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아킬레스건 노릴 것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은 지난 대선 공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비핵·개방 3000”이라는 대선공약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혁개방을 하면, 10년 내에 3000불 소득을 달성할 수 있는 대규모 지원을 한다”는 조건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핵폐기’와 ‘개혁개방’ 모두가 만족되어야 할지, 아니면 어느 하나라도 충족되면 족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므로 나중에 다시 살펴본다).

여기서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조건부 대북정책’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어떠한 조건이 만족되면(前件/antecedence), 어떠한 계획이 시행될 수 있다(後件/consequent)’는 조건문이 그것이다. 이때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바가 전건에 놓여 있다.

반면에 햇볕정책은 조건부 대북정책과는 완전히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을 지원하면(햇볕을 쬐면), 북한은 개혁개방을 한다(옷을 벗는다)”는 것으로써 조건문의 후건에 우리가 원하는 사태가 놓여 있다. 여기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을 경우를 전혀 대비하지 않아 ‘미리주고 나중에 받는다(先供後得)’라는 임동원식 궤변이 등장했다.

결국 친북좌파정권은 개혁개방은커녕 북한으로부터 따귀를 맞더라도 이미 이념적으로 북한에 ‘올인’ 즉 치정(癡情)에 빠졌기 때문에 계속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햇볕정책은 “북한이 개혁개방 하지 않아도, 북한에 계속 지원을 해야 한다”는 조건문으로 변형되었다.

‘비핵개방3000’ 공격 예상 포인트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정책의 핵심은 신정부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북한이 수용할지 여부에 달려 있으므로 그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이 결정적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 3000’ 이외에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는 한, ‘핵폐기와 개혁개방’이라는 선결조건을 고려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북한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는 근본조건들에 대해서는 북한의 지난 10년간의 언행을 살펴보면 다음의 사실들은 거의 불변이기 때문이다:

1. 김정일은 수령체제의 유지를 ‘선군정치’를 통해 ‘강성대국’을 만드는 데에서 찾고 있다. 즉 군사적 위협수단을 통해 국제적으로 경제원조를 강요하는 것이다.

2.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는 이중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협박수단’이자, 동시에 ‘협상대상의 모양새’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황금달걀을 낳는 닭을 잡아먹어서는 안 되듯이”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폐기할 수는 없다.

3. 북한의 개혁개방은 김정일 스스로 인정하였듯이 수령체제의 붕괴를 필연적으로 가져오므로, 수령체제가 유지되는 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한국으로부터 경제원조를 받아내기 위하여 적응하고 있을 뿐이다. 이른바 ‘모기장식 개방’이다. 개성공단, 금강산, 개성, 백두산 관광 모두 변경지대에 위치하여 북한주민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철조망을 쳐놓고 현금을 받아내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모기장식 개방이 진정한 개방으로 연결되리라는 환상을 한국 국민들이 갖도록 적절히 유도하고 있다.

위의 사실들은 지난 10년 북한의 모습을 가장 적절히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비롯한 서방의 대북전문가와 정치인, 언론들은 희망어린 예측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즉 미래에 대한 모든 경험적 예측이 갖는 한계, “혹시나…”를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얕은 희망은 ‘장관급 남북회담의 개최여부’와 같은 단기적 예측에는 적용할 수 있더라도, 핵폐기나 개혁개방과 같은 운명적 결정에는 결코 가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의 핵심은 실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즉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고, 또 개혁개방을 하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아마도 아직 어떤 분명한 대책이 마련되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아직도 맹신하는 친북좌파 정치인들과 지식인들, 무엇보다도 김정일 정권은 바로 여기에 신정부 대북정책의 아킬레스건(腱)이 있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취약점을 공격하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이다.

이미 시작된 친북좌파의 진군 방향은 대략 다음의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4. 신정부는 북한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들을 내세움으로써 지난 10년 어렵게 이룩한 남북교류의 혁혁한 성과를 일거에 망가뜨린다. 신정부의 대북정책은 이 조건들을 고집하는 한 시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내재적 접근’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5. 북한의 핵폐기는 경제원조 및 안전보장과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른바 선순환론(善循環論)이 그것이다.

6. 노무현 정권이 임기 말에 김정일 정권과 합의한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북한도 핵폐기와 같은 약속을 지킬 이유가 없다.

