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아리랑] 김정은·여정 남매의 남한 길들이기 전략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해 8월 공개한 ‘초대형방사포’ 발사 관련 사진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발사장으로 향하는 듯한 모습. 뒤쪽에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따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붉은별tv 유튜브 캡처

최근 북한은 기묘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 태세전환이 너무 급격했기 때문에 북한의 진의를 둘러싼 논의가 분분했다. 북한은 지난 2월 말, 3월 초에 전방지역 포병부대에 대한 김정은의 포병사격 지도를 연이어 보도했다. 이에 당연히 우리 정부는 유감을 표명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상황이다. 그 다음이 압권이다. 그동안 김정은의 여동생이자 노동당의 실세로 성장하고 있던 김여정이 본인 명의의 담화문을 발표한 것이다. 제목도 원색적인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였다. 담화문에는 북한 특유의 비난조의 어법이 동원됐고 청와대의 유감표명을 “주제넘은 실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라고 못 박았다. 김여정의 첫 담화문 내용은 남북관계를 급랭시키는 듯한 의사표명으로 받아들여졌으나 곧바로 그 다음날인 3월 5일 김정은이 친서를 보냈다. 북한의 태도 변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남북관계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올해 연초에 발표된 김계관 전 외무성 고문의 담화문이다. 김계관은 김정일시대에 대미외교와 관련하여 외무성 부상으로 활약해 온 인물이다. 북한의 여느 외무성 인물과 마찬가지로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제외하고 담화문을 실명으로 발표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김계관이 현직에서 물러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고문’이란 직책으로 담화문을 발표했다. 내용인즉슨, 당시 미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에게 생일축하 인사를 보낸 것을 둔 남-북-미간의 문제에 대한 일종의 입장표명이었다.

그렇다면 김여정, 김계관의 두 담화문 내용의 특징을 살펴보자. 김여정의 담화문에서는 몇 가지 특징이 보인다. 우선, 표면적으로 지도자의 친동생이 남북관계 전면에 나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지도자 오누이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김경희도 보여주지 못한 행보였다. 지도자 이외의 친족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은 그동안 북한체제에서 불문율처럼 지켜져 왔던 룰이었는데 그것이 깨졌다. 특히, 김여정 담화문의 문구나 표현을 유심히 살펴보면 기존 선전선동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나온 담화문과는 결이 다르다. 담화문 말미에 사용한 ‘딱 누구처럼…’이란 문구는 북한의 공식 문헌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던 표현이다. 북한의 공식 담화문 형식은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에 일정한 형식과 틀을 갖추고 있다. 특히 비난문의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는 공식문건에 잘 사용되지 않는 원색적 표현을 담고 있다. 하지만 김여정의 담화문은 30대 젊은 여성 냄새가 난다. 김여정이 직접 작성했다는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다.

김계관의 담화문에서도 몇 가지 특이한 부분이 보였다. 우선, 북한에서 공식적인 문서에 등장하는 지도자에 대한 표현이 기존과 달랐다. 통상적으로 북한에서 지도자에 대한 언급은 극존칭으로 시작해서 극존칭으로 끝난다. 그러나 김계관의 담화문에서는 그러한 부분이 생략되어 있었다. 김정은과 트럼프를 칭하는 부분에서도 ‘조미 수뇌분들’이라는 기존의 표현 대신 ‘조미 수뇌들’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우리 국무위원장에게’, ‘수뇌들 사이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등의 표현에서도 김정은에 대한 표현을 일반어법에 준해서 표기했다. 여기에 마침표를 찍은 표현 역시 담화문 말미에 나온 “그런 사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국사를 론하지는 않으실 것이다.”라는 부분이다. 이것은 관점에 따라 김정은의 행동에 일정한 제약을 걸어버리는 ‘불경한’ 표현이다. 감히 수령의 미래행위를 일정하게 한정해 버린 셈이다.

북한의 최근 미사일 도발과 담화문발표까지의 과정은 딱 미 트럼프가 김정은을 컨트롤하던 모습과 닮아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김정은과의 첫 만남부터 현재까지 대화 및 친서를 교환했지만, 북한이 원하는 대북제재에 대한 완화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과의 ‘특별한 관계’임을 강조하면서 북한이 실질적인 도발 행위를 할 명분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왔다. 물론 최근 북한은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선언과 함께 ‘전면돌파전‘을 주장하고 있다.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대남접근 방식은 상당부분 트럼프식을 차용한 듯 하다. 군사훈련의 정당성을 말하고 포훈련 도발을 하면서 동시에 우리 정부에 친서를 통해 유화제스처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정부가 남북대화 재개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고 있다.

종합하면 우선, 올해 연초부터 지금까지 북한에서 발표된 일련의 대외용 대담의 형식과 내용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 두 가지의 특징이 보인다. 먼저, 미국과의 대화국면에서 미뤄왔던 무기 개발 및 실험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정은은 올 초 당중앙위원회 전체회의 보고문에서 올해 신형 전략무기를 완성하겠다고 발표한 만큼 전략무기의 완성시기까지 꾸준히 전술무기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속셈인 것으로 보인다. 둘째, 그동안 북한의 입장이 김정은 일인 목소리에 의해 전파되었다면 이제는 김여정이 대남, 대외 분야 영역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앞으로 두 남매가 일정한 역할분담을 통해 대외전략을 구사하는 틀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과거 김일성-김정일이 90년을 전후로 공동통치형태의 역할분담을 했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올해 북한은 김정은-김여정 두 남매의 역할 분담 구조 속에서 첨단무기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 대남메시지를 통해 남한 사회를 길들이는 것은 김여정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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