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커스] 북한의 ‘새로운 길’ 엄포와 한국의 ‘무력함’

김정은 유도탄 발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신형전술유도탄 발사를 참관했다면서 노동신문이 7일 보도하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급격한 동북아 정세의 변화 속에서 한국은 점점 외교적으로 ‘고립된 섬’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한 당국은 한국을 더욱 몰아붙이고 있다. 지난 6일 북한 당국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면서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미 천명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위협한 것이다. 북한 당국이 말하는 ‘새로운 길’은 무엇을 뜻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핵보유국의 길을 걷겠다는 것을 뜻한다. 남북관계 역시 지난해 이전 수준으로 돌려놓으면서 한국을 ‘영원한 을(乙)’의 지위에 가두겠다는 의도도 여실히 드러냈다.

사실 북한 당국의 ‘새로운 길’ 발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이미 이 어휘를 사용한 바 있다. 당시 김정은은 “미국이 우리 인내심을 오판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정은은 미국 대통령과 다시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도 밝히면서 대화의 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내세웠었다. 그 후 2월 말 하노이에서 2차 미북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 미북 관계는 교착 국면을 맞았다. 4개월 후인 6월 말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이 있었지만, 지난달부터 감행된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인해 그 역시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사기극이었음이 판명됐다.

이 기간 북한은 중국, 러시아 등과 정상회담을 통해 과거의 북-중-러 삼각관계를 완전히 복원했다. 중, 러 두 우방국으로부터 경제지원도 충분히 받아 한국의 식량지원도 마다할 정도로 여력이 생겼다. 해외노동자들의 북한 송환 현황도 190여 개 유엔회원국들 가운데 30여 개국들만 중간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은 러시아의 미사일 기술진으로부터 엔진 등 일부 기술 자료를 인수받아 최근 한국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판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인 KN-23을 완성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최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밝힌 ‘새로운 길’이란 비핵화를 내걸면서 한국, 미국과의 대화 분위기를 조성했던 전략에서 지난해 이전으로 회귀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언급했던 상황과는 환경이 달라졌다는 판단 하에 북한 고유의 전략노선으로 돌아갈 수도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전략노선이란 핵보유국으로 위상을 확고히 하고 국제사회를 상대로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김정은 미사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신형전술유도탄 발사를 참관했다면서 노동신문이 7일 보도하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최근 북한 당국이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면서 내세운 주된 명분은 한미연합군사연습에 대한 반발이지만 그것은 빌미에 불과하다. 김정은은 지난해 3월 6일 북한을 방문한 한국 특사단에게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연기된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4월부터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랬던 김정은이 이제와서 한미연합훈련 때문에 안보상의 이유로 최근 미사일 도발을 연이어 감행한다는 것은 명분일 뿐, 속내는 미사일 기술의 완결성을 전제로 자신들이 설정한 전략목표에 다가가기 위함이다.

북한 당국은 공인된 핵보유국의 위상을 획득하기 위해서 일단 미국과 안정된 관계가 필요했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과 대화 용의가 있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언급할 때도 그랬고, 이번 외무성 대변인이 ‘새로운 길’ 모색을 밝힐 때에도 대화의 끈은 놓지 않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도 재선에서의 외교 업적이 필요한 터라 북한 비핵화보다 현상 유지에만 몰두하고 있어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에 다가가는 시간은 충분하다. 심지어 내년 미국 대선이 미북 간의 핵 합의를 파기할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효용가치가 없기 때문에 무시 일변도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6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남조선(한국)이 그렇게도 안보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면 차라리 맞을 짓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일 것”이라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남북 경제협력을 통한 평화경제 구상을 밝힌(5일) 이틀 후에는 대외 선전매체인 <메아리>를 통해 “공화국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위력에 질겁한 남조선 당국이 또다시 ‘대화’ ‘평화’ 타령을 늘어놓고 있어 만 사람의 조소를 받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사실은 북한 당국이 한국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폄훼하면서 그간의 남북대화나 평화정착 노력을 부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급기야 8일에는 <메아리>의 ‘불신과 적대의 곬을 더 깊게 하는 배신행위’라는 제하의 보도를 통해 “우리 공화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멸행위에 계속 매달리다가는 북남관계가 판문점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아가는 파국적 후과가 빚어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직접적인 경고를 가하기도 했다.

한국의 무력함, 미국의 방임,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한일 간의 치열한 갈등 등이 어우러지면서 시간은 점점 북한에 유리한 편으로 돌아가고 있다. 초지일관 북한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으로는 현 상황을 타개할 가망이 전혀 없다. 대화 노력과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 의지가 통하지 않는다면 북한 당국을 각성시킬 수 있는 강력한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 우리도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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