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 박사] “동북아 戰時 한국 중립 불가능”

노무현 대통령이 8일 공사 졸업 및 임관식 자리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우려를 표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해외 주둔 미군이 세계 어느 분쟁지역에도 신속히 투입될 수 있도록 주둔지역 임무에 고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동북아시아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주한미군을 파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노 대통령이 ‘전략적 유연성’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주한미군의 동북아 신속 기동군화를 추진하려는 미국과 마찰이 예상된다. 주한미군의 역할 문제를 넘어 한-미 군사동맹의 큰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는 이번 발언의 의미와 파장을 짚어보기 위해 <데일리엔케이>는 군사전문가이자 국제정치학자인 이춘근(李春根) 자유기업원 부원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이 부원장과의 일문 일답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주한미군이 한반도 안정을 위해 존재하되 동북아에서 일어나는(특히 중국과 충돌) 분쟁에는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 말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노 대통령께서 어떠한 의도로 그런 말씀을 했는지는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너무 많은 가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미국이 군사를 이끌고 전쟁을 하러 갈 정도의 상황, 특히 그 상대가 중국이라면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규모와 파장을 만들게 된다. 대만문제로 미국이 중국과 충돌하는 상황은 3차대전을 무릅쓸 정도의 매우 긴박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한미군을 우리가 붙잡고 대북 억지력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현재 한-미 관계에서 미군은 동북아시아 분쟁에 개입하고 있는데,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미국이 인식하는 국제정치 상황의 변화에 우리만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중립을 지킨다든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도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붙잡고 있겠다는 생각은 현실성이 없다.

-노 대통령이 국제정치의 현실을 정확히 간파하지 못하고 이상적인 모델을 추구한다는 것인가?

국제정치는 진공상태, 즉 힘의 공백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매우 다이나믹(Dynamic)하게 전개된다. 노 대통령은 의도하지 않은 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한국이 수천 년 역사에서 의도해서 개입한 분쟁은 없었다. 국제정치의 현실적인 맥락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동북아는 갈등과 분쟁에 휩싸이는데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을 추구하겠다는 것은 너무 완벽한 가정이다. 우리나라는 국제정치에서 남에게 영향을 미치기보다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다.

우리나라는 완전히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동맹을 선택해야 한다. 밖에서는 엄청난 일이 생겼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우리가 반대할 경우 한-미 군사동맹은 변화가 불가피한가?

전략적 유연성은 예전부터 논의되어 온 것이다. 한국에 있던 주한 미군도 이라크로 갔다. 현재 한-미 동맹은 북한을 대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한국에 있는 주한미군이 외부에 나갈 수 없다는 규정은 없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도 ‘외부의 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것이 법적인 문제라고는 볼 수 없다.

미군이 동북아에서 분쟁에 개입할 상황이 오게 된다면 앞서 이야기 했듯이 동북아 전체가 요동치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을 두고서도 우리가 주한미군을 보낼 수 없다고 주장하면 미국은 한국에서 군대를 뺄 가능성도 있다.

국민들, 전시작전권 환수 의미 잘 몰라

-노 대통령은 국군이 동북아 균형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가지는 의미와 현실 가능성은?

균형은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을 의미한다. 세력균형을 변동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국가가 하는 것이 균형자이다. 인류역사에서 균형자 역할을 한 국가는 영국밖에 없다. 영국이 유럽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왔다. 그것은 영국이 어느 편에 서는가에 따라 힘의 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느 편에 섰을 때 힘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상황이 되어야 균형자 역할이 가능하다. 우리는 아직 그러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노 대통령은 10년 내 자주국방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를 거론했다. 한국이 조만간 한-미 안보정책구상회의(SPI)에서 이 문제를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현 상황에서 전시작전권 환수 논의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우리 국민들은 전시작전권 환수가 가지는 함의(含意)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를 못하고 있다. 전시작전권 환수가 의미하는 것이 전시에 한국군은 한국군이 지휘하고, 미군은 미군이 지휘한다는 것인지, 한국이 미군을 지휘한다는 것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미군이 한국군의 지휘를 받을 가능성은 없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에 대한 이야기 없이 우리가 작전권을 갖는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전시작전권은 정치가 아니라 군사의 문제이다. 현재 우리의 능력만으로 전투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군에게 작전권이 있는 것이다. 현대전은 정보전이다. 현재 한반도 군사 정보력의 절대치는 미군이 가지고 있다. 미군이 정보력을 바탕으로 전시 지휘를 하게 되는 구도이다. 우리가 미군보다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미군이 작전권을 포기하게 되어있다. 이것은 법으로 가져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