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부터 8일간 개최된 북한의 8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은 사회주의 기본정치 방식으로 ‘인민대중제일주의 정치’를 제시했다. 백성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이민위천(以民爲天)’ 정신도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개념들은 민중들을 통제하고 충성심을 끌어내기 위한 슬로건에 지나지 않는다. 김정은의 본심은 지난해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브루스 부에노 드 메스키타(Bruce Bueno de Mesquita)와 알라스테어 스미스(Alastair Smith)는 『독재자의 핸드북(The Dictator’s Handbook)』에서 독재자는 자유를 싫어한다고 지적했다. 자유를 허용하면 국민들은 서로 공유하는 고통을 깨닫고 협력함으로써 쉽게 반정부 시위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김정은에게도 유효하다. 주민들의 자유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외부 정보가 유입되고 주민들이 자유와 인권 사상을 깨닫게 되면 김정은이 구축하려던 독재의 아성은 사상누각이 되기 쉽다. 자유주의의 확산을 저지해야 할 절체절명의 필요성인 것이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이 같은 배경에서 등장했다.
지난해 12월 4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12차 전원회의에서 북한 당국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하 ‘배격법’)을 새로 제정했다. 그 핵심 내용은 한국을 비롯한 자유세계(미국, 일본 등)의 문화 콘텐츠를 이용하거나 배포, 보관한 자는 (무기)노동교화형에서 사형 등 최고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지난 15일 데일리NK가 ‘배격법’ 설명자료를 입수해서 공개한 바 있다([단독] “南영상물, 대량 유입·유포 시 사형”…대남 적개심 노골화, 2021.1.15.).
실제로 북한 당국은 8차 당 대회를 통해 사회통제를 위한 이중삼중의 잠금장치를 구축해놓았다. ‘배격법’을 관장하는 것은 사회안전성과 국가보위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8차 당 대회의 조직 개편에서 당 대회 집행부 명단에 이례적으로 중앙검찰소장과 중앙재판소장을 포함했다. 이 같은 조치는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를 당이 앞장서서 주도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뿐만아니라 북한 당국은 당 산하에 법무부의 신설을 공식화했다. 신설된 법무부는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중앙재판소, 중앙검찰소, 내각의 국가검열위원회 등 국가의 법 집행 관련 기구를 총괄 관장할 것이라고 한다. 김정은의 설명에 따르면 국가 규율과 법 집행의 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기실은 주민 통제를 확고히 하면서 체제를 보위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이번 당 대회에서 김정은은 ‘우리식 생활양식’이란 개념도 제시했다. 사업총화 보고에서 김정은은 ‘우리식 생활양식을 확립하고 비사회주의적 요소들을 철저히 극복하는 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를 언급했다. 이 얘기는 ‘배격법’ 제정을 정당화한 것이자 자신이 제시한 ‘이민위천’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주민들은 자유와 인권 사상에 눈뜨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저지하는 게 어떻게 백성을 하늘처럼 대하는 자세인가. ‘인민대중제일주의’를 표방하면서 인민들의 관심사를 차단하고 처벌하는 게 온당한 처사인가.
김정은은 선대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이나 선군정치와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통치이념을 창출해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 집권 초에 김정은은 ‘김정일 애국주의’나 ‘애민정치’라는 모호한 슬로건을 제시했으나, 집권 10차가 되면서 그것을 ‘인민대중제일주의’로 바꿔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누가 봐도 가식적인 시대정신이다. 법적, 제도적으로는 인민대중의 자유와 인권을 말살하려 하면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운운하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어느 신문에선가 흥미로운 기사가 있어 유심히 봤던 기억이 있다. “새들도 독재에 맞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지배층을 이루는 동물이 항상 자신만 위해 의사 결정을 한다면 하층 동물들이 집단행동을 한다는 요지였다. 하물며 미물인 새들도 독재에 항거하는데 이성을 지닌 사람들은 오죽할까. 김정은이 일인독재를 강화할수록 주민들의 저항의식은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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