한은 미국의 경제제재가 50년간 계속 되었어도 그것을 탓한 적이 없다. 그러다 사회주의권 붕괴로 주요 교역국이 사라지자 미국의 적성국교역법 등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미국의 적성국교역법은 미국만의 ‘국내법’이다. 다른 나라에는 해당이 안 되는 내용이다.

특히, 구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권 사회주의가 붕괴되었지만 여전히 북한의 배후에는 사회주의 우방이자 13억 인구의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북한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가 있다. 이들 나라를 향해서만 개방 조치를 취해도 2천만 인구의 북한이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북한은 최악의 식량난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을 때에도 국경을 꽁꽁 닫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건넜던 사람들마저 무자비하게 처벌했다. 요컨대, 북한은 외부로부터 봉쇄를 당하고 제재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봉쇄하고 제재하면서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담을 쌓은 것이다.

중국에만 문열어도 식량난 없어

한국의 친북좌파들은 그들의 반미적 성향과는 다르게,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이 세상을 좌지우지한다’는 사고에 사로잡혀 있어, 세상 모든 일을 미국 탓으로 돌리는 데 습관이 되어 있다. 북한의 경제난을 미국 탓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사고관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경제에서의 자립’을 외쳐온 장본인이 북한인데, 경제가 어려워지니 그것이 미국 탓이라니, 이런 황당한 주장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주민들이 그렇게 굶어 죽는데도 북한 정권이 중국을 향해서만이라도 국경을 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 탈북자만 용인했어도 집단 아사 없었을 것

하나의 가정이지만, 북한 정권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발생한 탈북자들을 탄압하지 않고 여느 나라에나 다 있는 해외 불법체류자처럼 중국에서 돈을 벌어 북한으로 송금하거나 돌아오는 것에 대한 자유를 허용했다면, 그것을 중국 정부와 적절하게 타협했다면, 수백만 명 아사(餓死)라는 최악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외부 세계의 정보에 눈을 뜨게 될까 봐서’이다. 북한 정권이 절대 개혁 개방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은 적성국+테러지원국+공산국, 세 범주 모두 해당

이렇듯 북한 경제난의 원인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미국의 대북 제제조치에는 과연 어떤 것이 있는지 이 기회에 한번 살펴보자.

미국의 대북제제조치는 제재수단에 따라 ▲무역 ▲금융 ▲대외원조 분야로 나눌 수 있다.

무역제재는, 수출관리법(Export Administration Act, 1970)에 따라 인도적 물자와 홍보자료를 제외한 상업물자의 수출이 전면 금지되어 있다. 또 무기수출통제법(Arms Export Control Act)에 따라 군수물자 수출이 금지되어 있고, 무역법(Trade Act, 1974)에 따라 최혜국 대우와 특혜관세의 부여가 금지되어 있다.

금융제재는, 적성국교역법과 그 시행령인 외국자산통제규정(Foreign Asset Control Regulation)에 따라, 북한과의 금융거래가 대부분 금지되어 있다. 그리고 수출입은행법(1986)에 따라 대북 무역거래시 수출입은행의 보증이나 지원이 금지되어 있다. 무역제재에는 미국에서 북한으로의 수출을 통제하는 내용이 많은 반면, 금융제재에는 북한의 상품을 미국에 수입하는 것조차도 까다롭게 만들어놓았다.

이러한 수출입이야 북한이 미국과 상대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북한 입장에서 괴로운 것은 대외원조 분야의 제재일 것이다.

미국의 대외원조법(Foreign Assistance Act, 1961)에 따라 북한에 대해서는 인도적 식량지원 이외의 어떠한 원조도 할 수 없다. 거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규정에 따르면 북한이 IMF, IBRD 등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차관을 받으려고 해도 미국 정부는 이것을 반대해야만 한다. 이러한 국제금융기구는 출자한 금액에 따라 안건 표결시 가중치가 부여되는데, 미국은 이에 가장 많이 출자한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이 반대하면 북한에 대한 국제금융기구의 차관제공은 어렵다.

이렇게 제재수단에 의한 구분 이외에도, 북한은 적성국이자 테러지원국가, 공산국가라는, 미국이 거래를 하지 않는 3가지 범주에 모두 해당된다. 세계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이다.

적성국이나 공산국가라는 올가미는 한반도의 정전협정이 전쟁의 완전한 종료를 의미하는 다른 평화협정으로 전환되거나, 북한과 미국간에 외교관계가 수립하는 경우에 풀려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각종 국제조약 가입 및 의무사항 준수 등 미국이 요구하는 여러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가능하다. 당면해서는 핵을 포기해야만 한다.

북한이 테러지원국이 된 것은 1987년 KAL

▲ 적성국 + 테러지원국 + 공산국

858기 폭파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 의회가 설정한 요건에 따라 지난 6개월간 국제 테러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야 하고, 앞으로 테러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해야 한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제외시켜주기 위해 테러방지와 관련한 각종 국제규약에 가입하라고 촉구해 왔지만, 북한은 이에 묵묵부답이다.

북한이 국제조약만 준수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이상과 같은 대북 경제제재 조치들은 클린턴 행정부 들어 해제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제네바합의에서 약속한대로 1995년 1월 ▲동결자산 일부 해제 ▲북한의 미국 은행 시스템 일부 허가 ▲북한산 마그네사이트 수입 허용 ▲미-북 자동국제전화 개설 허용 ▲미국민의 북한 여행 자유화 ▲개인의 여행경비 지출을 위한 신용카드 사용 허용 ▲언론기관 사무소 개설 허용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2000년 6월에는 북한의 요구가 없었음에도 ▲대부분의 북한산 상품 및 원료의 수입허용 ▲민감하지 않은 물자와 용역의 수출을 대부분 허용(대부분의 소비재 포함) ▲농업, 광업, 석유, 목재, 시멘트, 운송, 인프라, 관광 등 분야의 투자 허용 ▲미국인의 북한에 대한 송금 허용 ▲미국 선박과 항공기의 북한 입국 및 북한으로부터의 선적 허용 등의 조치를 취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어도 북한의 경제규모와 그동안의 장기간 경제제재에 비추어볼 때 파격적인 해제내용이다. 따라서 북한의 경제난이 미국 탓이며, 미국의 북한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이제 완전히 설 땅을 잃었다.

이번에 부시 대통령이 북한 기업 3곳에 대한 자산동결 명령을 내린 것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취했던 대북경제제재 해제 조치와 분명히 역행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북한이 계속해서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선언했으며, 그 핵을 양산하고 수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만큼 9.11 이후 ‘대량살상무기 확산 저지’를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는 미 행정부로서는 당연한 조치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어떠한 길로 갈 것인가는 북한이 선택해야 한다.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고, NPT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조약에 가입해 그 의무를 성실해 준수하고, 테러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면서 역시 관련 국제규약에 가입하면 된다.

북한에 이러한 사실들을 촉구할 생각은 않고 ‘북한의 경제난은 미국탓’이라고 이야기하는 엉뚱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계속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