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좌파연합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 룰라 브라질 대통령(왼)과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멕시코 대선이 이슈가 되었던 가장 주된 이유는 과연 멕시코에도 좌파 정권이 탄생할 것인가 하는 관심 때문이었다.

투표 직전까지도 좌파 후보가 집권 우파 후보에 4% 포인트 이상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실현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좌파 후보가 최종 승리한다면 최근 좌파 정권의 도미노 행진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중남미 좌파연합의 득세에 엄청난 힘을 실어 주게 되는 것이었다.

개표 결과 우파 후보가 박빙의 승리를 거둠으로써 남미 좌파 열풍의 기세는 한 풀 꺾이고 말았다. 원래 좌파 세력이 강했던 남미에 좌파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한 것은 작년, 연이어 열린 대선에서 좌파 후보들이 잇달아 정권을 거머쥐게 되면서부터다.

볼리비아에서 인디오 출신 좌파 대통령이 최초로 집권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칠레에서도 좌파가 승리했다. 이러한 여세는 06년 예정된 선거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점쳐졌다. 볼리비아의 새 대통령 모랄레스는 그동안 반미의 선봉장을 자임한 베네수엘라 차베스와의 연대를 한껏 과시했으며 미국을 조롱하는 이들의 노골적 반미 동맹은 06년 선거를 통해 더욱더 확장되고 강화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지난 5월 28일 치러진 콜롬비아 대선에서는 친미 강경주의자인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가장 먼저 남미 좌파 도미노 행진에 제동을 걸었다. 이어서 실시된 6월 9일 페루 대선에서도 차베스의 지원을 받은 강경 좌파 후보를 따돌리고 온건 좌파를 표방한 친자본적 성향의 알란 가르시아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또 한번 좌파연대의 발목을 잡았다.

‘실용좌파’와 ‘강경좌파’로 나뉘어진 남미 좌파진영

멕시코의 정권 창출에는 석패하였지만 이미 남미 좌파는 지도의 많은 부분을 같은 색으로 채우고 있다.

현재 남미에서 좌파 정권이 들어선 나라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쿠바,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칠레, 우루과이 등이다. 남미 좌파가 원래 세력이 컸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나라들에서 좌파 정권이 포진하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좌파라고 하여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현재 남미 좌파는 크게 두 흐름으로 양분된다.

우선 브라질을 대표 주자로 한 실용 좌파이다. 칠레 또한 좌파 정권이지만 변신을 거듭해 남미에서도 유독 성장을 지속하는 모범적 사례로 꼽혀 왔다. 페루 정권도 비교적 온건하며 친자본적 성향을 띠고 있으며, 아르헨티나의 좌파도 온건 실용적 흐름을 함께 한다.

강경 좌파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중심으로 전통 공산국가인 쿠바와, 작년 12월 대선에서 인디오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그리고 에콰도르로 이어지는 벨트다. 차베스는 반미 급진 노선을 표방하며 중남미 나라들에 싼값의 석유를 제공함으로써 세를 불리고 있다. 만일 멕시코 대선에서 좌파 연합의 오브라도르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강경 좌파의 선봉장 차베스는 ‘더이상 강력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두 좌파의 흐름은 공교롭게도 남미 내에 존재하는 두 개의 경제 협력 라인과 중첩된다. 남미를 분할하는 두 개의 경제 협력체는 메르코수르와 안데스 공동체이다. 이 모두는 지역 연대를 통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치열한 각축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Southern Common Market, 일명 Mercosur)는 남미 국가들의 자유 무역을 위한 경제 협력 기구인데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가 가입국이며 1995년 설립됐다. 안데스 공동체(Ancom)는 남미 북부의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베네수엘라가 가입국이며 1969년 설립됐다.

그런데 이 중 안데스 공동체는 최근 무의미한 실체로 쇠락해 가고 있다. 지난 4일 베네수엘라는 카라카스에서 개최된 메르코수르 특별회의에서 5번째 메르코수르 회원국이 되었다. 베네수엘라는 메르코수르에 가입하면서 안데스 공동체를 탈퇴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콜롬비아와 페루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자 이들 나라들을 맹비난했다. 볼리비아도 어김없이 베네수엘라의 뒤를 따랐다.

경제협력체 구상에 대한 洞床異夢

한 가지 눈여겨 볼 부분은 실용 좌파의 수장격인 브라질과 강경 좌파 베네수엘라간의 주도권 다툼이다. 브라질은 베네수엘라의 메르코수르 가입을 공식적으로 환영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의 행보에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브라질은 최근 베네수엘라의 주도로 쿠바, 볼리비아가 의기투합, 남미의 새로운 경제 공동체로 탄생한 ‘인민무역협정 체제(PTA: People’s Trade Agreement)’에 잔뜩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브라질은 메르코수르를 이끌고 최근 EU, 러시아 등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성사시키기 위해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메르코수르와 인민무역협정으로 대별되는 남미 좌파의 각축전 속에서 이들 모두를 분쇄할 다크호스로 부상한 것이 바로 ‘미주자유무역지대 구상’이다. 이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모태로 하고 있다. 미국은 미주자유무역지대로 라틴아메리카를 모두 묶는다는 구상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에 소속한 캐나다, 멕시코 등은 이러한 구상을 강력하게 거들고 있다. 그러나 메르코수르는 미국의 구상을 정면으로 반대해 나섰다. 작년 11월 4~5일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된 4차 미주 정상회담은 상호간 입장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 주는 자리가 되었다. 미주 대륙의 34개국이 참여한 이 회의는 설전과 공방의 한판 싸움장이 되었다.

물론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자유무역지대 구상에 대한 남미 좌파의 대응은 구분이 된다.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공격을 계속하며 표면적으로는 보다 공정한 자유무역협정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안데스 공동체의 초기 멤버였던(76년 탈퇴) 칠레와 콜롬비아, 페루 등은 미국과의 개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맹비난하며 안데스 공동체를 탈퇴한 베네수엘라와 불리비아 그리고 쿠바는 라틴아메리카의 통합을 우선하는 ‘미주볼리바르 구상(ALBA)’이란 새로운 제안을 내 놓았다.

볼리바르는 콜롬비아를 필두로 한 남미 북부의 5개국(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킨 독립 영웅이다. 그는 1826년, 에스파냐계 신생공화국의 유대를 목표로 ‘파나마 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정신이 이후 ‘범아메리카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반미 선봉장 차베스는 ‘반미’를 앞세워(?) ‘라틴아메리카의 통합’을 외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반드시 볼리바르와 체 게바라의 초상 앞에서 연설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과시한다.

이렇듯 남미 좌파의 이면에는 남미의 맹주 자리를 두고 룰라와 차베스가 벌이는 합종연횡의 치열한 기싸움이 자리한다. 동시에 그들은 남미 실용 좌파와 강경 좌파의 간판으로 대별된다. 이 틈을 노리고 있는 미국은 멕시코 대선에서 우파의 승리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좌파의 양상을 중심으로 보자면 남미 모든 나라들은 이러한 구도 속에서 때로는 명분을 때로는 국익을 내세우며 경쟁과 협력을 반복하고 있다.

남미 좌파의 도미노도 관심이지만 이젠 남미 좌파의 성공 여부도 관심이다.

이종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