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인권 외면하고 ‘대권장사’ 하려는가

▲ 제 60차 유엔총회

EU 주도로 이달 2일(현지시간) 대북인권결의안이 공식 상정됐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은 정부가 이 결의안에 찬성 표결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러한 국내외의 북한인권에 대한 긴박한 움직임에도 한국 정부는 도통 반응이 없다. 반 장관은 3일 “내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결의안 표결이 앞으로 2주밖에 남지 않았다. 반 장관은 “남북관계가 신뢰 협력의 단계로 접어들고 북핵문제 해결을 앞두고 있어 신중한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번에도 한국 정부의 기권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기권을 하되 ‘투표배경 설명'(EOV: Explanation of Vote)방식도 고려중이다. “북한과의 특수관계 때문에 기권하지만 북한인권 상황을 우려한다”는 입장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북한인권 외면하고 ‘대권 장사’ 하려는가?

정부는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신중하고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겠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설명은 결의안 표결 기권에 쏟아지는 국내외적 비난을 최소화 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집권 여당의 한 의원은 “북한에서 죄짓고 도망쳐 나온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한반도 평화를 희생시키면 안된다”고 했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조건에서는 국회에 제출된 찬성촉구 결의안의 운명도 사장(死藏)될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정부는 유엔인권위 대북인권결의안에 2003년에는 불참, 2004년과 2005년에는 연속해서 기권했다. 그 이유도 3년 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남북간 평화무드를 해쳐 긴장을 조성할 수 있고,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그동안 관련 인권단체와 전문가 들에 의해 무수한 비판받아 왔다.

한국 정부가 인권결의안에 찬성하게 될 경우 남북관계가 일시적으로 경색될 수 있다. 과거 탈북자 대량입국 사태 당시에도 북한과 1년간 경색국면을 겪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만에 남북관계는 보란듯이 정상화됐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가 흔들리거나 긴장이 조성된 사실이 없다. 금강산 관광 중단도 없었다. 결국 북한은 1년만에 협상장에 나와 쌀과 비료를 요청했다. 당시 애가 탄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대북협상으로 ‘대권장사’를 해보려는 정동영장관과 집권여당뿐이었다. 이후 남북관계는 과도할 정도로 고속 드라이브를 해왔다.

북한과 얼굴 붉힐 필요가 있으면 붉혀야지…

일부에서는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에 대해 발언하면 금방 북핵 6자회담이 파탄날 것처럼 난리법석을 피우기도 한다. 과연 그런가? 미국은 의회가 나서서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올해 들어 북한인권대사를 임명했다. 북한은 미국의 체제압살정책 때문에 핵을 개발했다는 주장까지 내세울 정도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과연 북한이 미국의 인권행보 때문에 6자회담을 파탄시킨 사실이 있는가? 대답은 “NO”이다. 더구나 직접적인 인권 압박도 아닌 국제기구 결의안에 찬성 표결하는 것에 북한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노 대통령은 “북한과 얼굴 붉힐 필요가 있으면, 붉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자국민을 학대하고 잔인하게 처형하는 김정일 정권에 낯을 붉혀야 한다. 한국 정부가 ‘인권접근’원칙을 분명히 하고 대북정책을 추진한다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많다.

북한은 남측이 제공하는 달러와 물자를 끊기 어렵다. 실제 쌀을 제공하는 대가로 장성급 회담 개최를 약속받은 바도 있다. 대북 지원을 북한 인권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원칙을 세우고 북한 눈치 보지 말라

정부는 북한 인권에 대한 우회적 접근을 강조하지만 이것 역시 변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정부의 변명이 통용되기 위해서는 남북화해 협력에 비례해 북한의 인권이 조금이라도 나아졌어야 한다. 성과가 없다면 조짐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대북 저자세와 무분별한 지원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막는 부작용까지 발생시키고 있다. 식량난 이후 일반 주민들에게 거의 사라졌던 식량배급이 10년만에 부활했다. 남한의 검증 없는(사실상 없는 것임) 지원이 불러온 불행한 사태다. 김정일은 식량을 틀어쥐고 주민 통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는 새로운 대북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좌표가 있는 대북 지원, 북 주민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협력을 시도해야 한다. 이것은 정부가 내세우는 지원을 통한 북한의 변화 유도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북한의 내부개혁 없는 정부 지원과 협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정부가 이러한 원칙만 확고히 세운다면 더 이상 북한의 눈치를 살필 이유가 없다. 북한도 내외적인 압력에 버티기로만 일관하기 어렵게 된다.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개선 노력에 한국 정부가 동참할 때가 왔다. 참여정부는 자신들이 김정일 독재정권과 ‘공동운명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입증해야 한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