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당과 조국을 위한 충성자금’에 사람은 없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건설장에서 작업 중인 북한 노동자. 외벽에 매달려 있는 듯해 매우 위험해 보인다. /사진=강동완 전 동아대 교수 제공

지난달 25일 북러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2011년 김정일이 러시아를 방문한 이후 8년 만에 김정은은 1,200km를 달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5시간의 마라톤회담 동안 북한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을까? 비핵화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밖에 못 얻어냈지만,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문제에선 “여러 대안이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답변을 이끌어 내는 등 소기의 성과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겠다.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연해주는 약 3만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이른바 “충성의 외화벌이 일꾼”으로 파견되었던 곳이다. 길거리는 물론 건설장 어디에서나 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현재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노동자는 두 부류다. 첫 번째 유형은 단체로 합숙하며 일을 하는 경우다. 이들은 러시아에 파견된 지 대략 2년 이내 사람들로 중대형건설장에서 일을 하며 합숙생활을 한다. 건설장 내에 숙소를 마련해 생활하기 때문에 거의 감금이나 다름없다. 일을 해도 직장장이나 관리자가 착복하거나 생활비 명목으로 바치는 게 많아 거의 한 푼도 손에 쥘 수가 없다고 한다.

두 번째 유형은 개인별로 생활하며 청부 일을 하는 노동자다. 러시아에 파견된 후 2-3년이 지나면 대략 일상생활에 필요한 언어를 습득한다. 러시아에 파견되기 전까지 건설관련 일을 전혀 할 줄 몰랐던 노동자들도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어느 정도 숙련공이 된다. 예를 들어 낡은 집의 리모델링을 맡기면 배관, 타일, 전기, 수도, 인테리어 까지 혼자서 가능할 정도다. 언어와 기술이 숙련된 노동자들을 직장장이나 관리자들은 개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다. 단체로 관리하며 합숙하는 숙소가 아닌 개인이 직접 나가서 일을 하고 돈을 바치는 방식이다. 이들이 바치는 계획분(상납금)은 한 달에 1,000달러(약 5만 루블)에 이른다. 매주 토요일에 한 번씩 관리자와 만나거나 숙소에 들어와서 상납하는 형태다.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다>를 외치는 북한 정권에게 그 돈은 쏠쏠한 수입원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북제재의 영향으로 작년부터 갑작스럽게 본국으로 노동자들이 철수하면서 북한의 외화벌이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다만 김정은의 방러 전 갑자기 노동자 숫자가 늘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그들은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에서도 건설 일에 내몰리며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한다. 겨우 잠자리에 드는 시간, 알코올원액에 물을 타서 한잔 들이킨다. 한국 돈으로 3,000원이면 살 수 있는 보드카 한 병 값을 아끼기 위해서다. 그마저도 한잔 마시지 않으면 고향에 두고 온 가족생각과 상납금 걱정에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인이 운영하는 식당의 정식. 주로 북한 노동자들이 찾는다고 한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그들이 찾는 베트남 식당에는 3,000원 짜리 정식을 판다. 수북이 쌓인 흰쌀밥에 고기 한 점 먹는 것이 그들에게는 그나마 유일한 낙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간다.

필자가 러시아에서 만난 한 북한 노동자는 “제발 총 하나만 구해주세요. 직장장 쏴버리게…”라고 말했다. 당과 조국을 위한 충성자금 명목으로 다 떼이고 나면 손에 쥐는 건 하나도 없는데, 계획분을 다 못 채웠다고 죽일 만큼 괴롭히니 하는 말이라고 했다.

바로 그 곳에 김정은이 발 딛고 선 것이다. 비핵화를 논의하고 동북아 평화를 협의하기 위한 정상회담이라고만 한다면 러시아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북한노동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가 그곳에 온 분명한 목적은 작년부터 시작된 러시아에서의 북한노동자 송환을 어떻게든 연장하거나 막아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대북 제재로 인해 올해 12월까지 완전히 철수해야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시가 절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노동비자를 발급받기 어려워 3개월짜리 관광 비자로 보내서 일을 시키는 꼼수도 포착된다고 한다.

평양을 출발해 달린 열차가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고 유라시아까지 닿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갖기 전에 그 철로 아래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의 절규를, 그리고 연해주 땅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북한 노동자들의 아픔도 헤아려야 할 것이다.

평화가 곧 경제라면 그 평화에는 독재의 연장을 위해 백성들을 억압하고 핍박하는 행태도 사라져야 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절규가 귀에 쟁쟁한데 겉으로 보이는 웃음에 평화롭다 말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참상을 보았기에, 그들의 절규를 들었기에 전하지 않고 침묵하는 건 또 다른 죄악이라 생각하기에 그저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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