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권 붕괴는 자연현상처럼 피하지 못해

▲ 이명박 제 17대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대통령 당선증을 보여주며 기뻐하고 있다ⓒ연합

친북좌파정권이 붕괴됐다.

햇볕정책이라는 하나의 기만, 즉 ‘북한인민’이 아니라 ‘북한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지난 10년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막대한 현금과 물자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 기만을 호도하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궤변이 정권의 수뇌부와 통일부, 친북 정치인과 지식인, 친북 시민단체 그리고 친북언론으로부터 동원되었다.

이 궤변에 맞추어 한국의 근대사로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근간이 재해석되고 필요하면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미명 하에 부정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친북좌파는 어느새 자기 스스로의 기만을 진실로 믿고 그것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햇볕정책의 본질적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인민의 삶을 대북정책의 장에서 의도적으로 소외시켰다’는 점, 둘째는 극도의 비인간적 상황 하에서도 짧은 신음조차 밖으로 낼 수 없는 강제수용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바로 이 절망적 북한인권의 상황을 언급하는 것조차 혐오하는 ‘가치의 전도’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햇볕정책의 폐기를 응당 주장해야 하고 또 주장하고 있는 이명박정권이 해야 할 일은 따라서 햇볕정책의 이 두 가지 문제를 바로 잡는 것이다. 즉 북한동포의 삶을 개선하고 북한식 전체주의의 도덕적 파탄을 드러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다시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록 이명박정권이 공개적으로 천명하지는 못하더라도 반드시 대북정책의 전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김정일 정권의 붕괴다. 김정일 정권이 사라지지 않고는 북한주민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개혁개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지난 10월 노무현-김정일회담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또 ‘강제수용소’를 통한 공포정치 없이는 ‘정권’이 유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강제수용소와 김정일정권은 샴의 쌍둥이에 다름 아니다.

북 주민 살리는 일에 보수-진보 따로 없다

이제 김정일 정권을 유지시키는 외부적 및 내부적 조건은 사라지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햇볕정책의 폐기를 통해 북한인민이 아니라 북한정권의 배를 채워주는 ‘퍼주기식’ 지원은 줄어들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정권차원이 아니라 주민들 차원에서 이미 체제개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장마당의 존재가 그것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하부구조(생산 분배방식)가 상부구조(정치체제)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김정일 정권의 붕괴가 필연적이더라도 대북정책은 다양한 얼굴을 지닐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당장 북한과의 공식적 접촉창구는 김정일 정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북한주민과의 접촉을 하기 위해서는 김정일 정권이 요구하는 통행료를 지불해야 하고, 이 통행료가 다시 김정권의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는 이율배반이 분명해진다.

이런 상황 하에서 ‘대북 봉쇄론’과 ‘대북접촉 확대론’이 동시에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양자에서 대북정책의 수미일관성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봉쇄도 접촉도 모두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에서 수미일관해야 할 점은 수단이 아니라 정책의 지향점이다.

그렇다면 대북정책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김정일 정권하에서라도 할 수 있는 한 ‘북한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일이며, 궁극적으로는 김정일 정권의 붕괴 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일 것이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북한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일에는 한국정부가 개입해야 하지만, 북한정권의 붕괴는 한국정부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자연의 변화처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은 북한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론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도정에 대한 논의를 공개적이고 객관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삶의 개선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에 보수와 진보, 좌와 우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다만 방법론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이명박정권이 대북정책의 이 두 가지 지향점을 잊지 않는다면 비록 길을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처럼 잘못된 길을 가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