이 세 가지 공격은 실은 단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다. “북한이 비핵개방을 하지 않더라도, 북한에 계속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실은 앞에서 말한 변종 햇볕정책의 조건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바꿔 말해 “ ‘비핵․개방 3000’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을 경우, 인도적 차원 이외에는 북한에 경제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면서 실패할 것이다.

즉 북의 입장을 고려하는 내재적 접근이란 본질적으로 ‘수령체제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며, 선순환론이란 이미 실패한 선공후득론에 불과하고, 노무현-김정일이 땡처리 하듯 졸속 합의한 경협 사항들을 지킬 경우, 북한은 핵폐기도, 개혁개방을 할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다.

비핵, 개방 거부시 ‘비핵개방3000’의 운명은?

따라서 관심의 초점은 신정부가 “비핵개방하지 않으면 지원도 없다”는 원칙을 지킬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유감스럽게도 전망은 그렇게 밝지 않다.

첫째, 북한은 한국의 원조가 생존에 필수적이라, 냉정하고 정교하게 결사적으로 대남정책을 펴는 한편, 한국의 북한에 대한 관심은 “화해와 포용이 적대와 배척보다 좋다”는 식의 감상에 기반하여 객관성과 정밀도가 훨씬 떨어진다. 예를 들어 북한과의 관계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시행하려 할 경우, “냉전세력”이라는 비판을 들을까 미리 겁을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둘째, 지난 10년 햇볕정책은 ‘남북 이벤트’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돈과 물자를 퍼주었기 때문에 가시적인 효과라는 측면에서는 볼거리가 많았다. 그것은 경기부양을 위해서 돈을 대량으로 푸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즉 햇볕정책은 기본적으로 국민세금으로 북에 선심을 베푸는 것이기에 매우 쉬운 정책이다. 이런 정책 못할 사람은 오로지 양심적인 사람들뿐이며,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좋은 것이 좋은 거야” “북한에 대해 골치 썩히기 싫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셋째, 신정부의 대북정책 입안자의 사고에 문제점이 있다. 지난 1월 1일 KBS에서 방영한 토론회에서 인수위 외교안보통일분과 자문위원인 남성욱 교수는 “核실험이 없었다면 (노무현 정권의) 對北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없다”며 “새 정부의 對北정책은 액션 대 액션으로써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단계로 갈수록 협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개방 3000’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입안하는 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남교수의 이런 입장이 신정부의 입장인지, 아니면 그의 개인적 소견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주장은 첫째 “북한이 ‘완전히’ 핵폐기를 하지 않더라도 경제지원을 할 수 있다” 둘째,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더라도 경제지원을 할 수 있다”는 변종 햇볕정책을 의미한다.

실제로 북한은 우라늄 농축과 시리아와의 핵연계를 부정하는 한편, 지금까지 생산된 플루토늄을 30kg정도로 낮추어 신고함으로써 핵폐기를 하였다는 모양새를 갖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른 한편 북한은 49세 이하의 여성에게 장마당에서 장사를 금지시킴으로써 북한의 자생적 시장경제를 ‘필요악’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또 이번 신년 공동사설에서는 ‘우리식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경제’를 강조하고 김일성이 태어난 지 100년 되는 2012년을 강성대국이 열리는 해로 삼음으로써 사회주의 경제체제로의 복귀 의도를 분명히 했다.

간단히 말해 김정일은 핵폐기의 모양새를 갖춤으로써 외부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원조를 받아내어 파탄 상태의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복구하려는 것이다. 즉 개혁개방이나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아직 불안정한 상태이며 여기에는 지난 친북좌파정권이 남긴 관성에 의한 불가피한 측면도 있으나, 정책 입안자의 안이한 태도도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김정일 정권에게 북한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는 사람은,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원칙에 대한 강철 같은 신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금 절실히 요구되는 대북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고 개혁개방을 하지 않을 경우 그냥 망하도록 놔두는 것”이며, 한국과 주변국은 미리 이 경우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다. 압박도 지원도 필요 없다. 다만 급히 해야 할 일은 북한의 실상, 북한의 인권실상을 가감 없이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며, 북한인권단체가 민간차원에서 북한문제에 더 깊이 개입할 수 있도록 도우는 일이다.

그러나 인수위 한 자문위원의 한가하고 구태의연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신정부의 대북정책은 잘못하면 또 다시 변종 햇볕정책으로 타락하여 차라리 없는 것보다 나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명박 당선인은 경제 살리기에만 신경 쓸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