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다녀간 공장도 문 닫았는데…개인투자 공장은 ‘활기’

평양 시내의 목란비디오 CD판매대(기사와 무관).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북한 평안남도 평성에서 이른바 ‘돈주’로 불리는 신흥부유층이 직간접적으로 투자·관여하고 있는 상업시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반대로 일부 지방공장들은 원자재 부족과 수요 파악 실패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평안도 소식통은 29일 데일리NK에 평성시 소재 개인 투자 상업시설 2곳의 운영 실태와 이와는 사뭇 다른 상황에 놓인 공장 3곳의 실태를 파악해 상세히 전해왔다.

소식통은 먼저 지난 2017년 평성시 은덕동에 건설된 종합봉사시설 ‘평성원’을 언급하며 “디자인도 화려하고 잘 꾸려져 있어 운영이 잘 되고 있다”고 전했다. 목욕탕과 사우나, 이발소, 오락실, 식당, 상점 등이 들어서 있는 평성원은 과거 환율장사를 하던 여성 돈주가 투자해 건설됐으며, 현재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는 복합상업시설로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소식통은 평성 역전동에 위치한 평성백화점과 관련해서도 “대동강, 서경, 낙원, 모란봉 등 무역회사들이 중국 등 외국상품과 일부 국내상품을 이곳에 가져다 놓고 판매하는데 시장보다 가격이 저렴해 주민들이 많이 찾고 있다”며 “철도역이 가깝고 평양-순천 간 도로에 인접해 있어 상품도매지로도 이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평성백화점은 평성시 상업관리소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개인 돈주들과 일부 무역회사들이 자신들의 자금을 들여 도·소매에 관여하고 있으며 판매원도 직접 데려다 쓰고 있다고 한다. 시 상업관리소는 이들에게 사실상의 운영권을 주는 대신 수수료만 받아 챙기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얘기다.

북한은 지난 2013년과 2015년 기업소법을 개정해 기업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할 근거를 마련했다. 시장화의 진전에 따라 신흥 부유층으로 성장한 개인, 흔히 돈주라고 불리는 이들이 국영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사실상 열어둔 것이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개인이 직접 투자·운영하는 기업소나 상점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 당국은 여전히 개인의 소유권과 재산권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어 형식적으로는 국영기업이나 국가기관 이름을 걸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처럼 평성시 내에서 개인이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상업시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것과 달리, 평성시 내 일부 제품 생산공장들은 원자재 수급에 차질을 겪거나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서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동강축전지공장. /사진=조선의 오늘 캡처

이와 관련해 소식통은 먼저 평성시 평성동에 위치한 대동강축전지 조립공장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연간 약 5000개의 자동차용 배터리를 조립하는 이 공장은 그동안 시장 수요가 많아 운영이 비교적 잘되고 있었는데 지난해 11월부터 원자재 부족으로 생산이 중단됐다”며 “결국 올해 봄 국가로부터 부업용 토지를 받아 감자농사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종업원들은 공장 생산중단 사태로 한순간에 농사에 투입됐지만, 이마저 하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없기에 연초부터 퇴비생산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또 소식통은 “평성 송령동에 있는 종이공장은 학생들의 학습장과 포장종이를 생산하고 있는데 질이 떨어져 수요가 줄고 중국 상품에 밀려 판매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공장은 상품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지만 주원료인 볏짚이나 목재의 수급이 원만하지 않은데다 기술과 자금도 부족해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총 3층짜리의 건물로 된 공장의 2층과 3층은 현재 개인주택으로 전환되고 1층만 작업장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밖에 소식통에 따르면 과거 김일성이 현지지도했던 모란봉 시계공장은 1990년대 경제난으로 시계생산을 중단한 후 일본의 한 회사와 계약해 소형변압기를 제작하며 근근이 연명했지만 이마저도 못하게 되면서 최근에는 완전히 문을 닫았다. 공장에는 김일성이 다녀간 곳이라고 명판까지 붙었지만 생산을 하지 않아 설비에 녹이 슬고 있으며, 5층 합숙소(기숙사)는 개인주택으로 전환됐다고 한다.

그는 “모란봉시계에 대한 수요가 없으면 다른 품종으로 대담하게 전환해야 하지만 나라의 외아들 공장이고 현지지도 단위라 마음대로 하지 못해 ‘아까운 건물만 썩고 있다’는 말이 많다”면서 “수백 명의 종업원들이 출근하지 못하고 자전거 수리, 인조고기 장사 등 장마당에서 알아서 살다가 한 달에 한 번씩 공장에 나오는데 경비원은 이곳 종업원인지 아닌지 얼굴도 모르는 형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