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단일팀 논란, IOC의 책임은 무엇일까?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최하는 국제 행사에 행사부지를 제공하는 일은 남의 잔치에 장소대관해주는 그런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 ‘개최국’이란 개념은 행사를 주관하는 IOC의 이해와 목적에 편승하여 자국의 이익도 꾀하겠다는 약속이기에 IOC가 ‘갑’의 지위에서 까다로운 조건으로 장소를 ‘낙점’해 주는 거다.

형식은 IOC가 참가국을 초청한다고 하나 주최국은 장소만 대여해주는 대관호텔의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는 건 자명하다. 더구나 평창은 나대지 도면을 내밀며 앞으로 근사한 호텔을 지을 테니 여기서 행사를 치르자고 세 번을 졸라서 겨우 성사된 이벤트인 거다. 정주영 회장이 젊은 시절 500원짜리 뒷면의 거북선을 보여주어 영국으로부터 조선소 자금유치에 성공한 것처럼 말이다.

일단 장소가 확정되면 주최국과 IOC는 공동운명체가 된다. 왜 대한민국은 그토록 유치를 원했던 것일까? 분명한 건 오늘날 남북 단일팀 성사를 위해 십 수년 전부터 예언처럼 준비한 것은 아닐 거라는 거다.

따라서 주최국의 미묘한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거니와 개최지 주변의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연루되는 것도 썩 반길 리 없다. 다만, 북한이라는 특수한 변인의 영향이 워낙 크거니와 주최국이 알아서 상징적인 단일팀을 만들고 평화무드를 조성하겠다는데 왜 반대하겠는가?

IOC가 알아서 먼저 고도의 정무적인 판단을 하여 북한을 설득, 남북 단일팀을 내라고 문재인 정부에 주선했을 리 만무하다. 흥행을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마다할 리 없는 그들이 주최국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준 걸로 봐야 상식적이다. 여기서 개최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중요한 설득요인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장소를 정하기 전까지는 IOC가 철저히 ‘갑’의 지위였겠으나 일단 장소가 정해지고 일정이 확정되면 그 다음부턴 IOC가 개최국과 동등하거나 사실상 ‘을’의 지위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이는 입찰업무를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내나 외국이나 세상사 다 똑같은 이치인 거다.

그렇기에 단일팀 문제의 중요한 이슈인 ‘공정성’ 문제를 IOC에게만 따진다는 건 IOC로선 매우 억울한 일이 되는 거다. 부실 시공의 책임이 건설사가 아닌 시행사에게만 있다는 논리다.

사실 문제의 본질은 단일팀 여부 자체에 있지 않다. IOC 입장에서도 그게 뭐 대수랴! 요는 단일팀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조장하는 해빙무드가 근본적 위기라는 현실을 잠시 감추는 당의정에 불과하다는 거다. 쓰디 쓴 진실은 외면하고 평화가 시작되는 양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행위.

평양의 핵과 미사일 이야기가 언론에서 싹 사라진다고 김정은 책상 위에 핵 버튼도 함께 자취를 감출까? 4년을 준비한 일부 선수가 대승적 희생으로 벤치에 앉아있고 그 자리에 북한 선수가 들어온다고 남북이 얼싸안고 하나가 될 거라고 ‘간주’해 버리는 일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놀랍게도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놔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러 거친 들로 나갈 때 그 목자는 양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는 것을 이 땅의 위정자들은 조금도 알지 못한다는 현상이야말로 단일팀 논란에 담긴 비극의 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