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무력화 北의도 결국 실패, 연평해전은 승전”

통일 한반도, 누구나 꿈꾸는 미래일 텐데요. 실제로 통일 한반도를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또 일하는 전문가들은 어떤 통일 미래를 꿈꿀까요? 전문가와 함께 통일 한반도를 밀도 있게 그려보는 ‘통일 대담’ 시간입니다.

2002년 6월 29일 발발했던 ‘제 2차 연평해전’은 벌써 1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국민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가슴 아픈 사건입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 유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남한의 인도적 지원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된 상황에서, 북한의 갑작스런 무력 도발은 북한정권의 실체와 그 기만성을 알기에 충분했습니다. 통일 대담 3일 이 시간에는 연평해전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 보고 연평해전에 대한 북한 당국의 거짓선전과 의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 도움 말씀 주실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 소장 나오셨습니다.
 
1. 대한민국 해군 출신으로서 김태준 박사님에게 ‘연평해전’이 주는 의미는 남달랐을 텐데요. 우리의 영해를 지키다 산화된 장병들이 아른거립니다. 연평해전 13주년을 맞아 박사님을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도 대위 때 정장으로서 연평도 근해에서 NLL을 지킨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제 2차 연평해전에서 순국한 6명의 군인들, 그들이 지켜낸 NLL이 아직도 지켜지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이 아직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평해전’이라는 영화가 개봉한지 4일만에 관객이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다시 한번 제2 연평해전이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그 동안 묻히고 잊혀져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제 2차 연평해전이 이 영화를 통해 재평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연평해전 영웅들이 있었기에 북한의 끈질긴 위협과 도발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NLL이 유지되고 있으며 우리 수도권 서쪽 해역이 완벽하게 방어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희생을 높게 평가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서해 북방한계선을 지키는 해군 장병들과 영공과 휴전 해선에서 국토방위를 위해 고생하시는 우리 국군 장병 모두의 노고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6명의 군인들이 순직을 했습니다. 당시 교전은 사실상 북한의 도발이었기 때문에, 준전시상태로 보고 이들을 전사자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용어 자체도 정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순직과 전사는 명백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순직이라는 것은 공무를 수행하다가 사고 등으로 인해 사망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천안함 사건 이후 침몰된 천안함을 인양하는 과정에서 한주호 준위가 순직을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전사가 아닌 순직이 맞습니다. 전사는 전투 중에 사망한 경우를 말합니다. 순직과 전사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국방부의 대우 지침도 완전히 다릅니다. 제 2차 연평해전의 경우, 북한의 NLL 도발을 막기 위해 우리 편대가 차단 기동을 하던 도중 북한의 684호정으로부터 선제공격을 당했고, 이로 인해 참수리 357정의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6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는 전투 중에 사망한 것이기 때문에 전사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 당시 김대중 정권은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 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때문에 제 2차 연평해전에서 전투 도중 사망한 전사자들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하지 않고 순직처리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사자들이 합당한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해 전사한 것에 대한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번 ‘연평해전’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여야정치권이 명예 회복 등 전사자들의 처우에 관련해서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3. 북한의 경우 당국에서 주민들에게 남쪽에서 먼저 침략을 해서 그것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교전이 벌어졌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제 2연평해전이 어떻게 해서 발발했는지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북한의 상투적이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당시, 해상 경계선이 없었기 때문에 UN 사령관은 휴전협정을 준수하기 위해 남북의 섬 중간 사이에 경계선을 설정했고 그것이 북방한계선(NLL)입니다. 우리(남한)는 NLL을 절대로 넘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북한이 이것이 잘못됐다고 트집을 잡으면서 NLL 남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는 NLL을 지키기 위해 북한의 침략과 도발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3-1. 2002년 연평해전도 북한이 NLL을 넘어서 우리 함정을 공격해서 벌어진 사건인 것이죠?

정확합니다. 우리는 NLL을 준수하고 북상해서 침범한 적이 한 차례도 없습니다. 제 1,2차 연평해전과 2009년 10월 11일 대청해전에서도 마찬가지로 북한이 먼저 NLL을 침범하여 이를 막는 과정에서 전투가 발생한 것입니다.

3-2. 좀더 구체적으로 당시 교전 상황이 어땠는지 청취자들에게 간단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북한군의 치밀한 계획 하에 그러니까 3년 전 패배를 보복하기 위해 기습적인 공격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맞죠? 

그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제 1차 연평해전 당시 북한이 우리를 침범하고 공격했는데, 우리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고 북한은 사상자가 100명 이상의 발생했습니다. 또한 북한의 함정 다수가 침몰되었습니다. 참패를 한 것이죠. 제 1차 연평해전에서 북한이 기습선제공격을 했는데 우리는 피해를 입지 않고 바로 반격을 했고 북한에 큰 피해를 안겨주었습니다. 우리는 NLL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북한은 집요하게 남침을 하면서 NLL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월남한 일부 이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일이 제 1차 연평해전의 설욕을 지시했다고 해요. 당연히 그랬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2002년 월드컵이라는 전국민이 열광하는 시기,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 금강산 관광 등 남북이 화해와 협력이 되면서 우리나라가 북한에 대해 방심하는 사이, 그것을 역이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4. 국지전이었다고 하지만, 남북 해군의 피해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북 해군의 피해 정도가 어떻게 되었나요?

