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안전 보장 통해 제재 완화도 노리는 방식으로 전략 수정”

전문가, “北이 안전보장 요구하면 북미간 간극 좁히기 더 어려워질 것”

북미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 사진=노동신문

비핵화 협상에 북한이 강조할 주요 쟁점이 ‘제재 완화’에서 ‘안전 보장’으로 무게 중심이 바뀌는 분위기다. 북한 당국은 지난 16일 발표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와 중앙통신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미국이 남조선(한국)과 합동 군사 연습인 ‘동맹 19-2’를 현실화한다면 조미(북미) 실무협상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군사적 안전 보장 문제와 비핵화 협상을 연계하면서 안전 보장의 의미를 확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방장관의 최근 발언도 앞으로 이뤄질 북미 간 대화에서 ‘안전 보장’이 주요 쟁점이 될 것임을 보여준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 정권에 대한 중요한 임무를 갖고 있고 북한 주민들을 위해 이 일을 더 잘 해야 하며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보장(security assurances)이 갖춰지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앞으로 개최될 실무협상에서 ‘안전 보장’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북한이 요구하는 ‘안전 보장’이란 무엇인지 명확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북한 내부 권력 지형에 밝은 한 고위급 탈북민은 24일 데일리NK에 “안전 보장은 대북 제재 완화보다 상위 개념”이라며 “하노이 회담 이후 김정은 정권은 제재 완화보다 큰 문제인 안전보장부터 해결하려는 입장으로 전환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안전 보장 문제를 풀면 그 안에서 제재 해제도 해결된다는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리용호 외무상은 하노이 회담 결렬(2월 28일) 직후인 3월 1일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취해나가는 데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안전 담보 문제이지만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안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제재 해제는 부분적인 문제이고 안전 보장은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부분적인 문제의 해결을 먼저 요구한 북한의 전략이 하노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따라 북한 당국이 밝힌 새로운 비핵화 셈법에는 안전 보장 요구가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북한이 요구하는 ‘안전 보장’을 김정은 정권의 유지를 의미하는 ‘체제 보장’과 혼동해선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호범 중국 산동대학교 교수는 “현재 북한이 봤을 땐 체제 자체가 위험하지 않고 운영도 나름 잘 되고 있는데 왜 체제 보장에 집중하겠나”고 말했다. 또한 체제 보장이란 한국 또는 미국에서 만들어낸 말이지 북한이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며, 체제 보장은 북한 내부의 인민이 당과 수령을 떠받드는 일이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미국에 요구할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방 교수는 덧붙였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안전보장과 체제안전 보장은 분리해야 하는 개념”이라면서 “안전 보장은 핵무기나 재래식 무기 등 북한에 군사적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핵심”이라고 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안전 보장은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 중지를 비롯해 대북 방송 중단, 인권 문제 거론 중단 등 내정 불간섭 문제가 포함되는 포괄적 개념이라는 것이 천 이사장의 분석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안전 보장’의 형식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북한 고위급 탈북민은 “북한 당국은 미국 의회의 비준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안전을 담보받고 싶어 할 것”이라고 했다. 천 이사장도 “북한이 원하는 안전 보장은 미국 의회의 동의를 받은 법적인 구속력”이라며 “북한은 자신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보증보다도 미국의 법적인 담보를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앞으로 개최될 실무협상에서 구체적으로 안전 보장을 요구할 경우 비핵화를 위한 방정식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천 이사장은 “안전 보장은 비핵화가 완료되는 시점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며 “협상 단계에서 합의점을 논의할 수 있겠지만 핵이 유지되는 동안은 안전보장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도 발효는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로의 이행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안전 보장, 즉 한반도에서의 무장 해제를 요구한다면 비핵화 협상은 점점 난항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판문점 회동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급한 “2, 3주 내 실무협상 개최”의 시한이 지났다는 점에서 향후 북미 간 간극을 좁히는 데도 상당한 공방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