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거수기 자임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지난 14일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회에서 신임 통일연구원장(차관급)에 김동성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명예교수(66)가 선출됐다. 이번에도 통일연구원 출신들은 최종심사에서 낙마했다. 연구원 내에서는 “이미 위(청와대)에서 결정됐던 것이었다”는 푸념까지 나왔다.


최종후보군(3명)에 연구원 출신 2명이 이름을 올려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연구원 관계자들은 기자와의 만남에서 결과에 대한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형식적으로 공모절차를 밟은 것뿐이지 사실상 위에서 내정한 것을 그대로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김 신임원장을 비롯한 역대 10명의 원장 가운데 연구원 출신은 박영규(8대), 서재진(10대) 원장뿐이다. 이른바 내정된 ‘낙하산’ 인사에 연구원 출신들은 사실상 ‘들러리’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전임 김태우 연구원장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이번 이사회에서 연구원 출신이 선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구원 안팎에서 높았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는 최종후보군이 압축됐을 때 이미 허물어졌다고 한다. 당시 김동성(66) 신임 원장이 후보군에 포함돼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이미 그가 결정됐다는 얘기가 연구원 관계자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그의 경력 등을 이유로 ‘청와대 내정자’라는 소문이 돌면서 연구원장 공모가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격앙된 목소리도 나왔다. 김 신임원장의 ’17대 대통령인수위 자문위원’ 등의 경험과 정치활동이 이번 인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이었다. 이 같은 경력이 이사회 결정에서 중요 기준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관련 연구원들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회의 인사채용 공정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사장을 포함해 총 17명 이사의 표결로 결정되는 원장선임이 구색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당연직 이사 8명은 정부 차관급 인사들로 구성돼 있고, 선임 이사(8명) 역시 추천을 받아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국무총리가 임명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 차원에 내정된 인사를 뒤집을만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다른 관계자는 “원장을 하려면 청와대 인맥을 쌓기 위한 정치를 먼저 연구해야 한다”는 뼈있는 말을 던졌다. 한 연구위원은 “연구보다는 대통령 후보캠프에 어떻게든 참여해야 (원장)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결국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지원·육성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국가의 연구사업 및 지식사업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된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사실상 이 같은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이들이 관리·육성하는 연구원 내에서 원장이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회는 결국 청와대 ‘VIP’의 의사를 반영하는 ‘거수기’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인사치레에 밀리고 치이는 공공기관의 현실을 대표하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