제 2차 연평해전에서는 윤영하 정장을 포함 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참수리 357정을 인양하는 과정에서 5명이 사망했습니다. 북한의 경우는 기습선제공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25명 정도 사망했고 한 척이 대파되었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더 공격할 수 있었으나 상부로부터 확전방지명령을 하달 받고 북한의 683정을 침몰 시킬 수 있었으나 어쩔 수 없이 전투를 중단하였습니다.

5.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 한국의 김대중 정부는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펴고 있었습니다. 또 인도적 차원의 지원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도발을 일으킨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아까도 말씀 드린 것처럼 북한이 1999년 6월 15일 제 1차 연평해전에서 기습공격을 했음에도 100여명 정도의 사상사가 발생했고 함정이 다수 침몰했습니다. 이에 북한에 김정일이 보복을 지시했으며, 비록 남북 간 화해관계에 있었지만 제 2차 연평해전 당시가 북한이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만일 관계가 악화됐었다면 우리는 북한이 언제 도발할지 모른다는 경계심을 갖고 있었겠지만 당시 남북관계가 아주 원만하고 우리가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상황에서 설마 북한이 선제공격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2002월드컵 준결승으로 전국민이 흥분되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회를 잡아 공격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아마 그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북한이 공격을 했더라도 기습공격을 성공적으로 해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 제 1차 연평해전에 대한 보복 외에도 서해 북방한계선을 정치 쟁점화하려는 정치적 의도는 없었습니까?

물론 그런 것도 있습니다. 북한은 1974년 12월 1일부터 NLL을 분쟁 수역화 하면서 무력화 시키고 남침을 하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북한을 다시 봐야 할 것은 북한은 남북 간 화해 분위기 조성과는 별개로 NLL이라는 명분을 통해 지속적으로 도발하고 공격을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7. 2차 연평해전 당시 한국군이 피해를 입은 원인을 해군의 수세적인 교전수칙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특히 당시 해전을 지휘한 군 간부들이 대북 유화파인 청와대 및 군사 수뇌부의 확전 불가, 선제공격도 불가라는 대응으로 우리의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그 당시 5단계 작전지침은 처음으로 경고방송 이어 시위기동 – 차단기동 – 경고사격 – 명중 격파사격의 순으로 이어집니다. 차단기동은 함정을 옆구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으로 상당히 위험합니다. 제 2차 연평해전이 끝난 후, 당시의 교전수칙에 문제를 느끼고 경고방송과 시위기동을 묶고, 위험한 차단기동을 빼고, 경고사격과 명중사격을 하는 것입니다. 당시 5단계 교전수칙과 더불어 또 하나의 문제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4가지의 교전수칙을 하달한 것입니다. 4가지 교전수칙은 첫째 NLL을 사수하라. 둘째 먼저 공격은 하지 말아라. 셋째 공격을 당했을 때 대응해라. 마지막으로 전쟁이 일어날수 있는 확전을 방지하라. 이렇게 지시를 했습니다. 손발이 완전히 묶인 채, 공격을 당한 후 반격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토대로 교전지침을 북한이 공격할 경우 언제든 반격할 수 있도록 바꾼 것입니다. 그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하달한 교전수칙과 5단계 작전지침을 3단계로 바꾸면서 북한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당할 기회를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지금부터는 해군 장병들이 충분히 북한 도발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8. 얼마 전 연평해전 13주년 기념 추도사에서 한민구 한국 국방부 장관이, 현역 국방부 장관으로선 처음으로 연평해전을 ‘승전’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사실 늦은 감이 있지만 제대로 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참수리정이 침몰하고 6명이 사망했는데 어떻게 승전일 수 있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일부 인사들이 있습니다. 해전의 승리는, 미드웨이해전을 예로 들자면, 미국과 일본 양국의 항공모함이 침몰되는 등 피해를 입었지만 해전이 종료된 후, 해상통제권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미드웨이해전의 경우 미국이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트라팔가해전에서도 넬슨 제독이 전사했지만 영국이 승리를 하게 되면서 해상통제권을 갖게 되어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영국을 징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 2차 연평해전에서도 357정이 침몰하고 6명의 사상자가 났지만 북한은 더 많은 피해를 입었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NLL을 지켜냈습니다. 북한의 목적은 NLL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는데 이에 실패한 것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의 상황을 보면 우리가 아직 해상통제권을 가지고 북한을 제재할 수 있기 때문에 승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네, 통일대담 오늘 이 시간에는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 소장님과 함께 연평해전을 일으킨 북한의 의도와 북한 정권의 기만성을 살펴봤습니다. 소장님,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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