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생일날 양말 10만 켤레 바쳤다”

▲ 평양 통일시장의 내부 모습. 판매되는 물품은 대부분 중국산이다. <사진:연합>

북한의 민간경제에 ‘화교(華僑)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최근 만난 북한 주민들에 따르면, 장마당에서 유통되고 있는 상품의 90% 이상이 중국산 제품이며, 대규모 ‘도매상권’은 모두 중국 상인들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중국 상인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국영상점’까지 인수, 일부 상품에 대해 ‘가격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평양 1백화점 화교들에게 넘어가

최근 중국 단둥(丹東)에 출장 나온 000도 통신관리국 소속 박형수(가명. 48세) 씨에 따르면 “북한 경제의 상징이라는 평양 1백화점의 실제 주인은 왕(王)가라는 중국 상인이며, 인건비와 건물임대료로 매출의 30% 정도를 국가에 바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쑤시개부터 가전제품까지, 북한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90% 이상은 중국제”라며 “기업소나 공장들이 돌아가지 않으니, 국영상업이라는 것은 사실상 이름뿐이고 상업관리소나 도매소도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퍼져있는 우스갯소리로 “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강택민(江澤民)이가 우리를 먹여 살렸는데, 요즘에는 화교 상인들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중국 상인들의 집에 가면 북한 돈이 가득 담긴 자루가 쌓여 있다고 한다. 몇 해 전까지 북한 지폐 중 100원짜리가 제일 클 때, 화교들은 지폐를 세지 않고 저울로 달아서 거래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나마 지금은 만 원, 오천 원짜리 고액권이 등장하여 돈 세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무역도시 단둥은 화교들 거점

최근 신의주와 중국의 단둥시를 연결하는 ‘중조우의교(中朝友宜橋)’우로는 중국상품을 싣고 북한으로 들어가는 차량들의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단둥 해관(세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따웨이(長大衛) 씨는 “저 차들은 중국에서 주는 원조물자가 아니라 우리 상인들이 갖고 들어가는 물건들”이라며 “많을 때는 7톤짜리 트럭 20-30대가 한 번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중국 단둥은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자와 상인들이 집결하는 장소다.

압록강 ‘조중우의교’에서 화물차량들을 인도하고 있는 중국 상인 황춘매(黃春梅. 47세) 씨를 만나보았다.

황씨는 원래 중국에서 태어났으나 문화대혁명 시기에 아버지가 홍위병들에게 폭행 당해 사망하자, 8살의 나이로 어머니를 따라 북한으로 도망쳐 나왔다. 아버지는 한족(漢族), 어머니는 북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평안남도 순천에서 살다가 10년 전에 용천으로 이사 나왔다.

북한 간부들에게 ‘뇌물’은 필수

“북한에서 장사 하려면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나는 평북도 도보위부 외사과 사람들과 친하다. 난 도강증만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보위부에 가서 도장만 받으면 중국에 다니는 데 아무 불편이 없다. 보위부 사람들과 친해놓으면 통행증 발급이 쉽고, 안전부 사람들과 친하면 도둑들을 막아주고, 당 기관 사람들과 친하면 장사가 쉽다.”

황씨와 같은 중국 상인들은 북한 간부들에게 투자(?)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보위부나 안전부 사람들은 술과 담배, 옷가지를 가장 좋아한다. 특히 조선에는 강도와 도둑들이 많은데, 나와 친한 보안서 요원들은 전화 한 통이면 즉각 달려온다. 그리고 내 물건을 가져간 사람들이 돈을 갚지 않으면 같이 가서 받아오기도 한다. 그때마다 수고비를 잊지 않고 쥐어 준다.”

김정일 생일에 양말 10만 켤레 바쳐

황씨가 이처럼 든든한 배경을 갖게 된 것은 97년부터라고 한다. 당 기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김정일 장군님의 생일날에 용천군 주민들에게 양말 한 켤레씩 선물로 돌리겠다”고 제의했다. 용천군 당위원회에서는 황씨의 ‘애국정성’을 즉시 승낙했고, 황씨는 단둥으로 건너가 나일론 양말 10만 켤레를 공수해 왔다.

