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드라마’ 시청률은 北에서 이미 추락중

지난해 10월 북한 핵실험은 ‘김정일 드라마’의 절정이었다.

김정일은 김일성 때부터 집요하게 추구해온 핵보유국의 야망을 20여년만에 기어이 달성했으며, 그로 인해 워싱턴은 부득불 또다시 평양을 품어 안아야 하는 상황에 몰렸고, 그 결과 2.13 베이징 합의가 나왔다.

그러나 김정일의 바람과는 달리 그 드라마는 국제사회에서는 높은 시청률을 올렸지만, 막상 북한 안에서는 별달리 호응을 얻지 못한 듯하다. 이유는 하나. 어떤 항생제도 더 이상 듣지 않는 말기환자처럼 김정일의 인질인 2천만 동포에게 김정일식 공포정치의 약효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탓이다.

원래 김정일의 유일한 통치수단은 공포정치다. 일례로 말년에 김영삼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안을 받고 그리 기뻐했던 김일성과 달리 김정일은 개혁개방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식 공포정치는 그 서막을 올린다. 3백만의 대량아사라는 민족사 최악의 비극이 발생하던 시절에 김정일이 취한 유일한 위정은 ‘심화조’란 이름의 전광석화와 같은 북한판 문화혁명이었다. 북한 최고의 군인들이 모인 호위총국에서부터 과거 김일성의 측근을 비롯한 3만명에 이르는 핵심계층을 숙청하며, 김일성의 신화와 기억을 지워내고 김정일의 1인 지배체제를 뿌리내리는 일에 사활을 걸었다. 비록 대내외적으로는 김일성을 떠받드는 ‘유훈 통치’를 한다고 선전했지만 말이다.

당연히 이 시기에 굶어죽고 아사지경에 처한 2천만 이북동포들은 파리목숨과도 같은 노예일 뿐이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2002년 7.1조치에서 보듯이 2천만 백성들은 자기가 각자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한다. 김정일은 주민에 대한 배려는커녕 오히려 장마당까지 들쑤셔 지독하게 세금을 거두어가고, 동포들은 죽지못해 살아가는 것이 오늘의 북한 현실이다.

김정일 공포정치도 내리막길

지금껏 김정일의 공포정치는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 그러기에 클린턴 정부가 평양정권이 곧 무너질 줄 알고 제네바합의에 덥썩 도장을 찍었음에도 김정일의 권력은 무너지기는커녕 3백만 대량아사라는 파국의 고비를 넘어 요지부동으로 존재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절대권력에 금이 가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김정일이 이유없는 절대충성의 공포정치를 유지하는 대가로 측근과 핵심계층에 주어온 당근의 창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당근 창고의 내역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선물’로서, 충성도에 따라 호화사치품부터 생필품까지 수시로 주어왔다. 또 하나는 ‘수뢰의 묵인’이다. 어차피 계획경제는 오래 전에 파산했기에 김정일이 채워줄 수 없는 물량은 스스로 알아서 인민들에게 착취하는 것을 눈감아 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선물이 줄어들면서 절대권력자가 수하들의 전리품에까지 눈독을 들이는 상황이 도래했다는 점이다. 이미 2003년 무렵부터 ‘공채’라는 이름으로 핵심계층에게 그 장롱의 비상금을 내어놓으라고 닥달하기 시작하더니만, 최근에 와서는 국경수비대까지 이 잡듯 뒤지고 있다. 그 결과 얼마 전 각자 소속이 다른 국경수비대의 장교와 하사를 포함한 20여 명이 탈북하는 사상 초유의 일까지 벌어졌다.

이는 매우 심각한 징후이다. 국경수비대에 근무하는 동안이라도 몇십 만원의 장사밑천을 마련해 나오지 않는다면 국경수비대 근무의 매력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지경에서, 또 그 뇌물을 줄줄이 사탕식으로 김정일 턱밑에까지 상납하며 세계 최고의 매우 안정된 부패공화국으로 간신히 버텨나가고 있는 지경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김정일이 주는 것도 없이 그 뇌관을 건드렸으니, 이 사건이 주는 파장은 추후 예상을 뛰어넘는 파국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 징후는 벌써 드러나고 있다. 정치범수용소에서 120명이 집단 탈주하는, 상상도 불가능한 일이 기어코 벌어지고야 말았다. 그 곳은 죽어서도 나올 수 없는 곳이며, 최근에 와서 거액을 들여 고작해야 한두 사람을 빼내오는 정도였다. 그런데 집단 탈주극이라니. 이는 김정일 권력에게는 시민폭동보다 더한 종말론의 징후이다.

김정일은 지금 마지막 관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미 수 년 전부터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을 포함한 현지지도의 현장에 사제폭탄이 발견되는 일이 종종 있어왔음에도 별 탈 없이 넘어왔던 것은, 인민들이 죽든말든 핵심계층이 알아서 부패공화국의 공범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짜며 견뎌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레드 라인이 무너지고 있다.

이에 더해 올해 들어와서는 모든 학생들과 교원에게 배포하는 공식매체 ‘교육신문’에서 김정일은 스스로 ‘어버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의 경우처럼 최고의 극존칭은 ‘어버이 수령’이다. 김정일이 심화조 숙청을 할 때도 김일성을 ‘영원한 수령’이라 칭하며 차마 그 호칭만큼은 범접을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최악의 상황에서, 인민들이 모이면 김정일을 ‘걔’ ‘그 아이’라 부르고 핵심계층 또한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시점에서 스스로 ‘어버이’라 부르게 만든 것이다.

참으로 지혜가 절실한 시기

앞으로 김정일에게는 몇 개의 관문이 있을 것이다.

첫 관문은 북핵이다. 좀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워싱턴의 기류는 북한을 그저 품어주는 제2의 제네바 합의가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즉, 김정일의 유일한 실적이 핵보유국 달성인데 핵폐기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김정일이 무어라 군대를 다독거릴 것인가.

2월 13일 베이징 합의가 발표되던 날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핵시설 폐쇄나 불능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임시 가동중지’라고 거짓말을 했다. 군대와 인민들을 속이기 위한 선전술이다. 더구나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중국 역시 포스트 김정일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둘째 관문은 대한민국이다. 극소수 친김정일 세력이 무어라 난동을 부리든 이미 탈북자 1만명 시대를 맞이한 우리 국민들에게 북한 정보는 넘쳐나고, 김정일에 대한 판단 또한 뚜렷해지고 있다. 차기 정권이 누가 되든 김정일의 입맛에 맞는 평양 지원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말기 증후의 증폭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얻는 교훈처럼, 절대 권력자는 말기증후가 나타나기 전에 그 권력을 지키는 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일단 말기증후가 드러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김정일에게는 이 세 가지가 삼재(三災)로 한꺼번에 닥치고 있다. 그의 종언은 이북동포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아울러 한 갑자를 넘긴 분단의 악몽을 씻어내는 한민족의 새 출발점이 될 것이다.

올해와 내년, 국내의 정치놀음에 발목 잡혀서 아니 되는 것은 경제뿐 아니라 순식간에 우리 눈앞에 해일로 밀어닥칠지도 모를 민족문제다. 참으로 지혜가 절실한 시기이다.

김석규/코리아글로브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