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FP통한 대북지원 보류결정 배경은

정부가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대북 지원을 일단 보류한 것은 현재 남북관계 상황, 우리가 판단한 북한 식량 사정, 지원에 따른 효과 등을 감안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지난 20일 WFP로부터 지원요청을 받은 뒤 최근 차관보급 안보정책 실무조정회의와 장관급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를 거쳐 당장 지원하지는 않되, 지원의 가능성은 열어둔 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정부 당국자는 29일 “내주(9월2일) WFP의 기자회견을 듣고 북한 식량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후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며 정부의 공식 입장을 소개했다.

대외적으로 밝힌 정부의 입장은 이처럼 애매하지만 내부 기류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목소리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가 애초 북한에 직접 제공을 제의했던 옥수수 5만t이라도 주자는 의견을 낸 부처가 있었지만 소수의 목소리에 그쳤다는 후문이다.

정부는 북한이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이후 우리의 진상규명 관련 요구에 호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우선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WFP를 통한 간접지원 역시 결국은 세금을 들여 북한을 지원하는 일인 만큼 금강산 사건 발생 후 6자회담 차원의 대북지원을 제외한 모든 정부 차원의 대북 물자 제공을 유보하기로 한 정책의 일관성 유지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북한이 최근 핵시설 불능화를 중단하면서 북핵 정세에 긴장을 조성한 상황이 정부의 입장 정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탈북자를 위장한 간첩 원정화 사건이 27일 공개돼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점도 고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현 상황에서 지원의 효과 측면도 고려 요인이었다는게 정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일단 정부는 북한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이래 최대의 식량위기라는 WFP의 현장 조사 결과가 나왔음에도 아직 북한에 아사자가 빈발할 정도의 식량위기는 오지 않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즉 북한의 요청이 없더라도 심각한 상황일 경우 지원에 나선다는 정부의 대북지원원칙을 적용할 때가 아니라는 판단인 것이다.

더구나 지난 5월부터 제안했던 옥수수 5만t 지원을 북한이 단호하게 거절한 상황에서 WFP를 통한 대북 지원이 순수 인도적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단기 효과 측면에서 당장은 별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는 인도적 지원의 경우 조건없이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 아래 WFP를 통한 지원의 문을 닫지는 않았다. 향후 북한 식량사정의 전개, 다음달 2일 WFP기자회견 후의 국제사회 여론, 북핵 및 금강산 사건 전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결정하겠다는 복안인 것이다.

또 그간 WFP를 통한 지원 문제에서 국민 여론을 늘 주요 변수로 거론했던 것과 달리 이날 당국자가 밝힌 정부의 입장에서 국민 여론과 관련한 언급이 빠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여론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간 `여론 고려’가 강조되면서 인도적 지원은 조건없이 한다는 정부의 기본 입장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 점을 감안한 `미세 조정’으로 보인다.

정부의 이런 입장에 대해 현상황 상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해의 목소리와 `아쉽다’는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동용승 박사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지원 필요성은 항상 있는 것”이라며 “그러나 정부는 인도적 측면 외에 다른 요인들을 생각할때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듯 하다”고 말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김성배 박사는 “정부가 대북 지원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은 이해가 된다”고 전제하면서도 “WFP를 통한 지원이 국제기구가 주도하는 인도적 지원인 만큼 국제사회와 보조를 같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정부가 밝힌 대북 식량지원 관련 원칙은 그대로지만 남북관계 상황은 나빠지면서 지원할 수 있는 명분을 찾지 못한 듯 하다”며 “개인적으로는 신뢰 조성 측면, 모니터링 체제를 갖춘 국제기구가 정식 요청한 점 등을 감안, WFP를 통해 일정 부분 지원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