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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일 오전 『The DailyNK』는 ‘김정일, 러시아 망명’이라는 제목으로 만우절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중국의 압력에 의해 김정일이 러시아로 망명하고, 즉각 과도정부가 들어서 민주개혁을 단행하며, 인민들은 성대한 축하행사 이후 평온을 찾아간다는 ‘즐거운 상상’이었다.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더 없이 좋으련만, 이런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을 필자는 10% 미만으로 본다. 물론 김정일 정권이 붕괴하고 북녘에 자유와 민주의 새날이 펼쳐질 것이라는 역사의 필연성에 필자는 100%의 신념을 갖고 있지만, 그 과정이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희생과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며,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에도 여러 번 직면하게 될 것이다.
김정일 정권 붕괴 후 극심한 혼란 예상
김정일 정권 붕괴와 관련해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궁정쿠데타로 인해 실각하는 것이다. 그 이후 북한에서 벌어질 상황은 매우 복잡하고 위험할 것이다. 김정일 정권의 붕괴는 북한 인민에게 궁극적 축복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절대권력이 갑자기 사라진 공백상태에서 극심한 혼란이 있으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궁정쿠데타가 치밀하고 광범위한 조직적 준비와 내외부적 지원 속에 이루어질 가능성은 전혀 없고 아마도 김정일의 통치능력에 심각한 회의감을 가진 개인이나 소수집단이 우발적으로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지도부 내부에서는 갑작스런 공백상태의 권력을 쟁탈하기 위한 살육전이 벌어질 것이고, 인민들도 무정부상태에서 그간의 원한을 갚는 스스로의 복수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믿기 싫겠지만 이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150만의 군대가 사분오열 찢어져 각자의 지도자를 따르고, 그 동안 지하에 묻혀있던 수많은 재래식 무기와 대량살상무기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이런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남한의 현 정부는 혹시, 그저 서로 죽고 죽이다가 더 이상 죽을 자도 없이 진정(?)이 되었을 때에나 피비린내 나는 북녘에 진주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한미연합사가 그 동안 준비해왔던 작전계획(이하 ‘작계’) 5029에 남한 정부의 NSC(국가안전보장회의)가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추진중단을 지시한 것을 보면 말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북한 주민 생명이 우선
미군의 한반도 유사시 작전계획은 5027, 5028, 5029, 5030 등 여러 가지 예상 상황에 대비한 ‘버전’이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작계5027은 북한이 남한에 선제공격을 단행했을 때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시나리오가 담겨있다.
그러나 작계5027은 가시적 공격에 대한 응전(應戰)의 내용만을 담고 있어, 북한의 정권이 급변하거나 내란적 성격의 상황이 벌어져 큰 희생이 예상될 때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남한 정부에서 자체로 마련해놓은 각종 유사시 계획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준비해 온 것이 작계5029이다. 북한의 정권붕괴, 소요와 내란, 대규모 난민의 발생, 대량살상무기의 외부유출의 우려가 있을 때 한미연합군이 이에 대해 신속한 군사적 조치를 취하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작계5029에 대해 한국 정부가 반대를 하는 이유는 작계5029 상황이 벌어졌을 때 작전지휘권이 미군 측에 넘어가 “대한민국의 주권행사에 중대한 제약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미연합사의 평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은 미군이 갖도록 되어있다.
작계5029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중요한 것은 북한 내의 불안을 조기에 종식하여 평화적 질서를 회복하고 북한 인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을 사이, 북한 내에서는 코소보나 르완다, 소말리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그때 작전통제권 운운하며 주권타령이나 하고 있을 것인가. 이것을 “실리보다는 명분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하는 것도 사실은 관대한 표현이다. 어리석고 비겁하며 반인륜적이고 반민족적이다.
주권 포기한 것은 우리 정부
유사시 북한 내부에 초기에 개입하여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고 그러한 일체의 준비도 하지 않았으면서, 심지어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남한 정부가 ‘주권’을 거론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북한문제에 대한 개입을 포기함으로써 주권을 스스로 포기해버린 장본인은 바로 남한의 현 정부이다. 그 ‘유사시’라는 표현이 모호해서 정말 주권침해가 우려된다면, 그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합의 절차를 마련하면 될 일이지 유사시 계획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대체 무슨 경거망동인가.
각설하고, 유사시 미군이 작전통제권을 갖는 것을 주권침해라고 생각한다면 이제라도 남한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져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야말로 ‘마이웨이’를 가던지, 북한이 어떻게 되든 말든 우리는 상관치 않는다는 완전한 분단선언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사시 북한문제에 신속히 대처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남한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은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바라지 않고 있지만, 김정일 정권은 반드시 붕괴될 것이다. 자신의 바람이 그것이 아니라고 엄연히 펼쳐질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도외시 해버리고 헛된 망상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은 제대로 된 정책결정자들의 자세가 아니다.
지금 남한의 NSC는 아마추어 운동권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운명을 도탄에 빠뜨리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 제발,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곽대중 논설위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