당시 도매가로 양말 한 켤레에 인민폐 50전(한국 원화 75원 정도)에 구입했다고 한다. 인민폐로 5만 원(한국 원화 750만 원 정도)이 넘는 돈이 사용됐다. 황씨가 준비한 10만 켤레의 양말은 ‘김정일 장군님의 하사품’으로 포장되어 용천 군민들에게 배급되었다고 한다.

황씨는 현재 용천에도 집이 있고, 중국 단둥에도 집이 있다. 용천 집은 황씨의 사업거점이고 단둥 집은 황씨 남편의 사업거점이다.

단둥에는 황씨 부부에게 고정적으로 물건을 납품하는 도매업자들이 있다고 한다. 황씨는 주로 중국의 시장에서 팔리지 않은 ‘재고상품’이나 ‘저가상품’들을 구매한다. 재작년에는 절강성(浙江省)에서 4원(인민폐)짜리 작업화 5천 켤레를 북한으로 가지고 들어가 북한의 소매상들에게 켤레당 13원(인민폐)에 넘겼다고 한다. 어림잡아 순이익만 3-4만 원(인민폐), 한국 돈 수백만 원의 이익을 남겼다.

“내가 단둥에서 물건을 갖고 용천으로 들어간다고 연락을 해놓으면 미리 소매상들이 와서 대기한다. 용천에 도착하면 창고에 넣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물건을 떼간다. 우리는 차를 가지고 움직이는 ‘통 큰 사람들’과 거래하고 ‘보따리 장사꾼’들은 상대하지 않는다.”

도매상은 ‘차들이’, 소매상은 ‘달리기’

황씨에 따르면 각 도마다 상권(商圈)이 좋은 곳에 큰 시장들이 들어서 있는데, 평안남도는 평성과 순천, 황해도는 사리원, 평안북도는 신의주, 함경북도는 나선과 회령이다. 함경북도에는 ‘조선의 물자는 다 모인다’는 청진이 있다.

크게 움직이는 장사꾼들은 한탕에 북한 돈 100~300만 원씩 가지고 와서 물건을 가지고 가는데 이들을 보고 ‘차들이’라고 부른다. ‘차들이’가 각 도에 있는 큰 시장에다 물건을 뿌리면, 각 군으로 날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작게 보따리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달리기’라고 부른다. 황씨에 따르면 중국 상인들은 대부분 ‘차들이’만을 상대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상인들은 자기 물건을 다 팔고 나면 조선 돈을 달러나 엔화, 인민폐로 바꾼다. 그리고 남는 돈으로는 해삼이나 버섯 같은 농수산물을 산다. 90년대 후반에는 동(銅), 파철, 알루미늄 같은 비철금속들을 중국으로 가져다 팔았다. 식량난에 허덕이던 주민들이 공장설비를 뜯어 전동기의 구리선 같은 것을 팔았던 것이다.

화교들도 ‘국가통제품’은 손대지 못해

황씨에게 언제나 이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5년 전에 평양-신의주간 열차에서 금 3kg을 빼앗긴 적도 있었다고 한다.

평양에서 기차에 오르기 전, 빈 맥주병 안에 금가루 3kg을 넣고 맥주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밀수’를 시도했다. 검사소 일꾼들이 객차에 올라 짐을 검사하는데, 그날따라 친분이 전혀 없는 검사장에게 걸린 것이다. 다른 병보다 무거운 맥주병을 집어 든 검사장은 주인을 찾았다. 황씨는 모른 척 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만약 들키는 날에는 금을 몰수당하는 것은 물론, 다시 도강증을 발급받기 어렵다. 금은 김정일이 직접 관리하는 ‘국가통제품’이기 때문이다. 황씨는 앉은 자리에서 미화 3만 달러를 날렸다고 한다. 그 이후로 황씨는 ‘밀수’는 꿈도 꾸지 않는다고 했다.

중국 단둥 = 권정현 특파원kjh@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