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커스] 北 비핵화 대립 일단 봉합…갈등의 뇌관은 ‘여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네 번째로 평양을 방문했다. 지난 8월 27일 방북이 취소된 이후 40일 만의 일이었다. 그간 미북 간에는 비핵화의 절차를 놓고 해묵은 레파토리를 재현하며 대립하고 있었으나 이번 미 국무장관의 방북으로 일단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으로 양국 갈등은 일단 봉합됐으나 갈등의 뇌관은 여전히 남아 있다.

폼페이오를 만난 김정은은 세 가지 중요한 비핵화 조치를 제안했다고 한다.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동창리 엔진 시험장을 영구 폐쇄하고, 지난 5월 24일 영구 폐쇄했다는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검증을 수용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지난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3차 정상회담 당시 제안했던 ‘조건부 영변 핵시설 영구 폐쇄’ 카드도 꺼내들었다. 심지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의 일부 폐기 문제도 논의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같은 김정은의 제안에 대해 폼페이오 장관은 ‘중대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했고, 북한도 폼페이오 장관과의 회담에 대해 “매우 생산적이고 훌륭한 담화”였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 같은 논의들이 과연 북한의 진전된 비핵화 의지를 말해주는 것일까. 김정은은 지난 9월 5일 한국 특사단을 맞이한 자리와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도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믿어주지 않는 미국에게 답답함을 토로했고, 이번에도 폼페이오 장관에게 “우리는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진정성을 보였는데 왜 평가해주지 않느냐. 와서 직접 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선 여전히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선 풍계리 핵실험장의 폭파 현장에 대한 검증을 수용한 부분이다. 북한이 이미 영구 폐쇄했다는 풍계리 핵실험장은 갱도 부분만을 폭파했기 때문에 내부 상황에 관해서 의혹이 남아 있던 곳이다. 이곳은 폭파 이후 이미 5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핵물질이나 시료 채취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설사 시료를 채취한다 하더라도 핵실험에 사용된 핵물질과 핵능력을 검증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려 협상이 지연될 것이라고 한다.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의 영구 폐쇄 제안도 진정한 비핵화 의지라고 볼 수 없다. 이미 만들어놓은 ICBM의 처분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수백 개의 이동식 발사대(TEL)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사일 관련 기술을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동창리 엔진 시험장 하나를 없앴다고 해서 미사일 능력까지 제거하는 건 아니다.

영변 핵시설의 조건부 폐기 가능성 시사도 그렇다. 폐쇄 조치 이전에 미국이 원하는 신고 및 검증을 수용하겠다는 얘기는 없었으며 이미 수명을 다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겠다는 것은 비핵화의 상징적 조치로도 볼 수 없다.

김정은이 ICBM의 일부 폐기 가능성을 언급하고 이 부분에 관해 폼페이오 장관이 만족해 했다면 더 큰 문제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무기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데 이를 폐기하겠다는 언급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정은의 ‘중대한’ 비핵화 조치에 대해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제시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2차 미북정상회담의 개최 수용, 대북제재의 일부 완화 가능성 등이 포함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양국 최고 수뇌들 사이의 튼튼한 신뢰에 기초하고 있는 조미 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앞으로도 훌륭히 이어져 나갈 것”이라며 만족해 한 것으로 사료된다. 종전선언 문제도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으나 폼페이오 장관이 운을 띄우기는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볼 때 김정은은 미국을 상대로 여전히 기만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은 조삼모사(朝三暮四)식의 말 바꾸기에 다름 아니다. 지난 5월 <New York Times>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핵탄두 20~60개와 핵시설 40~100곳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확보한 핵물질도 플루토늄이 40~50kg, 고농축 우라늄도 600~700kg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은 기존에 확보한 핵, 미사일에 대한 신고와 검증은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미국을 일시적으로 현혹시킬 수 있는 계책 마련에만 고심하고 있다. 이 같은 기만전술이 얼마나 더 통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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