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 포커스] 영변 핵시설 재가동 노림수와 난관에 봉착한 한미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개한 위성사진. 8월 25일 구룡강과 연결된 새로운 수로로 냉각수가 방출되는 듯 배출구 부분이 하얗게 보인다. /사진=38노스 캡처

북한 당국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으로 한미 양국이 난처한 입장에 봉착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에 관한 선택적 정보만을 국민에게 제공하여 남북관계의 현실을 왜곡했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고, 미국 정부는 가뜩이나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으로 표기) 사태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핵개발 이슈를 제기함에 따라 외교 역량에 원심력이 작용할 수밖에 없게 됐다.

지난 27일에 공개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핵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 7월 초부터 영변 핵시설 내 5MW 원자로를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7월 전까지는 그 같은 정황이 전혀 없었는데 7월 초부터 해당 원자로가 재가동되는 징후가 포착됐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한국 정부가 한미 정보자산을 통해 북한 당국의 원자로 재가동 정황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그 같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현 정부의 임기 말에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숙제를 반드시 해결하려는 과잉 의욕이 개입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7월 27일 북한 당국의 제안에 따라 남북 통신선 복원이 이뤄지자 한국 정부는 요란하게 반응했다. 청와대에서는 “남북 통신선 복원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개를 위한 가장 낮은 단계의 조치”라며 “남북 정상회담도 하나의 징검다리고 최종 목표는 비핵화”라는 발표가 나왔다. 7월 30일에는 통일부가 10개월간 중단됐던 대북 물자 반출을 두 건 승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한국 정부에 통신선 복원을 요청한 건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통신선 복원이 이뤄지기 3일 전인 7월 24일부터 사흘간 북한 당국은 처음으로 ‘전군 지휘관·정치 간부 강습회’를 개최했다. 북한 내 거의 모든 군 간부들이 이 회의에 참석하느라 북한의 군 지휘체계는 일시적으로 마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북한 당국에겐 지휘 공백에 따른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선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열망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었다.

북한 당국은 한국 정부에 관계 개선의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한미 양국의 ‘혹시 있을지 모를’ 대북 공격의 예봉을 꺾어놓았다. 강습회가 끝나고 나서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의 빌미로 또다시 통신에 응하지 않는 행태를 보였다. 뜬금없이 북한 당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제안하고 나서진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에 통신선 복원을 제안하기 전부터 영변 핵시설이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북한 당국의 해묵은 통일전선전술 차원의 책동에 한국 정부가 재차 놀아난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이 같은 사건들이 전개되는 와중에 한국 정부는 영변 핵시설의 재가동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북한 관련 정보를 남북관계 개선에 유리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대북 인식을 왜곡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의 비핵화에 역행하는 행태를 공론화하지 않는다면 이는 북한 당국에 묵시적으로 면죄부를 주거나 그들의 행위를 방임하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한편, 북한 당국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은 미국 정부에게도 새로운 과제 하나를 추가했다. 최근 미국 정부는 미군 철수에 따른 아프간 사태의 악화 책임,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의 교착 상태로 외교적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이는 “4년 만에 돌아온 미국도 아프간에서는 ‘미국 우선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대(對)아프간 정책을 비판할 정도다. 이런 와중에 북한 당국이 핵개발 이슈를 다시 꺼내들었으니 미국 정부의 고민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북한 당국은 미국 정부의 집중력을 분산시켜 향후 핵 협상에서 최대한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려 ‘영변’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생각된다. 영변 핵시설 불능화를 다시 한번 협상 카드로 써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협상 의제로 영변 핵시설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협상 의지가 없다는 것이나 다름 없다. 국제사회는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의 폭파쇼를 지켜보면서 한 차례 속았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8년 5월에도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를 목도하면서 두 번째 기만당했다. 그런 역사를 잘 아는 국제사회가 북한 당국의 영변 카드를 수용할 리는 없다. 북한 당국은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는 움직임을 노출하면서 다른 이슈에 몰두해있는 미국 정부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이 기회에 유리한 협상 지위를 선점하려 영변 카드를 제기한 것일 수 있다.

북한 당국의 고려에 한국 정부의 입장이나 위신 등은 애초에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통신선 복원과 재단절, 그 기간 동안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과 관련해서 한국 정부에 어떠한 해명도 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일을 한 것이다. 남북관계에선 항상 자신들이 ‘갑’이고 한국은 ‘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대북정책에 있어 난관에 봉착한 듯하다. 그러나 기교를 남발하는 북한 당국의 술책은 대북 원칙을 이길 수 없다. 그 원칙은 ‘비핵화 없인 관계 개선은 없다’는 것이어야 한다. 한미 양국이 이 같은 원칙을 정립하고 지켜나갈 때에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가능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목적시하지 말아야 하고, 미국 정부는 북핵 이슈를 주변시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한미 양국의 공고한 대북공조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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