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들, 3일부터 신년사 암송 시작

▲ 2005년 1월 6일 평양시 신년사 관철 군중대회

나는 요 며칠전 했던 일도 잘 생각나지 않는데, 탈북자들을 만나보면 비상한 기억력에 놀라게 된다.

일가친척의 생일이나 입당(入黨)일, 혹은 자신이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탈출한 날짜 등을 기억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직장에 배치 받은 날짜, 어떤 장사를 하다 손해를 봤던 특정한 날짜, 누구와 크게 다퉜던 날짜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 같으면 “그때가 1992년이었나, 93년이었나……” 하고 머뭇거릴 이야기를 그들은 “1992년 4월 8일” 하는 식으로, 혹은 그날의 요일까지 정확하게 이야기를 한다. 너무 정확하고 똑부러지게 이야기를 하니까 처음에는 이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나 의심을 하기도 했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위장하기 위해 일부러 정확한 척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암기식 교육과 생활총화, 단조로운 생활로 기억력 탁월?

그러나 숱한 탈북자들을 만나면서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북한 사람들은 대체로 기억력이 좋다. 특히 연도 및 날짜에 대한 기억력이 비상하다. 그 이유는 다음 몇 가지 때문이다.

첫째, 암기식(주입식) 교육을 계속 받아왔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김일성 혁명역사를 공부하는데, 정확한 연도와 날짜까지 줄줄 외워야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한 날은 1932년 4월 25일”이라는 굵직한 사건에서부터, 특정한 회의의 장소와 날짜, 어떤 전투의 기간과 전사자 이름까지 기억해야 한다. 예컨대 “고난의 행군을 총화하고 제2차 국내진공작전을 결정한 북대정자 회의는 중국 장백현에서 1939년 4월 3일부터 4일까지 2일간 열렸다”거나, “1939년 12월 육과송전투에서는 7연대장 오중흡이 전사했다”는 식이다.

이렇게 연도와 날짜를 소상히 외우는 훈련을 어려서부터 하다 보니 자신의 일상과 관련해서도 연도와 날짜까지 분명하게 외우는 경우가 많다.

둘째, 생활총화를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생활총화’라는 것이 있다. 자기비판과 상호비판을 하는 시간이다. 직종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2~3일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인 총화를 하고, 또한 월 단위, 연 단위로 종합적인 총화를 실시한다.

총화의 기준은 ‘수령님의 충직한 전사로서 얼마나 열심히 살았나’이다. 그래서 며칠 전 수업시간에 깜빡 졸았던 것도 ‘수령님에게 불충(不忠)한 것’으로 털어놓고 이야기해야 하고, 사격훈련에 만점을 받지 못한 것도 ‘충성심이 부족했던 탓’이며, 정 자기비판할 내용이 없으면 늦잠을 잤다거나 병에 걸렸던 것도 ‘사상적인 문제점’으로 만들어내 이야기해야 한다.

자꾸 그런 식으로 자기 생활을 되풀이해 떠올리고 다시 떠올리다 보니 “나는 1990년 3월 23일에 어떤 잘못을 했다”라는 식으로 각인되어 남아 있다.

셋째, 북한 사회가 그만큼 단순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만 해도 하루하루가 변화무쌍하고 숨이 가쁘게 바쁘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매일 같이 엄청난 정보가 쏟아져 그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하려 한다면 며칠 내로 머리가 폭발해 버릴 것이다. 그래서 일반대중은 각개 정보보다는 누적된 정보와 이미지로 사실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고 – 그래서 ‘이미지 정치’가 판을 치나 보다 – 몇 달 전에 했던 일의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조차도 한가로운 사람이나 할 일이다. 혹은 지나치게 기억력이 비상한 사람이거나.

하지만 북한 사회는, 극히 경제난 이후로는, 하루하루가 그저 ‘오늘은 어떻게 하면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뿐이다. 물론 남한 사람들도 생계의 문제가 큰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지만, 북한 주민들의 그것은 절박한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복잡한 사고의 영역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단조롭고 변화가 없으며 정보의 양이 한정된 사회에서 ‘그나마 벌어지는’ 특정한 사건을 기억하는 것은,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고 정보가 너무 많아 오히려 걱정이 되는 사회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특정한 사건을 기억하는 수고보다 훨씬 덜하다.

1월 3일부터 A4용지 10여장 분량 외워야

이런 이유들이 북한 주민들의 기억력을 향상(?)시켰다. 갑작스레 이런 기억력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제 발표된 북한의 ‘신년공동사설’ 때문이다.

북한은 김일성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직접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김정일은 목소리에 자신이 없는지, 김일성 사후에는 당보(노동신문), 군보(조선인민군), 청년보(청년전위) 등 주요 3대 선전매체의 명의로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하고 있다.

그 분량은 자그마치 1만~2만 자, A4용지로 13~20장에 달한다. 북한 주민들은 오늘(1월 2일)까지는 집에서 쉬고, 내일부터는 학교와 직장에 출근해 이 신년사를 외워야 한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며칠 내로 외우지만, 천성적으로 기억력이 나쁜 사람은 한달 내내 달달 볶이면서 외워야 하고, 그래도 외우지 못하면 일년 내내 그 ‘죄값’을 치러야 한다.

문득 국민교육헌장 416 글자(제목 제외, 마침표 포함)를 외우지 못해 외울 때까지 교실에 남아있어야 했던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에겐 과거완료형의 추억 정도로 회자되는 이야기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현재진행형의 혹독한 현실이며, 우리는 손바닥이나 엉덩이 몇 대 맞고 끝나는 수준이었지만 북한 주민들에겐 때론 생명이 걸린 일이다.

내일부터, 뜻도 의미도 모른 채 그저 무작정 신년공동사설을 외워야 할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시리게 다가온다. 특히나 올해 신년사는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 잔치판’ 이었는데 말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