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KAL기 사건 그리고 수구좌파

▲ KAL858 사건 음모론을 다룬 책들

요 며칠 사이 한국에는 이른바 ‘X파일’이라는 舊안기부의 도청테이프가 정 ∙ 재계에 메가톤급 폭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급기야, 논란이 되고 있는 테이프 속 목소리의 한 당사자인 전 중앙일보 사장 홍석현 주미대사가 사의를 표명했다. UN사무총장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 바로 엊그제인데 ‘인간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실감한다.

X파일 사건을 보면서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는 진리도 새삼 확인한다. 음식점에서 조용히 속삭이며 나눈 대화가 거의 10년이 지난 후 세상에 공개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고 보니 KAL858기 폭파사건이 떠오른다.

과거사를 규명한다며 그 단골메뉴 가운데 하나로 올라있는 것이 KAL기 폭파사건이다. 친북좌파들은 줄기차게 이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말해왔고, 이들의 주장을 믿는 사람들도 꽤나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도올 김용옥 같은 사람까지 “김현희 KAL기 폭파 등에 숨은 범죄”라고 말할 정도이니 정말 음모론의 뿌리는 깊고도 질기다.

몇 십 명이 동원된 조작이 가능할까?

단도직입적으로, KAL기 조작설을 유포하는 사람들은 이번 X파일 사건을 보면서 느끼는 게 없는지 묻고 싶다. 대체로 KAL 사건의 윤곽 정도는 알고 있을 만한 사람들인데, 그러한 사건을 조작하려면 최소한 몇 십 명은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몇 십 명 가운데 누구도 ‘배신’하지 않고 지금껏 침묵을 지키는 것이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구차하지만 간단하게라도 하나씩 짚어보자.

일단은 자신이 KAL기를 폭파했다고 주장하는 김현희라는 인물이 필요하고, 그와 함께 공작활동을 하다 독극물을 먹고 자살한 김승일이 필요하다.

김현희의 얼굴은 국내는 물론이고 전세계에 널리 알려졌는데, 조작된 인물이라면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 등장할 만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세상과 격리되어 자란 고아이거나 안기부의 ‘인조인간 프로젝트’에 따라 탄생한 인물이 아니고서야 일가친척이나 친구, 지인들이 나설 만하다. 그런데 지금껏 그런 증언자는 없다. 이에 친북좌파들은 ‘완전히 얼굴을 성형한 조선족 여성’이라는 식의 위대한(?)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김승일은 바레인에서 죽었는데, 그가 죽을 때 옆에는 바레인 경찰이 있었다. 조작되었다면 안기부는 바레인 경찰까지 조작팀의 일원으로 끌어들이고, 시체를 검안한 의사까지도 매수해놓았다는 말이 된다. 또 김승일을 생전에 만나본 한국과 일본대사관의 직원까지도 조작팀에 포함되어 있어야 되고, 김승일 ∙ 김현희가 묵었던 호텔 직원도 마찬가지다.

비행기를 폭파하기 위해 폭탄을 제조했다면 그와 관련된 전문가도 포섭해야 하고, 나중에 김현희가 조작된 인물이라면 심문 과정에 쉽게 눈치를 챌 수 있는 안기부의 조사요원들도 모두 공작팀의 일원이어야 조작이 가능하다.

하여간 이 모든 일에 관여한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배신자가 등장하거나 ‘무언가 낌새가 이상했다’는 식의 양심선언이라도 있을 법한데, 모두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아니면 무슨 대단한 협박을 받았던 것인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김정일 심문해보면 바로 나온다

이번에 물의를 빚고 있는 X파일이 ‘한발의 핵폭탄’이라면 KAL사건 조작 파일은 지구를 한번에 날릴 만한 ‘한 다발의 수소폭탄’이라고 부를 만한데, KAL기 사건의 정치적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김영삼, 김대중 씨가 줄줄이 대통령이 되고, 구 세력을 뒤집어 엎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있는 듯한 노무현 정부가 집권해 있는 지금까지도 그 어떠한 특이증언은 없다.

이러한 조작이 진행되었다면 안기부의 다른 팀에서 소문이라도 들었을 법한데, 이번 도청사건의 이른바 미림(美林)팀도 다른 부서 요원들 사이에 소문이 나면서 전모가 드러난 것인데, 정권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최고권력자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이런 강력한 증언을 그 소문이라도 전해준 안기부 요원은 단 한 명도 없다.

각설하고, KAL기 사건이 조작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초등학생 수준도 되지 못하는 유치한 발상이다. 그러한 것을 진상규명한다고 국가예산을 써가며 그 무슨 위원회를 꾸리느니 김정일에게 테러의 전모를 밝히라고 촉구하는 편이 빠를 것이다.

KAL기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의외로 쉽다. 김정일 정권이 퇴진하고 북한이 민주화되면 된다. 그때, 북한의 대남공작기구인 통일전선부 문서고에 들어가 보면 KAL기 폭파공작 관련 서류가 수백 박스는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때 김정일을 심문해 보면 바로 이실직고할 것이다.

이렇게 쉽고 빠르고 정확한 길을 놔두고 왜 엉뚱한 곳을 파헤치고 있는가?

곽대중 기자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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