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5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초청하는 친서를 보냈다고 북한 관영매체가 21일 보도했다. 특히 매체는 “국무위원회 위원장께서 부산에 나가셔야할 합당한 이유를 끝끝내 찾아내지 못했다”면서 문 대통령의 초청에 대한 거절 입장을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모든 일에는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11월 5일 남조선의 문재인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께서 이번 특별수뇌자회의(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해주실 것을 간절히 초청하는 친서를 정중히 보내왔다”면서 “남측의 기대와 성의는 고맙지만 국무위원회 위원장께서 부산에 나가셔야 할 합당한 이유를 끝끝내 찾아내지 못한 데 대해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통신은 “이 기회라도 놓치지 않고 현 북남관계를 풀기 위한 새로운 계기점과 여건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와 번민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서 “그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가 온 후에도 몇 차례나 국무위원회 위원장께서 못 오신다면 특사라도 방문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청을 보내온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 김 위원장의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을 초청한 점과 이후 여러 차례 특사 방문을 요청한 점을 공개하면서, 이에 대한 거절 의사를 밝힌 셈이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초청하겠다는 뜻은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이와 관련해 친서를 보낸 사실은 이번 북한 매체의 보도로 처음 공개됐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의 부산 방문을 계기로 소강 국면에 빠진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했던 정부의 구상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통신은 “흐려질 대로 흐려진 남조선의 공기는 북남관계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며 남조선당국도 북남 사이에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의연히 민족공조가 아닌 외세의존으로 풀어나가려는 그릇된 입장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엄연한 현실”이라면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방미 행보를 거론해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무슨 일에서나 다 제시간과 장소가 있으며 들 데, 날 데가 따로 있는 법”이라며 “북과 남 사이의 근본문제, 민족문제는 하나도 풀지 못하면서 북남수뇌들 사이에 여전히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냄새나 피우고 저들이 주도한 ‘신남방정책’의 귀퉁이에 북남관계를 슬쩍 끼워넣어보자는 불순한 기도를 무턱대고 따를 우리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통신은 “모처럼 찾아왔던 화해와 협력의 훈풍을 흔적도 없이 날려 보내고 있는데도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남조선당국이 종이 한장의 초청으로 조성된 험악한 상태를 손바닥 뒤집듯이 가볍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한 오산은 없을 것”이라며 “판문점과 평양, 백두산에서 한 약속이 하나도 실현된 것이 없는 지금의 시점에 형식뿐인 북남수뇌상봉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 포함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가 남측의 소극적 태도로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미국의 셈법 전환에 남측이 역할을 해줄 것을 압박하는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0차 한·아세안 정상회의 당시 ‘내년(2019년) 회의에 김 위원장을 초청하자’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즉석 제안에 “주목되는 제안”이라며 적극 검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어 올해 8월에는 동남아 3개국 순방을 앞두고 진행된 태국의 영문 일간지 ‘방콕포스트’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 김 위원장이 함께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매우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초청 가능성을 시사, 김 위원장의 부산 방문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